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보시오, 도 전주!"
"핫핫! 왜 부르시었소?"
무비수사 고파월의 부름에 도날두가 돌아섰다.
"주석교는 어찌한답디까? 성주께서 무슨 생각을 품고 계신지 알 수 없어 답답하구려."
"핫핫! 언젠가는 손을 봐야한다 하셨소. 허나 지금은 아니오. 지금은 월빙보를 박살내는 데만 전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오."
"본성은 두 군데서 전쟁을 치를 능력이 있소. 그런데 왜?"
고파월의 말은 중간에서 끊겼다. 오만한 표정을 짓고 있던 도날두가 입을 열었기 때문이었다.
"핫핫! 월빙보 공격은 속전속결로 끝내야 하오. 공격이 개시되면 적지 않은 인명 피해가 발생될 것이오. 지금껏 본성은 정의수호를 부르짖었소. 따라서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본성의 입지가 줄어들기 때문이오. 오래 전, 안남파 정벌을 상기하면 될 것이오."
"으음! 그렇구려. 알았소이다!"
고파월은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섰다.
오래 전, 무림천자성은 안남파가 관할하고 있던 곳에서 마도의 중추세력인 화존궁과 사사건건 대립하고 있던 점창파의 요청을 받아 안남파를 공격한 바 있었다.
명분은 정의수호였다!
그 지역이 마도의 세력권 안에 드는 것을 막겠다는 것이다. 이때 무림천자성은 정파무림에 속한 구파일방을 비롯한 이십오 개 문파에 제자들을 파견해달라는 요청을 한 바 있었다.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할 수도 있다 생각되었지만 정파무림이 다 같이 나서는 것이 훨씬 더 명분이 있고, 모양새도 좋다 판단한 것이다. 이에 사정이 여의치 않던 방파를 제외한 일곱 개 방파가 이에 동조하였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선무곡이었다.
당시의 곡주 철심냉혈은 많은 제자들을 파견한 바 있었다. 정의 수호에 일조를 한다는 이유 때문이기도 하였지만 무엇보다도 바닥난 선무곡 재정(財政) 때문에 파병한 것이다.
덕분에 선무곡은 눈부신 발전을 이룰 수 있었으나 많은 제자들이 죽거나 부상당한 채 돌아와 오랜 동안 병상에서 신음하게 되었다.
결국 무림천자성은 막강한 힘을 지니고도 안남파가 마도에 흡수되는 것을 보고 있어야만 하였다.
느긋하게 대처하느라 시간이 지체되면서 점점 많은 사상자가 발생되었고, 이에 따라 점점 더 많은 비용이 들었다.
게다가 상대가 전혀 예상치 못한 전법으로 대응하였기에 아무리 공격을 퍼부어도 전세가 변화되지 않았다. 지리한 답보 상태가 지속되는 동안 여론마저 나쁜 쪽으로만 흘러갔다.
하여 끝을 보지 못하고 손을 뗄 수밖에 없었다. 이는 누가 보던 무림천자성의 패배였다. 막강한 전력을 동원하고도 이길 수 없었다면 패배한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무림천자성이 생긴 이래 가장 큰 오점(汚點)이 되었다.
이번 월빙보 정벌도 비슷한 경우가 될 수 있다. 월빙보 주변에 있는 문파들은 거의 대부분 마도무림에 속한다.
정벌이 시작되면 원하던 원하지 않던 사상자가 발생되는 법이다. 이것 때문에 동정 여론이 일어 자칫 마도 대단결 및 결사항전이라는 상황이 빚어지면 큰일이다.
물론 지금은 과거 안남파 정벌 때보다 훨씬 더 강해졌기에 월빙보 인근에 있는 마도문파들이 모두 덤빈다 하더라도 이를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유대문의 막강한 힘까지 동원된다면 어쩌면 인근 전 지역을 석권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되서는 안 된다.
무림천자성은 정의를 수호하는 문파로 알려져 있고, 지금껏 그렇게 인식되도록 무진 애를 썼다. 만일 전 지역을 석권해버린다면 자칫 정복욕에 눈먼 문파로 인식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우군이었던 구파일방을 비롯한 명문세가들은 물론 마도와 사파무림 전체가 달려드는 수가 있다.
