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가게와 눈깔사탕을 추억하며

어렸을 적 눈깔사탕을 훔친 적이 있습니다

등록 2003.05.20 15:05수정 2003.05.20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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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깔사탕. 옛날만큼 왕눈사탕은 아니다. 오늘 열개는 깨물어 먹었다.
눈깔사탕. 옛날만큼 왕눈사탕은 아니다. 오늘 열개는 깨물어 먹었다.느릿느릿 박철
우리 집 애들이 시골에서만 살다보니 돈을 쓸 줄을 모른다. 할머니가 이따금 용돈을 주어도 환경이 그렇다보니, 돈의 사용처도 몰랐다. 애들이 가게에 가서 돈을 주고 과자 한 봉지 못 사먹고, 문방구에 가서 공책 한 권을 못 샀다. 아이들 표현을 빌리자면 ‘쑥스러워서’, ‘부끄러워서’였다. 아이들도 쑥스럽고 부끄러운 게 무엇인지를 아는 모양이다. 초등학교 1, 2학년 때까지 그랬다.


우리 집 병아리 은빈이가 가끔 떼를 쓴다. 돈을 달라는 것이다. 대룡리 피아노학원을 다니면서 다른 아이들하고 어울리다보니 돈을 쓰는 법을 배운 모양이다. 한번은 할머니가 만 원짜리 지폐를 주셨는데, 집에 오백 원짜리 동전 하나를 달랑 갖고 왔다. 아내가 돈 만원을 어디에 썼냐고 물었더니, 오빠 언니 친구들을 문방구에 데리고 가서 하나씩 다 사주었다고 한다.

막대사탕. 요즘 애들이 많이먹는 외제사탕이다. 무슨 맛인지 모르겠다.
막대사탕. 요즘 애들이 많이먹는 외제사탕이다. 무슨 맛인지 모르겠다.느릿느릿 박철
그날 은빈이는 아내에게 혼이 났다. 그런데 솔직하게 말하면 혼이 나는 은빈이가 귀여웠다. 7살짜리가 돈 쓰는 걸 알아서 언니 오빠들을 데리고 문방구에 가서 물건을 사주었다는 게 기특하고 신기했다. 시골에서만 20년을 살다보니 특이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은빈이 친오빠들은 초등학교 2학년까지 자기들끼리 구멍가게나 문방구를 가지 못했는데, 그럼 은빈이가 더 조숙한 것인가?

또 옛날 생각이 난다.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왕복 30리 길을 통학했다. 우리 집은 매우 가난했다. 굶지는 않았지만 배불리 먹지는 못했다. 어릴 적 기억이 4학년 때까지 용돈을 받아 본적이 없었다. 또 돈을 쓸 기회도 없었다.

애들이 오락을 한다. 집에 컴퓨터가 있는데 왜 돈주고 하냐고 물었더니 이게 더 재미있단다.
애들이 오락을 한다. 집에 컴퓨터가 있는데 왜 돈주고 하냐고 물었더니 이게 더 재미있단다.느릿느릿 박철
새벽밥을 먹고 학교엘 간다. 여름이나 겨울이나 나는 제일 먼저 학교에 도착했다. 화천초등학교 교문 근처에 오면 문방구겸 구멍가게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전교생이 2000명이 넘는 제법 규모가 큰 학교였다. 내가 지나가는 코스에 구멍가게가 한집 걸러 하나씩 있었는데 언제나 내 발길을 멈추게 하였다.

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게 ‘딱지와 눈깔사탕’이었다. 그 밖에 풍선, 과자, 공책이 수북하게 쌓여있는데 한마디로 그림의 떡이었다. 4학년 때까지 한번도 내 돈을 내고 물건을 사 본 경험이 없었다.


학교 가는 길 구멍가게 앞을 지나가려면 나를 유혹하는 것이 ‘왕방울 눈깔사탕’이었다. 그 놈을 하나 입에 넣으면, 입안이 가득하여 볼 딱지가 불룩 나올 정도로 큼직한 사탕이었다. 어쩌다 어머니가 장날 눈깔사탕을 사오면 그걸 몇 조각으로 깨트려서 나눠먹었다.

