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 말만 들어도 가슴 떨립니다. 소풍가는 길은 즐겁습니다. 소풍은 아름다운 추억입니다.김규환
소풍날이 잡히면 날은 왜 그리 더디가는지….
소풍(逍風)은 거닐고 노닐어 바람을 쐬러 교실 밖으로 나가는 현장학습이다. 학교와 집, 집과 학교를 오가며 책과 건물에 갇혀 있던 심신을 야외로 옮겨 말끔히 풀어주는 학습의 연장인 소풍. 한때 행군(行軍)으로 변질되어 그 의미가 퇴색되어 교복입고 왕복 60리 그 먼길을 재미없게 걸었던 기억 또한 잊지 못할 일이다.
소풍가는 날이 잡히면 아이들은 마음이 바빠지고 기뻐서 펄쩍펄쩍 뛰었다. 학교에 다녀오기가 무섭게 책가방을 마루에 던져놓고 엄마를 찾는다.
"엄마~! 엄마~!"
"왜 그려? 뭔일 났냐?"
"아니 고게 아이고라~. 엄마~! 우리 소풍 간다요."
"그냐? 언제간댜?"
"응 쩌기 백아산 중턱 정제나무 밑으로 돌아오는 금요일 날 간다구만이라우~"
"날 잘 잡았구만. 그래야 반공일에 선생님들도 쉬제"
왜 그리 일주일이 멀고 더디 오는지 손꼽아 기다리는 것으로도 모자라 국회의원(그 때는 중선거구제였기 때문에 세 군에서 2명을 뽑던 시절이다.)이 3개 군 집집마다 석장씩 나눠준 농사달력에 연필심에 침을 잔뜩 발라 날마다 지워나갔다. 엄마를 졸라 이쁜 옷 입고 가게 해달라고 부탁하고 도시락은 그냥 맡기면 되었다.
나는 나흘 앞으로 다가오면 따로 할 일이 있었다. 1학년 때는 괜찮았지만 2학년 봄 소풍 때 비가 잔뜩 내려 교실 강당에서 전교생이 모여 소풍을 대신한 씁쓸한 기억이 떠올랐으므로 밤에 잘 때 하늘 쳐다보고 '제발 그날은 비 좀 내리지 않게 해주세요'하고 빌었다. 아침에 일어나도 마찬가지다. 구름이 남쪽 백아산 쪽으로 모이지 않았는가 확인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학교 갈 때도 날씨를 도사처럼 맞추시는 아버지께 다짐을 받을 요량으로 여쭤보고 나서야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아부지, 목요일날 비 안 온다고 했제라~?"
"안 온다했응깨 안 오것제…. 근디 어찌 하늘이 하는 일을 사람이 안다냐?"
"비오면 안 되라우. 절대 안 오게 해야된디…."
사흘을 남겨두고 온종일 비가 내렸다. 가는 비 세우(細雨)가 땅을 질컥거리게 만들었다. 포기한 심정으로 이제 날짜만 다가오기를 기다린다. 지렁이 기어가듯 굼벵이 꿈틀거리듯 느릿느릿 날이 다 가고 하루 남긴 밤에는 비가 오지 않았다. 들풀은 이슬을 잔뜩 머금고 풀벌레는 음악시간에 배운 악기를 총동원하여 연주하고 노래하느라 밤 깊은 줄을 모른다. 소풍 전야는 그렇게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이번에는 반드시 보물을 찾고 말테야….'
'노래도 꼭 일등을 해야지….' 하고 미리 상상을 하며 늦도록 뒤척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