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12년 전의 일이니 올해로 벌써 그 아이가 고3이 되었겠다. 난 그 날의 일을 생각하면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참으로 기특한 어린이 그 아이가 지금은 어떻게 자라고 있을까?
교감이 되도록 나는 교사시절 27년 동안에 단 한 번도 1학년 담임만은 해보지 못하였다. 발령을 받던 해에 처음 1학년 담임을 맡았으나 3일쯤 지난 다음에 당시 57세의 선배님 때문에 담임을 바꾸지 않을 수 없어서 일 학년 담임을 한 것은 이 3일간이 유일한 경험이었다.
그런데 교감으로 나가서 첫 해인 이 때 유치원교사가 갑작스런 복통으로 학교에 나오지 못하는 사고가 생긴 것이다. 요즘처럼 교가전담 교사도 없던 시절인 데다가, 초등학교도 아니고 유치원이다 보니까 누가 들어가서 아이들을 데리고 있다가 보내야 하는 데 갈 사람이 없었다. 교무실에는 나 혼자뿐인데 모른 척하고 놔 둘 수도 없는 형편이어서 어쩔 수가 없어서 교감인 내가 보결 수업을 들어 갈 수밖에 없었다.
교감이라고 가끔 수업하는 것을 둘러보는 일은 있었지만, 이 아이들을 데리고 수업을 한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저학년이라는 2,3학년도 단 3년 밖에 담임을 해보지 않았을 정도로 주로 고학년만 담임을 하던 내가 유치원 아이들과 눈 높이를 맞춘다는 것이 쉽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과 함께 노래도 하고 구수한 옛날 이야기도 하면서 한 시간을 보내고 나니 등에 진땀이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다음 시간에는 아이들과 놀이터에 가서 유원장의 각종 놀이 시설을 타는 방법을 배워주고 차례를 지키는 훈련을 해보았더니 아이들은 아주 잘 지켜 주었다.
간신히 세 시간을 자치고 아이들은 하교시키고 나서 하루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어찌 되었든지 처음으로 유치원과 하루를 보낸 경험을 한 나는 아이들에게 잘 못한 일은 없는지 걱정만 되었다.
이튿날 아침 유치원 선생님은 핼쓱한 얼굴이 되어 가지고 학교에 왔다. 아이들을 세 시간만 하고 돌려보내고서도 힘들어하여서 일찍 귀가 시켜 병원에 가게 해주었다. 아이들을 돌려보내고 나갔지만 유치원이 어찌 되었는지 궁금하여 가보았더니, 한 아이가 혼자서 청소를 하고 있었다. 나는 이 아이를 불러서 돌려보내려고 생각하고 교실로 들어섰다. 그러자 그 아이가 나를 먼저 발견하고서는 꾸벅 인사를 하면서
"원감선생님 어제는 감사했습니다."
하는 것이 아닌가? 난 정말 이 아이가 그런 말을 한 것인가 눈을 의심하였다.
'아무리 아파서 학교를 못 나왔다고는 하지만 그 아이를 담임한 유치원선생님에게서도 그런 인사를 받지 못했는데 저 조그만 아이가 이런 인사를 하다니......'
나는 너무 반갑고 이 아이의 부모님이 얼마나 바른 가정 교육을 시키고 있는 분들인지 꼭 한 번 만나 뵙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예, 너 누구냐? 왜 너 혼자 청소를 하고 있어?"하니까,
"아이들은 집이 멀다고 그냥 가버려서 청소하고 있어요"하여서 내가 다가가서 듬직한 사내아이를 번쩍 안아 올려서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면서 "이렇게 예쁘고 잘 배운 아이는 이름이 뭐지요?"하고 유치원 식으로 물었더니 빙그레 웃으면서 "김 00입니다"하고 이름을 밝혀 주었다. 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자 이젠 청소 그만하고 가도 되요. 점심시간에 언니들이 와서 잘 해줄 테니까 그만 가도록 해요. 어서 가서 점심 먹어야지?"하고 돌려보냈다.
유치원 담임선생님은 자신의 일을 대신해주었어도 감사하다는 한마디, 수고 하셨다는 한 마디 인사를 하지 않았는데, 오히려 그 어린 유치원생이 '어제는 감사했습니다.' 하는 인사를 하는 것을 보고 아무리 어린 아이라도 이렇게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얼마나 훌륭한지 깨닫게 해주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인색한 말이 [감사합니다][수고하셨습니다]라지만 우리 어린이들은 물론 어른들도 이제는 [감사하다]는 말을 자주 쓰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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