대룡리 문방구. 별의별 게 다 있다. 화장품도 팔고 지렁이도 판다. 정겹다.
대룡리 문방구. 별의별 게 다 있다. 화장품도 팔고 지렁이도 판다. 정겹다.느릿느릿 박철
눈깔사탕이 나를 쳐다본다. 나도 눈깔사탕을 쳐다본다. 마른 침을 꼴깍 삼키며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학교에 들어서곤 했다. 그러던 2학년 어느 날이었다. 어느 구멍가게 앞에 나는 한참을 서 있었다. 이른 시간이어서 아무도 지나가는 사람이 없었다.


그 쓸쓸한 구멍가게 앞에 서 있는 내 가슴이 콩당 거리기 시작했다. 아무도 지나가는 사람도 없고 보는 사람도 없었다. 나의 손은 진열장 속에 있는 눈깔사탕 몇 개를 집어 들었다. 사방을 두리번거렸지만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얼른 눈깔사탕을 호주머니에 집어넣고 가게에서 나와 학교 쪽으로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그런데 누가 뒤에서 나를 부르고 있었다.

“야! 임마! 너 잠깐 거기 서 봐!”

교동중고앞 구멍가게. 간판이 없다. 그래도 학생들이 애용한다.
교동중고앞 구멍가게. 간판이 없다. 그래도 학생들이 애용한다.느릿느릿 박철
구멍가게 아저씨였다. 내가 매일 그 집 앞에서 서성거리며 서 있었을 때, 그 아저씨와 여러 번 눈이 마주 쳐 그 아저씨의 얼굴을 잘 알고 있었다.

“너, 새끼, 사탕 훔쳤지?”
“.....”
“어디 주머니 좀 보자.”

나는 꼼짝없는 도둑놈이었다. 그 아저씨는 내 뒷목덜미를 잡더니 나를 잡아끄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내 입에서 “잘못했어요, 용서해 주세요.” 하는 말이 나오질 않았다.

나는 그 아저씨에 의해 교무실로 끌려갔고 그 아저씨의 진술에 의해 상습적으로 눈깔사탕을 훔친 도둑이 되었다. 우리 반 담임선생님이 나를 부르시더니 “철아, 너 사탕이 먹고 싶었던 게로구나. 너 같이 착한 애가 얼마나 사탕이 먹고 싶었으면....” 그러면서 내 머리를 만져 주셨다.

읍내리 구멍가게. 가게 앞에 철쭉이 피었다.
읍내리 구멍가게. 가게 앞에 철쭉이 피었다.느릿느릿 박철
구멍가게아저씨는 소리 소리를 지르며 ‘저 녀석이 한두 번 훔친 게 아니다’ 라며 학교에서 물어내지 않으면 경찰서로 끌고 가겠다고 했다. 초등학교 2학년 담임선생님이 대신 돈을 물어주셨다.

“철아, 다음부터 절대로 그런 짓을 하면 안 된다. 그리고 오늘 있었던 일은 비밀로 하자. 너네 부모님께 말씀드리지 않을께.”

김영식 선생님, 살아계셨으면 연세가 팔십 가까이 되셨을 것 같다. 내가 평생 갚아도 갚을 수 없는 은혜를 베풀어 주신 선생님이시다. 구멍가게와 눈깔사탕은 나의 유년시절을 반추하게 하는 세 번째 단추이다. 우리집 병아리 은빈이가 막대사탕을 빨아먹는 모습을 보며 가끔 그 시절을 추억하게 된다.

김영식 선생님, 고맙습니다.

지석리 구멍가게. 우리 동네이다. 그중 제일 현대식건물이다.
지석리 구멍가게. 우리 동네이다. 그중 제일 현대식건물이다.느릿느릿 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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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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