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137

찌를 때와 후려칠 때 (2)

등록 2003.05.20 13:34수정 2003.05.20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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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질풍아 넘자. 한번 넘어 보자! 챠앗! 지금이닷!"
히힝! 히히히히힝!

질풍과 노도가 마치 천마처럼 선무분타의 담장을 뛰어넘자 백안무발의 안색은 더 이상 하얘질 수 없을 만큼 창백해졌다. 사람도 놓치고 말도 놓치게 생겼기 때문이다.


"어어! 어어어어! 무엇들 하느냐? 어서 놈을 추격하라!"
"존명!"

불과 촌각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만에 질풍과 노도는 물론 이회옥과 조연희의 신형이 사라졌다. 아주 잠깐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하보두가 정신을 차린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의 명이 떨어지자 이십여 정의수호대원들은 일제히 이회옥의 뒤를 쫓기 시작하였다.

한편 담장을 뛰어 넘은 이회옥은 전속력으로 말을 몰았다. 잡히면 지독한 고문을 당할 것이 무서워서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목숨이 아까워서도 아니었다.

자신은 분명 간세가 아니다. 따라서 일단 분타주를 진정시킨 후 오해를 풀면 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안 된다면 조만간 당도하기로 되어 있는 순찰사자가 올 때까지 기다려달라고 하면 된다.


어차피 자신은 무림천자성 사람이므로 갇힌다 하더라도 지하뇌옥이 아닌 지상뇌옥에 편히 있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듯 필사적으로 도주하려는 것은 뒤에 타고 있는 조연희 때문이었다.

현 상황에서 잡히면 백이면 백 처참할 정도로 능욕 당하고 말 것이다. 그렇기에 나중 일이 어찌되건 일단은 도주하려는 것이다.


"처, 천천히…! 조금만 천천히 몰아요. 아악! 너무 빨라."

어릴 때부터 경신(輕身) 공부를 하였고, 기마술(騎馬術)도 능했기에 웬만한 속도에는 눈썹하나 까딱하지 않을 조연희였지만 눈을 질끈 감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한 엄청난 속도로 폭사(暴射)되어 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우선은 정의수호대원들의 추격을 따돌려야 하였다. 그렇기에 질풍이 지닌 모든 능력을 발휘하도록 평상시에는 전혀 사용치 않던 박차(拍車)까지 가한 결과였다.

떨어지면 큰 부상을 입게 될 것이라 생각하여 그런지 이회옥의 허리를 끌어안고 있는 그녀의 손에는 힘이 잔뜩 들어 있었다.

그리고 이회옥의 동체에서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큰일이라도 난다 생각하였는지 그의 등에 바짝 밀착되어 있었다.

대략 이 각 정도를 폭발적인 속도로 쏘아져 나간 후 뒤를 힐끔 돌아본 이회옥은 정의수호대원들이 여전히 따라오고 있기는 하나 제법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제아무리 절정 신법을 지녔다 하더라도 웬만한 고수는 천리준구인 질풍과 노도를 따라 올 수는 없다는 것이 또 한번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여유를 되찾은 이회옥은 고삐를 슬쩍 잡아 당겼다.

"하하! 알았소. 지금부터는 조금 천천히 가겠소. 워워…!"
"고, 고마워요."

속도가 늦추어지자 조연희는 이회옥의 등에서 얼굴을 떼었다. 그런 그녀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아까는 수 없이 쇄도하는 무적검이 무서워서 그랬고, 이번엔 너무 빨라 혹시 떨어질까 두려워 그의 등에 바짝 붙어 있었다.

덕분에 유난히도 발달한 가슴이 그의 탄탄한 등에 밀착되면서 이리저리 찌그려졌었다는 것을 상기한 때문이다.

"저어, 괜찮다면 말을 바꿔 타고 될까요?"
"그, 그러시…"

이회옥이 뭐라 말을 하기도 전에 조연희는 풀쩍 뛰어내리는가 싶더니 이내 노도에 올라타고 있었다. 이 한 동작만으로도 그녀의 기마술을 능히 짐작할 만하였다.

