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MBC 게시판에 올라온 카이스트 사고에 관한 의견글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지난 21일 저녁 대전 MBC는 '뉴스데스크' 시간에 참으로 충격적인 사실을 보도했다. 뉴스 진행자가 "꽃다운 나이의 연구원의 목숨을 앗아간 과학기술원 실험실 폭발 사고가 발생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아직 원인조차 규명되지 않고 있습니다. 또 어느 누구도 이번 사고에 대해 책임지려 하지 않아 유족들을 두 번 울리고 있습니다"라고 말하고는 안준철 기자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한국과학기술원 제트추진실험실에서 폭발 사고가 난 것은 지난달 13일. 과기원 박사과정의 26살 조정훈씨가 숨지고 다른 연구원 1명은 다리를 모두 잃었습니다. 실험실에 보관하고 있던 가스통 8개 가운데 수소와 공기를 혼합한 10리터들이 가스통이 갑자기 터졌다는 게 경찰의 분석입니다. 수소와 공기를 혼합한 가스는 경우에 따라 엄청난 폭발력을 갖습니다."
(이어 가스안전공사 관계자의 말 소개)
"그러나 가스통이 무엇 때문에 터졌는지는 밝혀지지 않았고, 이번 사고 때문에 처벌받은 사람도 아직 한 명도 없습니다. 죽거나 다친 사람만 있을 뿐 책임지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더구나 과기원 측은 사고 진상이 규명되기도 전에 유족들에게 형사처벌 대상으로 지목된 교직원들을 위한 탄원서부터 써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유족들은 탄원서까지 받은 과기원 측이 앞으로의 대책은커녕 사고에 대한 설명조차 해주지 않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습니다.
이어 화면에 비치는 조동길 교수와 연신 눈물을 닦는 부인의 말을 잠시 소개한 다음 안준철 기자는 다음과 같이 마무리를 했다.
6대째 외아들이 비명 속에 간 것도 모자라 그의 죽음마저 헛되게 묻혀지는 것은 아닌지, 유족들은 이번 같은 실험실 사고의 재발 방지를 위해서라도 정확한 진상이 밝혀질 것을 원하고 있습니다.
나는 대전 MBC 안준철 기자의 이 보도에 큰 충격과 함께 고마움을 느끼면서 두 가지 사안을 깊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실험실 폭발 사고의 진상이 밝혀지기도 전에 유족에게 와서 처벌 대상자들을 위한 '탄원서'를 요구한 카이스트 고위 관계자들의 양식 문제와 사건 발생 후 오늘까지 40여 일이 지나도록 아무런 진상 규명도 책임자 처벌도 하지 않고 있는 현상은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여기에서 또 한 번 우리 사회의 몰상식과 비겁함의 심연을 보지 않을 수 없다.
카이스트의 고위 관계자들은 숨진 연구원의 아버지가 대학교수라는 사실에 착안하여 '탄원서'를 요구하는 일을 시도하였을지도 모른다. 숨진 조정훈 연구원의 품성에 비추어 아버지 조 교수의 성격도 어느 정도 가늠하며 고려했을 것이다.
또 조 교수는 자신의 품성에 의지하여 같은 교수 신분인 카이스트 고위 관계자들의 양식을 믿는 마음으로, 그리고 책임자들에 대한 가혹한 처벌을 정녕 바라지 않는 마음으로 탄원서를 덜컥 써주었을 것이다. 얼마든지 '무기'로 삼을 수도 있는 그 일을 그는 손에 꼭 쥐지 않고 스스로 무장 해제하듯 손쉽게 그들에게 내주어버린 것이다.
법 없이도 살 사람을 우롱한 과학기술원
여기에서 나는 조 교수의 품성을 다시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조 교수는 평소 주변 사람들로부터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온 것으로 알고 있다.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말은 역설이다. 그 말은 반드시 '법 안에서 법의 보호를 받으며 살아야 할 사람'이라는 뜻을 동시에 함유한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대개의 경우 법으로부터 우롱을 당하기가 십상이다.
"걸어다니는 모습만 보아도 존경스럽다"고 말하는 사람도 그의 주변에는 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람의 품성과 인격으로부터 연유하는 것이고, 주변 사람의 감성과 관계되는 것이지 그의 사회적 능력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삭막하고 각박한 사회 생활에서는 아무런 현실적인 반대급부 같은 것을 가져오지 못한다. 오히려 손해를 보며 살기 꼭 알맞다.
그런 실체적인 것들이 지금 그의 삶 한복판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의 품성과 인격은 지성을 가장한 몰상식과 비양심들로부터 능멸과 유린을 당하고 있다. 대학교수이고 소설가라는 그의 신분도 철저히 무시를 당하는 형국이고, 법으로부터 전혀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한국과학기술원의 연구원이 실험실에서 원인 모를 폭발로 인해 목숨을 잃었다면, 그리고 그 사건이 언론매체에도 보도가 되었다면 당연히 진상규명을 해야 하고 모든 사후 처리가 분명해야 한다. 그래야 카이스트의 풍모와 명성을 더욱 키울 수 있고,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미래를 좀더 확실하게 열어갈 수 있다.