이 경우에는 최소가 양패구상이거나 무림천자성의 멸망이라는 원치 않는 결과가 빚어질 수도 있다.
물론 무림천자성의 완벽한 무림제패라는 결과가 빚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그 확률이 그리 높지 않은 편이다.
그렇기에 최단시간 내에 끝내야 한다는 것이다.
말은 안 했지만 무림천자성의 수뇌부들은 성주가 왜 좋지 않은 여론에도 불구하고 공격을 감행하려는 지를 잘 알고 있었다.
월빙보가 차지하고 있는 곳에는 질 좋은 금(金)이 나는 탄광이 있다. 여기서 생산되는 양은 무림 전체에서 두 번째로 많은 양이다. 첫 번째는 청성파이다.
청성파야 이미 정파 무림에 속하고 무림천자성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거역하지 않는 문파이다. 따라서 그들을 공격하여 금광을 빼앗을 명분이 전혀 없다.
하지만 월빙보는 아니다. 명백히 마도 계열의 문파이기에 명분만 만들어지면 얼마든지 공격해도 된다.
월빙보의 보주 흑염수사 후세인이 오랜 동안 철권통치를 해온 것만은 사실이다. 이번 정벌에서 무림천자성은 그를 권좌에서 몰아내야 한다고 설파할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목적은 막대한 금을 얻기 위함이었다.
그만한 재물이 추가되면 무림천자성의 앞날은 그야말로 탄탄대로가 뻗어있는 셈이 될 것이다. 그렇기에 좋지 않은 여론에도 불구하고 공격을 결심한 것이다.
같은 시각, 천하제일방파인 무림천자성에서 정벌하기로 결정된 것도 모른 채 흑염수사는 자신의 거처를 비워주는 것이 입맛에 쓴지 계속 투덜대고 있었다.
무림천자성의 공격을 피하기 위하여 정파무림에서 파견한 조사단으로 하여금 자신의 거처까지 샅샅이 수색하도록 하는 것이 못 마땅했기 때문이다.
"이런 제기랄!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해?"
"아버님! 조금만 참으십시오. 인내는 쓰지만 그 열매는 달다는 말이 있습니다. 개만도 못한 전쟁광인 구부시의 공격을 저지하는 방법은 현재로서는 이것 뿐입니다."
"젠장할! 구부시, 구부시! 그놈의 구부시. 구부시(九釜翅)가 아니고 개 놈의 종자이니 개부시야. 젠장! 언젠가는 그놈을 진짜 구부시(狗腐屍)로 만들어 버리고 말겠어."
"구부시요? 개의 썩은 시체요?"
"그래! 놈은 개만도 못한 놈이지만 이름이 그러니 어쩌겠어? 그냥 죽은 개의 썩은 시체라고 부르자고."
"핫핫! 정말 대단한 비유이십니다. 핫핫! 죽은 개의 썩은 시체라… 핫핫핫! 아버님의 말씀은 아마 강호 최고의 유행어가 될 듯싶습니다. 핫핫! 개의 썩은 시체라… 핫핫핫! 정말 절묘합니다."
"크흐흐흐!"
후세인은 장남인 후다이(侯 邇)의 말에 나직한 미소를 지었다. 때려 죽여도 시원치 않을 구부시를 구부시(狗腐屍)라 부르고 나서야 분노가 약간 가라앉는 듯하였던 것이다.
오늘로서 벌써 두 달째였다. 정파무림에서 파견한 조사단은 월빙보 곳곳을 그야말로 이 잡듯이 뒤지고 다녔다.
월빙보의 모든 전각을 다 뒤졌는데 심지어는 해우소(解憂所)를 뒤적여 냄새를 풍겼고, 어떤 때에는 식수로 사용하는 우물을 휘적거려 며칠 동안 구정물을 마시게 만들기도 하였다.
