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보리밭 구경하기 참 힘들지요? 서울 어린이 대공원에도 있습니다. 창평에서 담양읍 넘어가는 길에김규환
보리밭
보리밭과 밀밭, 삼밭이 어우러진 70년 대 후반 농촌 들녘. 가을 나락이 익을 때보다 더 지겹게 분주한 때다. 산들바람에 파란 보릿대가 일렁 혹은 출렁이며 휘청 넘어지는가 싶으면 어느새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서는 다시 푸른 물결을 만들었다. 보리 뒷장도 하얀 속내를 드러내 보였다.
보리 패고 밀에 뜨물이 가득하여 알이 차기 시작하면 어디서 날아왔는지 깜부기도 덩캐덩캐 덕지덕지 까맣게 붙었다. 손으로 만져주면 시퍼런 연기 마냥 얼마나 퍼져댔는가. 제비도 못자리에 들어간 지푸라기나 풀나무 잔가지 한 개 입에 흙 묻혀 물고 짖던 울음 그치고 물을 힘껏 차고 올라 제 집을 짓느라 바빴다.
까시락으로 존재가치를 말하는 보리는 채 익기도 전에 아이들 밥이었다. 두어 줌 베어 꼬실라 식기 전에 뜨거운 손을 “후~후~” 불며 보리를 비벼서 파릇파릇 노릇노릇 까만 보리 알맹이만 남기고 까시락을 “휘휘” 불어버리고 손에 한 줌 모아 입에 가득 채워 몇 번 먹고 나면 ‘니네들 아푸리카에서 왔는 갑다’ 하셨지. ‘2모작만이 살길이다’고 외쳤던 때가 엊그제인데, 1모작 할 사람마저 없어 놀리는 땅 지천이다.
혼식(混食)하라던 선생님 말씀이 가장 미웠던 이유가 있었다. ‘대통령 각하, 제발 혼식 좀 하게 해주세요. 쌀 한 톨이라도 섞어서 먹을 수 있게 좀 해달란 말이예요. 그러니 선생님도 더 이상 혼식하라고 하지 마세요. 보리쌀도 구하기 힘든 형편에 보리를 섞어 먹으라니 말이나 되는가요?’ 하던 친구들이 더 많았던 시절.
30도에 가까운 뜨거운 햇살을 받아 누런 들판으로 바뀌는 건 시간 문제인데 보리도, 밀도, 대마 삼도 심을 영문을 모르게 변해버린 농촌에는 희망이 사라진지 오래다. 간혹 보리가 심어져 사람 기분 묘하게 들뜨게 하므로 하염없이 보리밭에 풀썩 주저앉아 자리 깔고 누워버리고 싶다. 바짓가랑이에 풀물이 들던 흙이 묻던 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