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의 제국, 미국의 실체를 고발한다

김민웅의 책 『밀실의 제국』 (한겨레 신문사)

등록 2003.05.01 07:26수정 2003.05.04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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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몹시 궁금했다. 이라크 전쟁이 벌어지는 동안, 미국 내에서 부시 대통령의 지지율이 70%까지 치솟는 이유가 뭔지를 알고 싶었다. 민주주의를 표방한다는 나라에서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전세계에서 연일 대규모 반전평화 시위가 벌어졌고, UN까지도 전쟁에 명분이 없다고 하는 데도 미국은 억지를 부려가며 "더러운 전쟁"을 강행했다.

그럼에도 미국인들은 밖에서 외치는 분노의 목소리가 도무지 들리지 않았나 보다. 미국의 양심을 대변한다는 지식인들, 즉 노엄 촘스키나 하워드 진, 수잔 손택 같은 이들이나 미국 내 반전평화 운동가들의 목소리 조차 대다수 미국민들의 오도된 애국주의를 바로 잡기에는 턱없이 역부족이었다. 아마 파시즘적 광기가 아니고서는 이런 현상을 설명하기 어려울 것이다.


정병진
지난 20여년 동안 재미 언론인으로 활동하면서 대미 한반도 문제와 관련하여 꾸준한 연구와 발언을 해온 김민웅 목사의 이 책은 지금 미국이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어 주목할만하다. 저자는 2001년 9.11 테러사건이 부시 정권의 전쟁정책에 명분과 계기, 역량 집결의 결정적 근거를 제공해 주었다고 말한다. 이 사건 이후로, 부시의 전쟁정책에 대한 비판적 논의 자체가 봉쇄되는 사회적 억압의 분위기가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체니 부통령의 부인은 대학마다 돌아다니면서 강연 도중에 미국의 대외정책에 비판적인 좌파 지식인들 명단을 흔들면서 그들이 판치는 대학에 돈을 대주어서는 안 된다고 역설한단다. 이로 인해 돈을 받아 운영하는 대학 당국이 위협을 느끼고 있고, 지식인 사회는 비판력을 상실한 채 입 조심을 하는 분위기라니 마치 과거 매카시즘이 재현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법원 판결의 실수로 겨우 대통령 자리에 오른 부시 정권이 문제인가. 문제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미국은 클린턴 정권 말기에 그동안 추구해오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투기자본의 전횡으로 세계적 저항에 직면하게 되고, 내부적으로 불안정한 투기시장의 교란으로 경기침체 국면에서 빠져 나오기 힘든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바로 그에 대한 타개책으로 부시의 전쟁정책이 나왔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지배 엘리트들 사이에서 가장 단시일 내에 자본축적을 이루기 위한 방책은 역시 전쟁경제의 가동이라는 의견의 합의가 이미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부시의 전쟁정책은 공화당 출신인 호전적인 부시정권만의 것이 아니다. 가깝게는 클린턴 정권의 연장선 하에 있고, 더 멀리는 "제국"인 미국의 체제 유지를 위해 오랫동안 지속해온 고유한 속성에 속한다.

최근 미국은 지구 온난화 방지를 위한 교토 협약과 지뢰 금지 조약, 군축협약인 ABM조약, 생화학무기 협정, 핵실험 금지조약, 국제형사재판소 설립 등 국제사회의 주요 합의를 대부분 거부, 초월하면서 패권적인 지위를 한없이 누리려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자국 내에 비애국적 시민을 색출해 내는 "애국법안"을 만들어 전쟁정책에 반대하거나 비판하는 사람은 테러 지지자로 몰고, 정당한 법적 절차 없이 무기한 구금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고 한다. 게다가 테러 혐의가 있는 외국인을 군사재판에 회부할 수 있도록 하여, 일단 테러 혐의를 받으면 세계 어느 나라 누구든지 미국의 군사재판에 회부될 수 있는 형편이다.


그뿐이 아니다. 전쟁을 하는 동안 언론보도 또한 심리전이라고 규정하여 마음껏 통제하고 여론을 조작하는 것도 합법적으로 가능하도록 해놓고 있다. 우리는 이미 이라크 전쟁 내내 미국의 주요 언론들이 얼마나 전쟁 보도를 사실과 달리 호도하는지를 경험했다. 이러한 사례들은 제국의 오만함을 만천하에 그대로 드러내 주는 단적인 모습이다.