그런데 카이스트의 고위 관계자들이 오늘 보여 주고 있는 행티는 너무도 치사하고 쩨쩨하다. 책임자 처벌 모면에 급급하여 진상 규명은 뒷전으로 미루고 사망 연구원의 아버지로부터 '탄원서'를 받아내는 일부터 먼저 서둘렀다. 원인무효가 될 수 없는 탄원서를 받아 챙긴 뒤로는 배를 퉁기듯이 유야무야한 태도로 탄원서 효력의 확대 생산에만 골몰하고 있는 눈치다.
그것은 지성인들의 풍모가 아니다. 카이스트의 명예와 위상을 추락시키고 더럽히는 일이다. 과학기술인들의 양심을 전체적으로 오염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그들이 사망 연구원의 아버지에게서 탄원서를 받아내는 일을 하기에 앞서 진상규명 작업을 서두르고, 정정당당하고 명명백백하게 모든 사실을 밝히고 책임자 처벌을 자청하고 나섰다면, 조동길 교수는 자발적으로 탄원서를 쓰고 사법 당국과 사회에 선처를 호소하였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확신할 수 있다.
조 교수는 지금까지 과기원 측의 어느 누구에 대해서도 욕 한마디 하지 않았고, 싫은 소리 한마디 하지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가족들의 흥분을 진정시키며 아들의 영결식을 치렀고, 지금은 생업도 뒤로 미룬 채 사찰에서 부부가 정성을 다해 49재 천도 기도를 하며 살고 있다고 한다. 그의 온순하고도 선량한 심성이 더 이상 상처를 입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과 함께 안타까움이 참으로 크다.
나는 문학동지인 그가 그 크고도 무거운 슬픔을 극복하고 언젠가는 다시 소설을 쓸 수 있게 되기를 바라고 빌 뿐이다.
| | | 대전 MBC 게시판에 올린 조 교수의 글 | | | | 6월 21일 저녁 대전 MBC의 뉴스데스크 방송 이후 카이스트 홈페이지 게시판은 굳게 닫혔다고 한다. 그 대신 대전 MBC의 홈 게시판은 사건 관련글들로 봇물을 이루고 있다. 그 글들 중에 조동길 교수의 글이 있어 가져와 소개한다.
저는 이번 사고로 이 세상을 뜬 아이(조정훈)의 아버지 되는 사람입니다. 저도 공직에 근무하는 사람으로서, 기관에서 일어난 사고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가급적 조용하게 해결하려는 관리자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슬픔을 누른 채 저는 최대한 학교측에 협력하여 원만하게 일을 마무리하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학교측의 어느 누구에 대해서도 욕 한 마디 하지 않았고, 싫은 소리 한 마디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저희 가족들의 흥분을 자제시키며 영결식을 치르고, 지금은 생업도 뒤로 미룬 채 사찰에서 저희 부부가 정성을 다해 49재 천도 기도를 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고 후 40여 일이 지난 지금까지 학교에서는 공식적으로 어느 누구도 저희에게 사고 경위조차 한 번도 설명해 주지 않고 있습니다. 부원장 말로는 자체 진상보고서가 이미 6월초에 나왔다는데, 검찰 발표 이전에는 공개할 수 없다고 하며 저희에게 아무런 설명도 해 주지 않고 있습니다. 아울러 사고 사후 수습 대책에 대해서도 검찰 발표가 나오지 않았다면서 아직까지 일언반구 상의해 온 바가 없습니다.
그러면서 형사처벌 대상자에 대한 탄원서를 작성해 달라고 해서 저희는 그분들의 양식을 믿고 그것을 써서 넘겨주기까지 했습니다.
모든 것을 검찰 발표 이후로만 미루고 법과 규정에 의해서만 처리하려 하는 학교측의 처사에 대해 안타까움과 원통함을 금할 길 없습니다. 법과 규정 이전에 인간의 양식이라는 게 있고 상식이 있는 게 사람 사는 세상의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저희가 학교에 요구하는 것은 이번 사고의 정확한 원인 규명과 책임 있는 자들에 대한 응분의 문책입니다. 이는 유사한 사고 재발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일일 것입니다.
또한 전도 유망했던 한 젊은 공학도(요즘 이공계 기피 현상이 심한 상황 속에서도 저희 아이는 자진해서 항공 분야 연구를 위해 더 좋은 환경의 전공을 포기하고 그쪽을 택해 공부하던 젊은이였습니다)의 희생을 계기로 우리 이공계 전체에 대한 열악한 연구 환경과 여건을 사회적 공감대로 끌어내어 개선해야만 우리 국가 미래의 동력이 튼튼해질 거라는 일념, 그렇게라도 해야 억울하게 횡액을 당한 아이의 혼령이라도 한을 품지 않고 눈을 감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뿐입니다. 그래서 학교측에 이공계 발전을 위한 기념 추모사업을 요구했던 것입니다.
요즘 세상에 아무리 큰 사건도 시간이 지나면 금방 잊혀지는 법인데, 정의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이 사건의 후속 보도를 하시면서 사회정의를 실천하시는 안준철 기자님의 숭고한 정신에 경의를 표하면서, 이번 사건이 불행한 사고에서 우리 이공계 전체가 한 단계 발전할 수 있는 계기로 승화되기를 기원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저희 가정과 가족은 거의 모든 희망과 꿈이 사라진 암담한 절망 속에서, 정신과(프라이버시상 자세한 말씀은 못 드리지만) 치료를 받으며 하루하루 힘겹게 버티고 있습니다. 뜻 있는 분들의 많은 관심을 기다립니다.
경황 중에 어지러운 글이 되었습니다.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희생된 아이의 아버지 씀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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