"핫핫! 이제 한번 달려 봅시다."
"호호! 좋아요. 이럇!"
두둑! 두두둑! 두두두두두두두!

한 쌍의 남녀를 태운 질풍과 노도는 그야말로 질풍노도처럼 내달렸다. 그런 그들의 뒤를 필사적으로 추격하는 한 무리가 있었다. 무림의 정의를 수호한다는 정의수호대원들이었다.

* * *

"어서 오십시오. 하도 안 오셔서 걱정하던 차였소이다."
"하하! 이거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장방 덕분에 잘 다녀왔습니다."

"허허허! 참으로 다행입니다. 자, 안으로 드시지요. 그렇지 않아도 소화타를 기다리시는 분이 있습니다."
"소생을 기다려요? 흐음! 누구지요? 위급한 환자인가요?"

"환자는 아닙니다. 허허! 가보시면 압니다."
"흐음! 누굴까? 누구지…?"

장일정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영화객잔 장방의 뒤를 따랐다. 궁금하였지만 촌각을 다투는 환자는 아니라기에 일단 마음은 편했다. 하지만 궁금하긴 하였다.

객잔 후원에 있는 별채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은 다름 아닌 상해무천장의 장주였다. 한가롭게 다향(茶香)을 즐기고 있던 그는 장일정을 봄과 동시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아니! 장주가 아니십니까?"
"아이고, 참으로 오랜만입니다. 하핫! 이거 소화타를 만나기가 하늘에 떠 있는 별을 따는 것보다도 어려우니…"
"예에? 무슨 말씀이신지요?"

무천장주의 말에 장일정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여기엔 없지만 혹시 다른 곳에 환자가 있는가 싶었던 것이다.

"하핫! 소화타께서 상륙하시면 이곳으로 제일 먼저 오실 것이라 생각했는데 본 장주의 생각이 맞았군요. 참으로 다행입니다."
"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소생은…?"

여전히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한 장일정은 대체 무슨 일인지 속 시원히 가르쳐 달라는 표정으로 장방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는 입을 열 생각이 없는지 빙그레 웃고만 있었다.

"하핫! 소화타, 특별히 가실 곳이 없으시다면 본 장주와 함께 무한으로 가주셨으면 합니다."
"무한이요? 거긴 왜…?"

"하핫! 먼저 감축드리옵니다."
"감축하시다니요? 대체 어찌된 영문인지 소생은…?"

"하핫! 가보시면 아실 것입니다."
"……?"

무천장주의 표정은 환했고, 태도는 정중하였다. 따라서 자신에게 어떤 해코지를 하려는 것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였다.

"하핫! 그렇게 궁금하신가요? 하핫! 그렇다면 속 시원히 알려드려야지요. 핫핫! 소화타께서 무천의방(武天醫房)의 방주(房主) 후보가 되셨음을 감축드립니다."
"예에…? 무천의방의 방주 후보라니요? 그게 뭐죠?"

장일정은 생전 처음 듣는 소리에 어리둥절해 하였다.

"하핫! 본성에는 학문을 익히는 문사들 가운데 최고들만 모인 무천서원(武天書院)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상인들을 위한 무천상단(武天商團)도 있지요. 최고의 음률을 자아내는 악사들을 위해서는 무천악가(武天樂家)가 있지요. 물론 의원들을 위한 곳도 있습니다. 무천의방이 바로 그곳입니다."
"그, 그럼 소생이 바로 그 무천의방의…? 에이, 그럴 리가요."

장일정은 너무도 얼떨떨하였다.

무천의방이란 곳이 대체 어떤 곳이던가? 그곳은 뛰어난 의술을 지녔다는 것이 입증된 의원만이 몸담을 수 있는 곳이다. 다시 말해 웬만한 의원은 손도 대보지 못할 고질이라 할지라도 손쉽게 고칠 능력이 있어야 갈 수 있는 곳이다.

거기엔 서고(書庫)가 하나 있는데 그곳엔 이 세상에 존재하였던 모든 의서들이 망라되어 있다 하여도 과언이 아니라 하였다.

그 가운데에는 전국시대(戰國時代)에서 진한(秦漢) 사이에 저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황제내경(黃帝內經) 원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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