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두각시 황제 푸이(溥儀)의 위황궁

항일유적답사기 (31) - 장춘(Ⅰ)

등록 2003.06.04 19:44수정 2003.06.08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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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위황제의 용상(龍床)이 있었던 동덕전. 지금은 갈림성 박물관 전시실로 사용되고 있다.

위황제의 용상(龍床)이 있었던 동덕전. 지금은 갈림성 박물관 전시실로 사용되고 있다. ⓒ 박도

장춘으로 가는 길

오후 4시 30분, 장춘행 중국북방항공 여객기는 연길 공항을 이륙했다. 김, 이 선생 두 분은 비행기 탑승 때마다 창 옆 좌석은 늘 나에게 양보했다. 하나라도 더 많이 보라는 마음씀이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중국대륙은 온통 초록의 풍성한 잔치였다. 경작지가 바둑판처럼 끝없이 펼쳐졌다. 이 모든 산하가 지난날 우리 조상들의 항일 투쟁터로 그분들 피와 땀이 흥건히 괸 땅이었을 게다.

중국은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나라다. 국토가 엄청나게 넓고 인구가 세계 최대인 나라다.

내가 잠깐 살펴 본 바로도 중국은 지금 온 나라 안에서 새로운 중국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가는 곳마다 건설 붐이 한창이었다. 이 거대한 중국이 새 모습으로 단장되는 날, 세계의 판도는 달라지리라.

a 연길 공항

연길 공항 ⓒ 박도

한 미래학자는 다가오는 2025년에는 중국의 국민총생산(GNP)이 세계 최고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면서 21세기를 ‘아시아의 시대’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중국은 많은 문제점도 안고 있었다. 인구 과밀에 따른 대량 실업, 개방화에 따른 빈부격차, 빈약한 준법정신, 소수 민족문제, 민주화 요구와 인권 문제, 황금 만능주의 사회 풍조, 노령화 문제 등. 나라가 크고 인구가 많은 만큼 숱한 문제가 쌓여 있기 마련인가 보다.


하긴 중국의 한 성보다도 작은 우리나라에서도 남북 분단도 모자라서, 동서로 나뉘어지고 계층 간 갈등이 시끄러운데 큰 나라야 오죽하랴.

사람이 사는 곳에는 늘 말썽이 있는가 보다. 부처님 왈(曰), 인간 세상 고해(苦海)!


이런저런 생각에 젖어 있을 새, 여객기는 장춘 공항에 사뿐히 안착했다. 5시 10분, 정시 도착이었다.(중국에서 교통은 아직도 제 시간을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다).

장춘 공항은 그 새 두 번째 발을 딛기에 낯설지 않았다. 공항을 빠져 나온 후, 나는 김 선생을 졸랐다. 마지막 황제 푸이(溥儀)가 집정했던 위황궁(僞皇宮)을 꼭 보고 싶다고 했다.

김 선생은 이미 개관 시간을 넘겼다고 난색을 했지만, 먼발치에서 건물이라도 한번 봐야겠다고 떼를 썼더니 택시 머리를 그쪽 방향으로 돌렸다.

공항을 출발해서 부지런히 위황궁으로 갔으나 5시 40분, 이미 관람 시간이 지났다. 나는 집표원의 허락을 받아 바깥에서 건물의 겉만 사진 찍는 걸로 만족해야 했다.

부패·낙후·내전이 국치의 원인

a 괴뢰 만주국 위황궁 정문

괴뢰 만주국 위황궁 정문 ⓒ 박도

2000년 8월 21일, 허형식 열사의 자료를 모으고자 제2차 동북 답사 길에 위황궁을 다시 들렀다. 장춘역에서 그리 멀지 않는 괴뢰 만주국 황궁은 지금은 정문 좌측 기둥에 ‘僞皇宮陳列館’(위황궁진열관), 우측 기둥에는 ‘吉林省博物館’(길림성박물관)이란 현판을 달고 있었다.

위황궁이란 ‘거짓·가짜 황궁'을 뜻한다. 민족을 반역한 황제가 살았다고 후세 사람들은 그의 황궁을 모욕적으로 ‘위황궁’이라고 부른 모양이다.

입장료를 내고 정문을 지나 외정 집회루(緝熙樓)에 들어서자마자 “勿忘 九·一八”(물망 9·18)이라는 장쩌민 주석의 글이 큰돌에 새겨져 있었다. 중국인에게 산 역사의 교육장으로 활용하면서, 지난 치욕의 역사를 잊지 말자는 맹세의 뜻을 담았나 보다.

집회루는 사치의 극치를 이룬 황후의 침실과 각종 의복·장식품들이 전시됐고, 뒤뜰 근민루(勤民樓)는 주요 내빈 접대와 의식 장소로 사용되었던 곳으로 푸이와 관동군사령관이 독대(獨對)한 장면, 아편에 찌든 황후 완용의 납인형이 전시되어 꼭두각시 황제 일가의 일그러진 모습을 읽을 수 있었다.

외정 왼편 부속실 들머리에는 “以皇帝到公民”(이황제도공민- 황제에서 평민에 이르기까지)라는 글이 붙어 있었는데, 세 살의 어린 황제 즉위식부터 평민으로 삶을 마감할 때까지 푸이 전 생애의 사진이 시대 순서대로 배열돼 있었다.

이어서 괴뢰 만주국 14년(1932년~1945년) 동안의 일제 침략·약탈사 등이 각종 사진과 도표로 일목요연 전시한 바, 장개석(蔣介石) 국민당 정권과 동북 군벌의 “腐敗·落後·內戰”(부패·낙후·내전)이 국치를 당한 원인이라고 세 단어로 요약했다.

만주국 14년 동안 500만 명의 동북 백성들이 일제에 의해 죽거나 다쳤으며 주요 산물의 절반 이상을 약탈당했으며 일제가 만든 180만 발의 유독탄(留毒彈)이 만주 대륙을 뒤덮었다고 게시돼 있었다.

a 위황궁 집회루

위황궁 집회루 ⓒ 박도

진열관에는 수많은 해골, 팔다리가 잘리고 창자가 터진 시체더미가 시산시해(屍山屍海)를 이룬, 마치 인간지옥을 연상케 하는 당시의 참상 사진은 동병상련의 처지인지 나그네로 하여금 처절한 통분을 느끼게 했다.

이러고도 일제는 “대동아 공존공영(共存共榮)”·“오족(五族: 만족·한족·몽골족·조선족·일본족) 협화(協和)”를 부르짖었다.

다시 입장료를 내고 길림성 박물관으로 갔다. 내정 동덕전(同德殿)은 용상(龍床)이 있는 전각으로 이층 전시실에는 상고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유물이 전시된 바, 고구려 발해 시대의 문물도 보였다.

동덕전 겉모습은 우리나라에서도 상영된 바 있는 영화〈마지막 황제〉에 나오는 장면으로, 나그네의 눈에도 많이 익은 건물 모양이라 기억을 더듬자 지난날 경무대의 건물과 너무나 흡사했다.

하긴 경무대가 원래는 조선총독부 관저였으니 일제는 같은 설계 도면으로 동덕전을 세웠나 보다.

동덕전 앞은 건국신묘(建國神廟)였던 바, 1945년 8월 11일 푸이가 러시아 침공에 쫓겨 황궁을 탈출한 그날 밤 불에 타 버려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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