[역사소설]고주몽 69

등록 2003.04.20 13:20수정 2003.04.20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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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소와 협부가 들어섰을 때는 이미 모든 신하들이 주몽과 월군녀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재사가 이런 자리를 만들게 된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이렇게 예정에 없이 여러분들을 모이라고 한 것은 행방이 묘연한 행인국의 왕 주자아로 인한 것이오. 그 자가 우리에게 이런 서찰을 남겨두고 사라졌소."


서찰의 내용은 '고구려왕 주몽에게 반드시 이 치욕을 갚겠다'는 것이었다. 신하들은 그 서찰을 돌려보았다.

"아마도 주자아는 부여나 북옥저로 도망쳤을 것으로 보입니다. 어차피 주변국의 동정을 살필 겸 이들에게 사신을 보내 동정을 살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해위의 말이 끝난 후 을소가 서찰을 든 채 말했다.

"사신을 보내는 것은 좋은 일이나 이 서찰은 뭔가 이상하옵니다. 도망치는 사람이 어디서 한가히 먹을 갈고 천을 구해서 이런 글을 남기겠습니까?"

을소의 지적에 좌중은 잠시 소란스러워졌다. 마리가 발언을 요청했다.


"확실히 그 서찰은 이상한 것입니다만 우리로서는 주자아의 행방을 알아내는 일이 시급한 일이옵니다. 그 자가 다른 곳으로 가 흉계를 꾸민다면 장차 큰 화가 닥칠 것입니다."

월군녀도 이 말에 동조하며 주몽에게 말했다.


"어서 사람들을 풀어 주자아의 행방을 수소문하고 사신들을 보내어 주변의 정황을 탐색해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주몽은 이에 부여와 북옥저에 각기 사신을 보내게 되었다.

북옥저는 읍락으로 이루어진 국가로서 각 읍락에는 장사라는 통치자가 있었고 그들 중에서 군장이 선출되었다. 북쪽으로 읍루라 불리는 야만인들의 압력에 시달리는 등 국력이 그리 강하지 않았지만 나름대로 소금, 어육, 모피로 풍족한 생활을 누리는 나라였다.

북옥저에 온 고구려 사신 구치와 설력은 고구려에 비해 제대로 나라의 틀이 갖추어져 있지 못한 북옥저를 둘러보며 절로 이 나라를 깔보는 마음이 생겼다. 주몽이 하위관직에 있는 이들을 사신으로 보낸 것부터가 북옥저를 그리 예우할 마음이 없다는 얘기였고 실수이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이들의 목적은 주자아의 행방을 찾는 일이었다.

북옥저의 군장인 미유흘은 구치와 설력을 맞이하며 나름대로 대우에 신경을 쓰느라 연회를 열었다. 구치와 설력은 차려진 음식을 먹으며 '비린내가 난다', '너무 짜다'는 등의 말로 미유흘의 심기를 언짢게 했다.

"이 먼 궁벽한 나라에까지 고구려의 사신들께서 찾아오신 데는 무슨 이유가 있는지요?"

구치는 술에 취해 쓸데없는 말을 할 뿐이었다.

"궁벽한 것을 다 아니 다행이네. 우리가 오기 전에 군장이 먼저 우리 폐하를 배알해야 할 거 아니오?"

미유흘은 화를 참느라 얼굴이 붉어졌다. 그래도 제정신이 있는 설력이 대신 대답했다.

"행인국의 왕 주자아가 이리로 도망쳐 왔다는 소식이 있소. 어서 그 자를 내어 놓으시오."

미유흘은 공손히 대답했다.

"그런 자는 오지 않았습니다."

"우리 대 고구려를 뭘로 보는 거냐! 이 따위 촌락 정도는 군사 백여명만 있어도 속국으로 만들 수 있겠다!"

더 이상 참지 못한 미유흘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버렸다. 그 뒤는 장사 추율이 따르며 분한 감정을 쏟아내었다.

"저들의 언행이 심히 불쾌합니다. 고구려는 멀리 있는 나라, 저들을 죽여 버린 후 뒤에 고구려가 이를 물으러 오면 모른다고 하면 그만일 일입니다."

미유흘은 그 말에 찬성하며 군사들을 불러 명했다.

"너희들은 고구려 사신일행이 잠이 들 때를 기다렸다가 단숨에 모조리 목을 베어 오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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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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