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학년 때 선생님들과 성순기 아저씨. 왼쪽 앞줄이 정광명 담임선생님. 세번째가 교장선생님. 다음이 고용석 교감선생님인데 학교를 꽃밭으로 만들고 화장실 가는 것도 '꽃밭간다'고 하라 하셨던 꿈을 심어줬던 분입니다. 제일 오른쪽이 홍순익 선생님, 뒷줄 독서상 앞이 고재성 선생님, 뒷줄 가장 오른 쪽이 김현수 선생님이고 다른 분은 생각이 가물가물합니다.김규환
70년대 중후반의 일이니 빨치산의 고장 백아산 골짜기 중 상(上) 꼴짝인 송단리, 강례리, 평지리, 방리 등 소위 '골안7동'은 다들 찢어지게 가난했다. 가욋돈 마련을 위해 새벽에 한 번 산에 가서 고사리를 꺾어 삶아서 널어두고 오신 분, 보리밭에 깜부기를 제거하시다 오신 분, 못자리 (*2)'피사리'를 하고서 달음박질로 참여한 분들이 많았다.
엄마가 따라오지 않은 어린이들은 위에 언니 오빠와 형 동생이 함께 모여 밥을 먹는다. 그 아이들에게 엄마들은 사탕 한 봉지를 사서 공평하게 예닐곱 개씩을 주머니에 넣어주고, 삶은 달걀 세 개씩을 싸주신다. 집에서 먹어 보지 못한 걸 따로 챙겨주시니 다수 아이들은 점심 먹는 재미에 빠져 소풍이 즐겁기만 했다. 아침 출발할 때 100원 안 준다고 생떼를 썼던 것만 빼고 보면 말이다.
우리는 5학년이던 위에 형과 나 그리고 학교 소풍까지 따라온 여동생이 한데 모였다. 보자기를 하나하나 풀어나갔다. 동부 콩과 팥을 넣어 지은 쌀밥이 보리가 섞였는데도 제법 윤기가 돌았다. 새로 담근 김치에 싱건지 우려 무친 시큼한 채에 취나물, 갈치 말린 걸 고추장을 발라 구운 것, 가중나무(실제로는 참중나무입니다. 가중나무는 노린내가 많이나서 먹기 힘겹습니다.) 잎을 말려 김 가루처럼 볶은 반찬까지니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바쁜 중에도 어머니께서 짬짬이 해두신 거였다.
소풍 때마다 만들어 주신 음식 중 으뜸은 단연 '반달떡'이다. 달떡도 아닌 반달떡! 반달이라고는 하지만 실제 모양은 초승달과 반달의 중간인 (*3)'부꾸미'와 닮아 날렵하다.
반달떡을 만드시려고 어머니는 몇 줌 안 되는 쌀을 몇 날 며칠이고 절약해서 꼭꼭 숨겨두셨다. 소풍 하루 전날 쌀을 담가 불리고 팥을 삶아 고물을 만들었다. 들일하고 오시는 길에 뜯어온 쑥서너 줌을 확독에 넣고 푹푹 찧어 물을 짜서 쑥물들인 떡 절반, 그냥 흰쌀로 반죽한 떡 절반을 준비하시고는 보기 좋게 모양을 만들어 설탕 친 팥고물을 안에 넣고 시루에 찐다. 마지막으로 참기름을 발라 먹음직스럽고 쫀득쫀득하게 준비해 오셨다.
반달떡은 한 입에 들어가는 길쭉한 것이지만 나는 절대 한 번에 오물오물 씹어 삼키지 않았다. 떡을 좋아하지 않던 내가 좋아하는 반달떡! 어머니의 정성으로 빚은 반달떡을 두 번 나눠 베먹으면 달작지근한 팥고물에 쑥물 든 반달떡, 흰 반달떡이 어울려 조화로웠고 당신의 자식 사랑을 오래 음미할 수 있었다.(왜 어머니는 소풍 때 반달떡을 만들어주셨을까? 어머니는 중학교 2학년 때 돌아가셨다. 어머니가 몇 해만 더 사셨어도 그걸 배워뒀으면 해강이 솔강이 소풍 가는 날 만들어 주련만….)
산들산들 부는 바람에 싱그러운 그늘 아래서 먹는 밥은 어떤 걸 먹어도 맛있던 시절인데 대여섯 가지 반찬에 밥을 먹으니 여러 번 씹을 필요도 없이 잘도 넘어간다. 거기에 떡까지 먹었으니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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