아무튼 조금이라도 이상하다 싶은 곳은 쥐새끼 한 마리 빠져 나갈 수 없도록 완벽하게 포위한 후 샅샅이 뒤졌다. 심지어는 지나가는 여인들의 치마를 들춰보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염두에 두고 있던 대량상살 병기는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고 있었다. 분명히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왔건만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자 무림천자성에서 파견한 자는 거의 매일 전서구를 띄우고 있었다.
당황한 것이다.
그러던 차에 조사단은 지금껏 성역처럼 여기기에 조사를 받을 수 없다고 완강히 버티던 보주 집무실까지 조사하겠다고 나섰다.
물론 강력하게 반발하였으나 만일 협조하지 않으면 즉각 공격할 수밖에 없다는 협박을 받아야 하였다.
후세인은 체면이 걸려 있기에 버틸 만큼 버티다가 결국은 집무실을 비워주고 말았다. 자신의 체면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거절하였다가 자칫 무림천자성의 공격을 받게 되면 수많은 제자들이 아까운 목숨을 잃게 될 것을 우려한 것이다.
"병신 같은 놈들! 아무리 뒤져봐라. 없는 게 나오는지…"
후세인은 연신 투덜거리고 있었다. 이때 누군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휘하 제자들을 총괄하는 둘째아들 후사이(侯獅邇)였다.
"흠! 어찌 되었느냐?"
"명하신 대로 병장기들을 모두 해체하였습니다. 현재 정파무림에서 파견한 조사단이 현장을 확인하였습니다."
"오냐, 수고가 많았다."
유난히도 자존심이 강한 둘째 후사이는 젊은 시절의 자신을 보는 듯하였다. 젊고 유능하며, 패기가 넘쳤다. 하여 장남이 있지만 그에게 모든 제자들을 총괄하라는 명을 내린 바 있었다. 장차 그에게 후계를 물려주겠다는 것은 은연중에 암시한 것이다.
원래 그 자리는 장남인 후다이가 차지할 자리였지만 지난 해 후세인과 형제처럼 지내던 장로 하나를 살해하는 바람에 미움을 사 권좌의 중심에서 밀려나게 생긴 것이다.
제자들을 총괄하는 자리는 병장기 역시 총괄하는 자리이다. 후사이는 눈물을 머금고 월빙보가 보유하고 있던 병장기 가운데 일부를 해체하도록 하였다. 그렇게 해서라도 가공할 전력을 갖춘 무림천자성의 공격을 피해보자는 심산(心算)이었다.
오늘 월빙보는 조사단원들이 보는 앞에서 악랄한 위력을 지닌 병장기 모두를 해체하였다.
이에 조사단원들은 다시는 병장기로 사용할 수 없도록 해체한 병장기들을 용광로에 담가 아예 쇳물로 만들어 버렸다.
동시에 후세인의 집무실도 비워준 것이다.
이제 더 이상 감추고 어쩌고 할 것도 없이 다 내놓을 터이니 공격하지 말라는 암묵적인 행동이었다.
이렇게 하였는데도 공격을 한다면 무림천자성은 전 무림으로부터 비난을 받게 될 것이다. 무장해제를 한 셈이나 마찬가지인데 공격한다는 것은 강도 짓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명분과 체면을 중시하는 무림천자성에서 이런 비난을 무릅쓰고 공격하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안남파 공격처럼 지워지지 않을 오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강호의 늙은 생강인 후세인은 이런 전후 사정을 따져보고 병장기들을 해체하라 명한 것이다.
지금으로선 그것들이 없는 것이 있는 것보다 나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굴욕적이기는 하지만 이 방법이야말로 가장 좋은 방법이라 판단하고 그렇게 하도록 하였지만 후세인의 얼굴에는 자조적인 웃음이 어려 있었다.
이렇게 해서라도 버텨야 하는 처지가 한심스러웠던 것이다.
"뿌드득! 네놈을 반드시 썩은 개의 시체로 만들고야 말겠어."
잠시 웃음 짓던 후세인이 나직이 이를 가는 동안 조사단원들이 집무실을 이 잡듯 뒤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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