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164

썩은 개의 시체 (5)

등록 2003.06.20 13:18수정 2003.06.20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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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여인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유대문주인 이수나알(利收拿謁) 사론(史論)의 여식 빙기선녀(氷肌仙女) 사지약(史芝若)이다.

철기린의 안위를 책임진 십팔호천대의 두 대주(隊主) 가운데 하나인 무영은 그녀를 보는 순간 그대로 뇌쇄(惱殺)되고 말았다. 너무도 아름다웠기 때문이었다.


빙기옥골(氷肌玉骨)을 지닌 월하선녀(月下仙女)라는 뜻을 함축시킨 빙기선녀라는 외호는 그녀의 아름다움을 평가하기엔 다소 부족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철기린이 임풍옥수(臨風玉樹)라면 사지약은 경국지색(傾國之色)이며, 해어화(解語花)이고, 화용월태(花容月態)하며, 침어낙안(侵魚落雁)하게 하는 아름다움을 지닌 천하절색이었다.

유대문에 도착한 다음 날, 그녀의 청백을 차지한 철기린은 이틀을 묵으려던 애초의 계획을 대폭 변경하였다.

첫째는 눈부신 그녀의 아름다움에 매혹되었기 때문이었다.

둘째는 봉밀(蜂蜜) 같이 달콤한 그녀의 언변 때문이었다. 어찌나 말을 잘하는지 듣고만 있어도 살이 떨릴 지경이었다.


셋째가 가장 결정적인 이유인데 사지약이 만에 하나 있을까 말까하다는 소위 말하는 명기(名器)의 소유자였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그녀와 음양화합을 하는 동안 뼈가 타고 살이 녹아 내리는 듯한 쾌감에 전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유대문에 머물던 두 달 동안 철기린은 그녀와 더불어 낮에는 시서가무(詩書歌舞)를 즐겼고, 밤이면 침상이 부서지도록 운우지락(雲雨之樂)을 나누느라 세월 가는 줄 몰랐다.

그러다 보니 유대문주인 사론과는 자주 접촉할 수밖에 없었다.

철기린은 그와의 대화를 통해 무림천자성이 어떤 상황인지를 그야말로 명확히 파악할 수 있었다.

현재 무림천자성의 모든 재물을 유대문이 대신 관리하다시피 하고 있었다는 것을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천하에 있어 그들만큼 탁월한 이재능력을 지닌 집단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었기에 이것에 대한 이론(異論)이 없었다.

따라서 대화에 걸림돌이 될만한 것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대화 도중 노군령에 있는 수없이 많은 호소(湖沼) 중 하나의 바닥에 엄청난 양의 금강석(金剛石)이 쌓여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사론은 그 정도면 무림천자성의 전 재산과 맞먹을 정도라 하면서 유대문이 왜 노군령에 있어야 하는지를 설파하였다.

은자가 곧 힘이라는 것을 잘 아는 철기린은 그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노군령을 차지하고 있던 팔래문은 마도계열의 문파이다.

오랜 동안 노군령 일대에 머물렀지만 그들은 금강석의 존재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

만일 이 사실이 알려지고 모든 재물이 마도 무림의 쌍두라 일컬어지는 일월마교나 화존궁으로 흘러들어 가게될 것이다.

유대문과 맞서 싸우는 그들은 모든 병장기를 일월마교나 화존궁에서 구입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다면 무림천자성에 그러하였듯 화존궁이나 일월마교 역시 강해지게 될 것이다.

그러면 무림천자성이 더 이상 무림을 독패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것을 충분히 짐작된다. 따라서 무림천자성이 계속해서 강호 최강의 방파가 되기를 원한다면 유대문을 철저히 보호해야 한다 하였다. 철기린으로서는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이었다.

사론의 말에 일리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것으로도 부족한지 사론은 은근한 협박을 하였다.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무림천자성의 모든 재물을 감추거나 유대문 소유로 바꿀 수 있다고 한 것이다.

게다가 무림천자성의 수뇌부 가운데 구 할 이상이 유대문과 음으로 양으로 연결되어 있으니 앞으로도 유대문에 깊은 관심을 보여달라고 부탁하였다.

이 말은 말로만 부탁이었지 따지고 보면 반쯤 협박이었다.