저자는 미국이 19세기 말 이래 지배방식만 바꾸었을 뿐 제국주의 지배전략을 한 번도 포기한 적이 없음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토를 동원한 유고공습, 아프카니스탄 전쟁, 이라크 전쟁, 미국의 침략의 역사는 지금 계속되고 있다. 미국에서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파월이든 럼스펠드든 표현상의 약간 차이만 있을 뿐 본질은 동일하다고 지적한 리영희 교수와 저자의 입장은 전적으로 동일하다.


그는 미 제국의 전쟁정책이 앞으로도 계속 지속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세계 자본주의의 최정점에 서 있는 미국의 독선과 횡포를 막아내기 위해서는 결국 자본주의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저자는 과거 국제적 연대로 조직한 제3 인터네셔널 역사를 새롭게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미국을 "제국"으로 규정하고 그 역사적인 형성 맥락과 주도세력들을 치밀하게 파헤친 저자의 비판적인 시각에는 대부분 동의하며 퍽 유익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의 일관된 논조가 과거 제국주의론이나 종속이론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은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지구제국>의 저자 조정환은, 제국주의론적 문제의식의 중요한 문제점 중 하나로 지구적 갈등의 핵심적 문제를 계급갈등을 비롯한 사회적 갈등보다 "제국주의 국가 대 종속 국가의 갈등"으로 설정한다는 점을 꼽은 바 있다. 그래서 그는 국가권력 장악과 국가의 계급적 성격 변화라는 이러한 국가주의적 전략은 강한 민족주의적 경향을 띠게 된다고 했다.

하여, 이런 관점은 국가와 자본에 의해 사회운동이 추동 된다고 보기 때문에 운동의 주체를 동원대상으로 전락시키고 그들의 계급적 문제 해결을 소외, 유보시키는 결과를 낳는다고 비판한다. 그는 대안으로 네그리의 이론을 빌어 "다중"(multitude)의 전지구적 자율혁명을 통하여, 더 이상 주권형태를 취하지 않고 절대적 민주주의의 형태를 취하는 코뮤니즘적 관계의 창출을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어떤지 알고 싶다.

지금 한반도는 북핵문제에 대한 미국의 일관된 강압적인 태도로 인하여 살얼음을 걷듯 몹시 위태로운 상황에 놓여있다. 미국은 북한의 핵무장을 명분으로 코소보, 아프가니스탄, 이라크처럼 언제 또다시 전쟁을 일으킬지 모를 판이다. 저자는 코소보,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그토록 반대를 표명했던 열강들이 막상 전쟁이 터지고 나서는 입을 다물고 말았던 사실에 깊은 우려를 갖고 있다. 최악의 경우, 한반도 문제를 놓고 우리를 제외시킨 상태에서 주변 열강들 간의 다자간 비밀담합 가능성마저 있음을 지적한다. 그러고 보면 현 시기 노무현 정권이 이 난국을 어떻게 풀어 가느냐에 따라 한반도의 명운이 달려 있는 참으로 엄중한 시기인 것이다.

저자는 앞으로의 한반도 진로와 관련하여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김정일 답방 실현, 주한미군 철수 공론화, 6.15 공동선언 이행 등을 거쳐서 궁극적으로 영세 중립화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를 미국이 방해하고 지금과 같은 전쟁정책을 고수하는 한, 우리와 결코 동맹관계가 될 수 없음을 정치권은 명백히 표명해야 한다고도 다그친다. 다소 당위적이며 선언적으로 비쳐지는 진술이긴 하나 복잡하게 얽힌 한반도 문제의 해법을 어떤 원칙을 가지고 풀어가야 할지를 명료하게 제시하고 있다고 할 만 하다.

하지만, 그의 바람처럼 제국의 열강들에 의해 수난으로 점철된 역사를 가진 이 민족이 세계 평화에 이정표를 세우는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넘어야할 힘겨운 고비가 너무 많은 것 같다. 그러기에 지금이야말로 흩어진 반전평화의 힘들을 절박하게 하나로 모아 브레이크 없이 내치닫는 제국과 대항해야할 시기라고 이 책은 역설한다.

밀실의 제국

김민웅 지음,
한겨레출판,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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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솔샘교회(solsam.zio.to) 목사입니다.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는 세상' 함께 꿈꾸며 이루어 가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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