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포장도로 위의 디지털 음악

[나의승의 음악이야기22]

등록 2003.06.18 11:04수정 2003.06.20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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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Compact Disc)가 생산된 지 20년이 지났다. 요즘은 DVD 와 SACD(Super Audio C D)까지 등장해서, 디지털 시대의 한복판에 와 있는 것만 같다.

디지털 녹음의 매체들을 듣다 문득 아날로그 LP(Long Playing record)를 듣게 되면, 마치 비포장 도로를 한참 달린 끝에 포장도로에 올라 부드러운 승차감에 안도의 한숨을 쉬듯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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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승

그렇게 느끼는 근거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현대의 디지털음악들은 아날로그시대의 그것과 비교했을 때, 물리적으로 더욱 우수하다.

20헤르츠에서부터 2만 헤르츠까지의 범위로 음악을 기록하고 재생했던 LP에 비교했을 때 디지털 재생기기들은 저음20헤르츠부터 고음 4만 헤르츠까지도 재생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아날로그에 비교했을 때 고음재생 능력이 탁월하다. 게다가 24비트의 시대인 지금은 음의 밀도 면에서도 더욱 치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계적으로 더욱 우수한 매체인 CD가 LP보다 듣기 편안하지 못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존재한다.

물론 과거의 LP에 뒤지지 않을 만큼 좋고 오래 들어도 싫증을 느끼지 않는, 그런 음질을 재생해 주는 디지털 재생기기는 분명 존재하지만 그런 기기들은 조금 음질이 좋다 싶어 가격을 물어 보면 천만원에서 심지어는 5천만원 또는 1억이 넘는다.


합리적이고 이유있는 경제적인 지출을 통해서 최선의 음악을 즐길 수 없는 시대라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빌어먹을 디지털 시대는 아직 비포장 도로를 헤매고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CD를 읽어내는 지구상의 대부분의 '레이저 픽업'은 모두 '소니' 아니면 '필립스'다. '소니'와 '필립스'가 손잡고 앞서 주도해온 디지털 음악 매체의 시대, 어쩌면 인류 모두는 그들이 만든 디지털 매체의 희생제물이 되어 왔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전축판'이라고 불렀던 LP레코드는 소량이지만 여전히 생산되고 있고 '턴테이블'역시 아직 제조되고 있으며, '전축바늘'에 해당하는 '카트릿지'도 여전히 생산되어 팔리고 있다.

여러 종류의 CD 플레이어들이 고장이 나서 주인의 곁을 떠나는 동안 '턴테이블'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은 안다. 그들의 '아날로그 엘피 플레이어'가 얼마나 오랫동안 그들의 곁을 지켜주고 있었는지.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2세에게 물려주기도 한다.

음악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기계냐 음악이냐" 선택하라고 말한다면 대부분이 음악이 먼저라고 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가끔 방황한다. 혹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방황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은 더 넓은 주파수 대역을, 더욱 기계적으로 우수한 내용으로, 크기도 작고 무게도 덜 나가는 소재로 음악을 들을 수 있다고 말하는 그런 디지털시대이다. 그러나 디지털은 아날로그가 없다면 결코 홀로 존재할 수 없는 세계이다.

아날로그냐 디지털이냐에 상관없이 음악이란 인류가 긴 세월 만들어 온 세상의 모든 의사전달의 언어 중에 가장 아름다운 언어이므로 기계적인 성능도 중요하겠지만, 먼저 예술과 감성의 아름다움을 담아 전달하는 인간미의 문화상품이 되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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