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념 많은 가슴에 붉은 해가 진다

[이철영의 전라도기행4] 해남 달마산 미황사

등록 2003.04.30 15:53수정 2003.06.27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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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와서 듣기로, 영화감독 장선우는 미황사(美黃寺)를 찾아와 구경하고는 그냥 퍽퍽 울다가 내려갔다고 했다. 세간에 알려진 그의 인생역정도 그다지 간단치 않거니와 그만의 예술가적 미감(美感)이 미황사와 감응한 결과였으리라.

그러나 두 번째 걸음에 반복하여 들은 바로는 많은 이들이 뜰이며 마당 구석에서 실컷 울거나 명상에 잠긴다고 하니 이곳에는 상처받은 이들의 영혼을 쓰다듬어 주는 신묘한 기운이 있는 모양이다.


억겁의 세월 속에 얽히고 설킨 인연의 실타래가 어찌 그런 통곡으로 풀어질까마는 한번이라도 이곳에 와 본 이들은 그럴만하다고 공감의 고개를 끄덕인다. 차를 버리고 동백숲길을 지나 절 밑에 당도하면 건물의 모습은 숲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대신 가파른 산허리를 감싼 숲과 정상에 자리잡은 눈부신 암벽의 병풍이 푸른 하늘에 잠겨 있는데 숲에 가려 정작 사찰 건물도 눈에 띄지 않는 풍경이 욕심과 성냄에 찌든 이들의 가슴속으로 내려와 지친 영혼을 어루만져준다.

"아무 말 하지 말아, 그렇게 그냥 있다 가면 돼"

미황사는 병풍같은 바위들로 우뚝솟은 달마산이 포근히 에워싸고 있는 형상이다.
미황사는 병풍같은 바위들로 우뚝솟은 달마산이 포근히 에워싸고 있는 형상이다.오창석
전남 해남군 송지면 서정리 달마산(達磨山)에 자리잡고 있는 미황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대둔사(大芚寺/前 대흥사大興寺)의 말사이며 위도상 우리나라 육지의 최남단에 위치한 절이다.

조선후기에 건립된 「미황사 사적비」에 실린 창건설화를 보면 서기 749년(신라 경덕왕 8년)에 한 석선(石船)이 달마산 아래 닿았는데 의조화상(義照和尙)이 100인을 이끌고 가 목욕재계하고 배를 맞았다.


배에는 금인(金人)이 노를 잡고 있고, 금으로 된 상자 속에 화엄경, 법화경 등의 경전과 불상이 들어 있었다. 이를 임시로 봉안하고 그 날 밤 꿈을 꾸었는데 금인이 나타나 자신은 인도의 국왕인데 "경전과 불상을 싣고 가다 소가 멈추는 곳에 절을 짓고 안치하면 국운과 불교가 함께 흥왕하리라"하였다.

다음날 소에 경전과 불상을 싣고 가다 소가 크게 울고 누웠다가 일어난 곳에 통교사(通敎寺)를 짓고 마지막 멈춘 곳에 미황사를 지었다.


미황사라 이름지은 것은 소의 울음소리가 아름다웠다 하여 미자(美字)를 쓰고 황黃은 금인의 색色을 취하였다
고 한다.

창건 이후 수백 년 동안의 기록은 실전되어 남아 있지 않고 1597년 정유재란으로 불탔다가 1598년 중창하고 1660년, 1754년에 2차, 3차 중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의 전각은 보물 947호인 대웅보전, 보물 1183호인 응진당과 명부전, 삼성각, 만하당(선원), 달마전(승방), 세심당(수련원) 등이 있다.

절에서 동백나무 숲길을 따라 걸어가면 27기의 부도를 볼 수 있다.
절에서 동백나무 숲길을 따라 걸어가면 27기의 부도를 볼 수 있다.오창석
여기에 27기의 부도(浮屠)와 탑비(塔碑)가 남아 있는데 이와 같이 많은 부도와 탑비는 이곳이 조선후기에 사세(寺勢)가 융성했던 큰절이었음을 말해준다.

대웅전의 외면은 200여 년의 세월을 지내는 동안 단청이 퇴색하여 목재 본래의 색채와 나뭇결이 거칠게 드러나 있는데 오히려 소박한 자연미가 아름답다. 대웅전 안에는 1천의 부처님이 벽화로 모셔져 있어서 삼배三拜만 하면 삼천배가 되니 이곳에 들르는 이들은 꼭 삼배를 하고 볼 일이다.

주춧돌에는 다른 곳에서 쉽게 찾아보기 힘든 게, 자라의 모습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또 하나의 불국정토인 용궁을 형상화한 것임과 함께 피안(彼岸)이자 부처님의 세계로 중생을 태우고 간다는 '반야용선(般若龍船) - 법당'이 떠있는 바다를 상징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조선 후기 선비화가 윤두서가 그렸다는 명부전의 10대 시왕
조선 후기 선비화가 윤두서가 그렸다는 명부전의 10대 시왕오창석
'명부전'에는 조선후기 최고의 선비화가인 공재 윤두서(정약용의 외증조, 윤선도의 증손)가 조각한 10대 시왕이 모셔져 있고 응진전에는 우리나라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묵선(墨線)으로 그린 벽화가 있다.

10여 년 전의 미황사는 폐허나 다름없었다고 한다. 150여 년 전부터 거의 버려져 있다시피 하여 숲이 먹어 들어와 법당에 햇빛 한 점 들기 어려워 기거하는 스님들이 모두 병이 나서 떠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다 10여년 전에 현 주지인 금강스님과 현공스님을 주축으로 불사를 벌여 지금은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절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복원하기 이전에는 상황이 심각하여 참선하고 예불하는 시간 빼고는 일만 해대는 금강스님에게 인근 마을 사람들이 '지게스님'이란 별호를 달아줄 정도였다.

묵선으로 그린 작자 미상의 응진당 벽화는 걸작으로 평가된다(왼쪽) 대웅전 앞 4개의 돌기둥은 야외 법회때 괘불을 걸던 장치다(오른쪽)
묵선으로 그린 작자 미상의 응진당 벽화는 걸작으로 평가된다(왼쪽) 대웅전 앞 4개의 돌기둥은 야외 법회때 괘불을 걸던 장치다(오른쪽)오창석
매월당 김시습은 일출에는 낙산사, 낙조의 절경으로는 미황사를 꼽았다고 한다. 이 곳의 낙조는 계절과 그날의 날씨에 따라 시시각각 황금빛, 은빛, 붉은색으로 변하며 진도 앞바다를 물들인다.

만하당 쪽에서 바라보는 낙조는 가관이다. 이곳에서는 여름과 겨울방학에 4학년 이상의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스님과 함께하는 7박8일간의 어린이 한문학당을 연다. 또 매년 10월 넷째 주 토요일(금년 10월 27일 오후 5시)에는 '산사음악회'가 열리는데 늦가을의 정취 속에 이보다 더 좋은 만남은 없다.

미황사를 가면 달마산의 눈부시게 흰 암벽, 자비로운 부처님, 가슴 아린 낙조, 금강스님이 내준 그윽한 차향과 천진하고도 맑은 그의 웃음을 만나는데 정작 돌아오는 길에 누굴 만났나 생각해보니 그 어느 것도 아닌 바로 나였음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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