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듣는 말없는 자연의 소리

나무의 깊은 향은 옹이에 삶의 깊은 향은 굳은살에

등록 2003.05.21 15:14수정 2003.05.21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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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주는 혜택을 가장 많이 누리면서도 인간만큼 자연을 파괴하고 소비하는 존재는 없다. 쓰레기를 만드는 유일한 존재, 그래서 지혜로운 것 같지만 결국 자신의 무덤을 스스로 파는 존재는 인간이 유일하다.


끊임없이 소비하는 것이 미덕인 것처럼 착각하며 살아가게 만드는 사회구조나, 그 거짓 이데올로기를 내면화시키고 살아가는 있는 현대인 모두 심각한 병에 걸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심각한 병은 자연의 주는 소리를 듣는 능력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자연이 주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려면 인내심이 요구되니 느릿느릿 가야하고, 현실의 경제적인 가치로 따지면 빨리빨리라는 경쟁구도에서 이탈해야하니 비경제적이다. 더 나아가서는 탈사회적이다.

맥주보리가 익어가고 있습니다(북제주군 구좌읍 하도리)
맥주보리가 익어가고 있습니다(북제주군 구좌읍 하도리)김민수

보리가 한창 여무는 계절이다. 보릿고개라는 말은 옛말이 되어버렸고 지금은 맥주를 만드는데 사용된다하여 아예 '맥주보리'라고 한다. 술과 인간의 역사는 같을지도 모르겠지만 한잔 술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곡식이 들어가야 하는가를 생각하면 술을 마신다는 것 자체가 아직도 지구상에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죄를 범하는 일이다.

술 문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소비하며 살아간다는 자체가 죄를 범하는 일이니 사도 바울의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라는 탄식이 절로 나오게 된다. '소비자'라는 말처럼 사람은 비하시키는 말이 또 있을까 싶다.

김민수

보리이삭은 밟아 주어야 더 많은 결실을 맺는다고 한다. 보리밟기는 그들을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난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더 강인한 줄기를 만들어 내고 더 많은 결실을 맺게 하기 위한 과정이다. 보리의 어린 싹은 밟혀야 더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것을 통해서 우리의 삶에 갑자기 다가오는 고난들도 연단의 과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늘 희망일 것이다.


텃밭에 이것저것 심으면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농사짓는 일이 다 비슷하려니 생각했는데 같은 뿌리 식물이라도 전혀 다르게 가꿔야 함을 알게 되었다.

토란이나 감자는 북을 많이 주어야 한다. 그러나 요즘 수확을 앞두고 있는 마늘은 북을 주면 안 되고 오히려 조금씩 흔들어 주어야 알이 잘 맺힌다고 한다. 채소는 너무 촘촘하게 심으면 안 되는 법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갓은 촘촘하게 심어야 한단다.


포도나무는 가지치기를 적절하게 해주어야 하고, 귤은 물이 잘 빠지는 자갈밭이라야 당분이 풍부한 귤을 얻을 수 있단다. 란(蘭)에 꽃을 피우려면 너무 물을 많이 주면 안 되고 적당한 갈증을 주어야 한단다.

주워 들은 이야기라 과학적으로 맞는지 틀리는지는 확인해 본바 없지만 그 말대로 농사를 지어보니 틀림이 없는 진실이다.

김민수

나무와 꽃과 들의 이름도 없는 야생초까지도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 속에 삶의 이치와 원리가 들어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그것들을 가까이 하다보면 사람 사는 도리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배우게 된다. 자연이 말없이 주는 지혜의 소리다.

귀가 먹어서 귀머거리가 아니라 자연이 주는 소리를 듣지 못하면 귀머거리요, 말을 못해서 벙어리가 아니라 남을 해치는 말밖에는 못하고 희망을 주는 말을 못하면 벙어리가 아닌가?

김민수

덩굴식물이 아주 오래된 소나무를 기둥 삼아서 하늘을 향한다. 소나무의 연륜과 올해 새순을 내고 막 기어오르는 새순의 연륜이 비교나 할 수 있겠냐마는 소나무는 그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저렇게 온 몸을 다 내어 주다가 자기의 생명이 위협을 당할지도 모르겠는데도 말이다.

군대식 위계질서가 굳건한 사회에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지만 자연에서는 그것이 아무런 문제가 되질 않는다.

소나무를 감고 올라간 덩굴이 제법 굵은 곳에는 소나무도 그 아픔을 이겨내기 위해 옹이를 내었다. 옹이는 나무의 향이 가장 깊이 베어있는 곳이라고 하니 옹이가 깊은 향을 품고 있을 수 있는 이치를 깨닫게 된다.

노동자와 농민들의 손에는 굳은살이 있다. 굳은살은 사람의 삶이 가장 깊이 배어있는 흔적이다. 저 소나무의 옹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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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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