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함께 한 오붓한 산행

등록 2003.06.01 22:24수정 2003.06.02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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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물휴양림을 함께 오르는 둘째 딸 진희의 맑은 웃음이 나는 너무 좋다. ⓒ 김민수

개인적으로 홀로 떠나는 여행보다도 가족들 모두가 함께 떠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6월이 시작되는 날 길어진 해 덕분에 일과를 마친 오후에 짧은 여행을 다녀와도 좋을 만큼 해가 남아있었다.

집에서 차량으로 30분 가량이면 도착할 수 있는 절물휴양림이 여행의 목적지였고, 휴양림 내에 있는 오름의 전망대가 최종목표지였다. 울창한 삼나무 숲의 기운으로 여름을 향해 가는 듯한 더운 날씨도 이 곳에서는 한 풀 꺽였다.

가족 중에서 전망대에 가보지 못한 사람은 둘째와 나였는데 막내는 연못에서 올챙이를 잡는다고, 큰딸은 엄마와 함께 삼나무 숲을 거닐며 삼림욕을 한다며 둘째와 나만 올라갔다 오란다.

둘째와 함께 오붓한 등산로로 접어들어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가기 시작했다.
"진희야, 등산은 말이야 빨리 올라갔다 오는 것보다도 천천히 올라가면서 주위의 풍경도 구경하고, 이런저런 생각도 하면서 해야 등산의 참 맛을 알 수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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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함께 올라가던 한 무리의 꼬마들이 정상을 향해 질주를 한다.

"빨리 올라가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란다. 너무 빨리 올라가다 보면 보아야 할 것도 보지 못하고 지나치게 되거든. 우리 천천히 올라가면서 사진 찍을 만한 것이 무엇이 있나 한 번 보자꾸나."

진희가 제일 먼저 발견한 것은 나무에 생긴 버섯이었다.
"우와, 우리 진희가 보는 눈이 있네. 그래 한 번 잘 찍어서 어떤 풍경이 되나 보자."
뿌듯해 하는 진희, 딸의 손을 잡고 한 걸음 한 걸음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발걸음이 가볍기만 하다. 집에서는 아빠가 예쁜 손 한번 잡아보자고 해도 쌀쌀맞게 뿌리치던 녀석이 아주 오랫동안 손을 잡고 있는데도 가만히 손을 맡기고 있다.

딸아이가 훌쩍 커서 결혼식장에서 딸아이의 손을 잡을 때 서운하지 않도록 자주 따스한 손을 잡고 데이트를 해야겠다. 가족 모두가 함께 하는 여행도 좋지만 이렇게 딸아이와 단 둘이 하는 여행의 묘미도 참으로 좋은 것 같다. 다음 기회에는 큰딸, 막내도 일대 일로 여행을 해야겠다.

버섯이 처음에 보여서일까? 버섯이 나올 철이기도 하지만 딸아이의 눈에는 자꾸만 버섯이 보이나보다. 참 신기한 눈이다.

꽃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는 아빠의 취미를 알기에 꽃을 찾으려고 부단히 노력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비가 한 차례 온 뒤라서 꽃보다는 버섯이 더 많다.

"진희야, 이렇게 카메라도 담으면 또 다른 풍경이 카메라도 들어온단다. 아빠가 찍은 이 사진은 누구도 똑같이 찍을 수는 없지. 세상에 단 한 장뿐인 사진이야. 아마, 이따 내려오다 찍어도 똑같은 사진을 찍을 수는 없단다. 해가 떠있는 각도에 따라 다르거든."

화가가 꿈인 딸은 고개를 끄덕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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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끼의 삭 ⓒ 김민수


"자, 이젠 아빠가 찾아볼까? 자, 이게 뭔지 아니?"
"굉장히 작네? 이게 뭐야 아빠?"
"응, 이건 이끼삭이라고 한단다. 벼이삭, 보리이삭이라고 할 때처럼 이끼의 삭이라고 하는 거지."
"그런데 이것도 찍으면 예뻐?"
"그래, 기다려 봐라. 음, 저녁햇살이니까 빛을 이용하면 좀 다른 모양이 나오겠구나. 각도에 따라서도 다르고, 빛의 밝기에 따라서도 다른 느낌을 준단다."

정말 오랜만에 딸의 손을 오랫동안 잡아 보았다.
등산을 시작할 때 허겁지겁 뛰어 올라갔던 개구쟁이들이 우르르 몰려 내려온다.

"애들아, 벌써 갔다 오냐? 이것저것 구경 좀 하면서 등산을 해야 제 맛이란다. 좀 천천히 내려가려무나."

"진희야, 화가가 되려면 아주 작은 것도 자세하게 관찰하는 훈련을 해야 한단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을 때 너의 예술의 세계가 열리는 거란다."

"아빠, 이끼삭 찍은 사진 좀 보여 줘봐."

아주 천천히 이것저것 둘러보느라 다른 사람들보다 늦게 정상에 올랐다.

그렇게 느릿느릿 걸어왔지만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정상은 가까워졌고, 천천히 걷는 걸음걸이만큼 딸아이와 마주잡은 손으로 전해지는 사랑을 마음 속 깊이 담을 수 있었다.

정상에 오른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그러나 더 기분 좋은 일은 정상을 오르는 길에 마주치는 사람들과 언제나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는 자연들을 천천히 살펴보는 일이다.

게다가 오늘은 딸아이와 오붓한 데이트가 있었으니 더 기분 좋은 산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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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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