만일 구신혁이 성주가 된 이후 유대문에서 모든 재물을 빼돌리고, 수뇌부들로 하여금 반역을 꾀하도록 회유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당시 구신혁은 사지약과의 뼈가 타고 살이 녹는 듯한 밤이 계속되던 때였다. 그녀가 너무도 마음에 들었기에 그때까지 어느 누구에게도 장인이라는 칭호를 사용하지 않던 그였지만 사론에게만큼은 서슴없이 장인이라 하였다.

그녀에게 완전히 매료(魅了)된 것이다.

나중에 철기린은 총단에 돌아온 이후에야 자신이 협박을 당했었다는 것을 깨닫고 실소를 머금지 않을 수 없었다. 그만큼 그의 언변이 교묘하였던 것이다.

사람의 애간장을 녹일 듯한 사지약의 입에 발린 애교가 누구에게서 연유되었는지 궁금해했는데 그 근원이 밝혀진 것이다.

오늘 철기린 구신혁이 월빙보 공격에 적극 찬성을 하고 나선 것도 따지고 보면 유대문 때문이다.

현재 사지약은 구신혁의 처소인 기린각에 머물고 있다.

아직 혼례도 올리지 않았건만 공식적으로 기린각에 머물게 한 최초의 여인이었다. 하루라도 그녀가 없으면 살 수 없을 것 같아 아예 데리고 온 것이다.

사론이 그녀와 혼례를 올리면 수없이 많은 금강석들이 있는 호소의 위치도 공개할 용의가 있다고 하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도 막대한 재물 덕분에 무림을 좌지우지하고 있지만 거기에 금강석들이 추가되면 지금보다도 훨씬 더 강력한 무림천자성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구신혁은 조부인 화롱철신이나 부친보다도 더 강력한 무림천자성을 만들고 싶은 욕심에 그녀와 혼례를 올릴 결심을 하였다.

다만 때가 때인지라 혼례를 올리겠다는 소리를 못하고 있을 뿐이다. 이번 월빙보 침공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그때는 공론화 하여 성대한 혼례식을 치를 생각이었다. 그리고 때가 되면 부친으로부터 성주직을 이양받을 생각이었다.

구신혁이 강경해진 또 다른 이유는 무림천자성 수뇌부 대부분이 유대문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사론은 구 할이라고 하였으나 철기린이 보기엔 구 할 하고도 구 푼이 유대문과 알게 모르게 연결되어 있었다.

확인된 바에 의하면 청렴결백하기로 무림천자성 최고로 일컬어지는 제일호법 조경지와 누구에게든 얽히기 싫어하는 것으로 유명한 비보전주 고파월만이 유대문과 관계가 없었다.

심지어 자신을 호위하는 십팔호천대 전원이 유대문의 뇌물에 녹아들고 있었다. 무영을 감시하라 하였던 또 다른 호천대주인 무흔은 그보다도 훨씬 먼저 유대문에 포섭되어 있었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감시하라 한 셈이었다. 따라서 유대문과 반목하면 좋을 게 하나도 없다. 그렇기에 강경파로 돌아선 것이다.

유대문과 늘 앙숙처럼 으르렁대는 팔래문의 가장 큰 후원자가 바로 월빙보이다. 그렇기에 그들을 없애는데 나서주었으면 좋겠다는 전언(傳言)이 있었다.

며칠 전, 한바탕 운우지락을 나눈 뒤 나란히 베개를 베고 눕자 사지약이 한 말이다. 간곡하게 부탁하는 말투였는지라 당시엔 깨닫지 못하였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 명령을 한 것이다.

하여 속으로 이를 갈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라 판단하여 울며 겨자 먹는 식으로 참고 있는 것이다.

물론 언젠가는 반드시 자신의 상투 위에 올라서려 한 유대문을 처참하게 징계할 것이라는 마음을 품고 있었다.

지금의 수뇌부들이야 썩었기에 성주가 된다 하더라도 수족처럼 부릴 수 없지만 자신의 시대가 도래하면 그들 모두는 도태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장차 중용(重用)하겠다는 생각에 제왕비를 하사한 이십사 명이 차지하게 될 것이다.

현재 그들은 하위직에 속하기에 아직은 썩지 않았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그들로 하여금 은밀히 세력을 구축하게 한 뒤 일거에 쓸어버릴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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