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난 작은 전쟁

아침상 차리는 것이 이렇게 분주하구나

등록 2003.05.14 10:18수정 2003.05.14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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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 아내가 몸이 안 좋다며 좀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겠다고 했습니다.


아침 7시, 아이들이 일어나 학교 갈 준비를 할 시간인데도 아내는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생각하며 조간신문을 들척이고 있는데 아내가 거실로 나옵니다.

"몸은 어때? 애들 밥 먹여서 학교 보내야지."
그 말에 삐친 아내가 한마디합니다.

"내가 몸이 아프면 자기가 아침 좀 하면 안되냐?"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곱다고 나는 한마디 툭 쏩니다.

"그러면 밥하라고 얘기하면 되지 가만히 있으니 당연히 아침 하러 나온 줄 알았지."
툴툴거리며 부엌으로 들어가 아침준비를 합니다.

쌀이 어디 있더라? 쌀을 씻어서 압력밥솥에 올려놓고 반찬궁리를 하며 냉장고를 열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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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고등어자반과 조갯살, 계란을 꺼내어 메뉴를 정합니다. 오늘 아침은 고등어구이와 달걀후라이, 조갯국으로 해야겠다 생각하고는 이것저것 챙깁니다. 한동안 부엌은 아내의 영역이라고 생각해서인지 별 관심이 없었던 탓에 필요한 것을 찾는 것이 수월치 않습니다. 큰 소리로 아픈 아내를 부릅니다.

"식용유 어디 있냐? 그리고 파는 없냐?"


파리 한 마리가 부엌에서 유유자적 비행을 하다 상위에 앉았고 나는 들고 있던 행주를 파리에게 휙 날렸습니다.
'쾅!'
파리는 날아가고 소리만 요란하니 아내가 화가 나서 그러나 해서 부엌으로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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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화나서 그런 거 아니니까 오해하지 말고 들어가서 좀더 자, 파 없어?"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맞으며 텃밭에 가서 조갯국에 넣을 파를 뽑아오고, 분주하게 아침 준비를 합니다. 거반 준비가 다 되어갈 무렵 아이들을 깨웁니다.

"애들아, 일어나라. 밥 먹고 학교 갈 시간이다."

저녁에는 간혹 아빠가 요리를 해준답시고 부엌에서 설쳐대는 일이 있지만 아침은 으레 엄마가 차려주는 것으로 알았던 아이들이 아침부터 부엌에서 설쳐대는 아빠가 이상한가 봅니다. 막내가 "아빠, 나는 달걀후라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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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고등어자반이 노릿하게 구워질 무렵 압력밥솥도 뜸들일 시간이라고 칙칙거립니다. 불을 낮추고, 달걀후라이를 하면서 상을 차리기 시작합니다. 달걀후라이를 하면서 펄펄 끓는 조갯국에 떠오른 거품을 퍼내고 맑은 국물에 파를 숭숭썰어 넣고는 소금으로 간을 합니다. '음, 이 정도면 아직 녹슬지 않았군' 만족해하며 밥상을 차립니다. 그런데 밥은 물을 못 맞춰서 조금 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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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여느 날 아침처럼 아이들은 아침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합니다. "애들아, 아빠가 정성껏 차렸는데 그렇게 깨작거리며 먹냐, 맛있게 좀 먹어라."

아내가 아침마다 정성껏 차린 음식을 맛나게 먹지 못했던 지난날들에 대한 후회(?)가 밀려옵니다. 이제부터는 아내가 해주는 밥 남기지 말고 맛있게 먹어야겠습니다. 아이들이 밥을 먹고 학교로 유치원으로 빠져나간 후에 설거지를 합니다.

설거지도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냥 빈 그릇만 설거지하는 것이라면 수월하겠는데 먹을 것과 버릴 것, 개밥으로 사용할 것 등을 적절하게 나누고 설거지를 해서 각각 그릇대로 원위치 시킨다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그렇게 아침전쟁을 치르고 나니 청소를 해야할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작은 전쟁이었습니다. 이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남편은 외곽에서 지켜만 보고 있었구나, 지켜보기만 할 뿐 아니라 반찬투정까지 하고, 맛나게 먹어주지 못했구나 생각하니 아내에게 미안한 생각이 듭니다.

이제 가끔씩 그 전쟁의 소용돌이에 동참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걸레질을 합니다. 빨리 청소를 끝내고 아내에게 줄 쌍화탕을 사러 약국에 잠시 다녀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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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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