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 내건 프랜차이즈 사업 하는 게 꿈"

[새벽을 여는 사람들 28] 25살 사회 초년병의 편의점 이야기

등록 2003.07.12 13:00수정 2003.07.12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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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석
“원래 성격이 다혈질이었어요. 그런데 일하면서 내 자신을 컨트롤하는 것을 많이 배웠어요. 사람 대하는 데 있어 한발 물러선다는 것. 쉽게 흥분해서 말실수가 많았는데 요즘엔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죠. 한 템포 쉬어갈 수 있어요.”


사회에 발을 내디딘 지 5개월 남짓한 강응권(25)씨를 사회 초짜라고 만만하게 보다간 큰 코 다칠 것 같습니다. 하긴 큰 편의점의 어엿한 부점장인 그를 만만히 볼 일도 아니지만 말입니다.

편의점 슈퍼바이저로 입사한 그는 현재 대학로의 한 편의점에서 점포 생활을 경험중입니다. 보통 10~12개의 편의점을 관리해야 하는 슈퍼 바이저는 길게는 1~2년, 짧게는 몇 개월 동안 점포 생활을 합니다. 일주일 단위로 낮 근무와 야간 근무를 하는 불규칙한 생활과 금전관리부터 매장관리까지 힘들다는 말이 나올 법도 한데 그에게서 나온 이야기라곤 “몸에 익숙해지니까 괜찮다”정도입니다.

“점포생활을 할 때 놀면서 시간 때우다 올라가면 그만큼 고생하겠죠.”

김진석
그는 전공인 건축보다 유통 분야에 관심이 더 많았습니다. 올 2월 졸업을 앞두고 여느 졸업생처럼 취업을 준비했지만 그리 여의치 않았습니다.

“많이 힘들었어요. 무조건 무슨 일이든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하루에 거의 7~8개 군데에 이력서를 제출했죠. 면접도 보고, 물론 몇 군데 최종 합격하긴 했지만 조건이 맞지 않아서 가지 않았고요. 그러다 여기 채용공고를 보고 지원을 했어요. 면접 볼 때 진짜 저보다 조건 좋은 사람들도 많었어요. 면접 보고 떨어진 것 같아 그날 밤새 술 마셨죠.


아 진짜 다시 전공을 살려야 하나. 나도 남들보다 강한 무언가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연락이 온 거예요. 요즘 취업이 힘들다고 하잖아요. 힘들긴 하죠. 그런데 제 생각엔 자신이 생각을 바꿔서 뭐든 하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취업이 그리 어려운 건 아닌 것 같아요.”

김진석
그가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고객들로 하여금 사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선입선출’, ‘전진배열’이 중요하다고 그가 강조합니다.


‘선입선출’은 먼저 들어온 상품이 먼저 나가는 것을 말하며. ‘전진배열’은 새로 들어온 상품을 맨 앞줄에 진열하는 것을 말합니다.

김진석
새벽 두시. 출근길 아침을 책임질 김밥, 샌드위치와 각종 유제품이 도착합니다. 이렇게 하루 한 번 배송하는 이른바 일배상품 중 김밥과 샌드위치는 가끔씩 그의 야참거리가 되기도 합니다. 하루가 지나면 모두 폐기처분하는 덕분이지만 실은 남지 않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때문에 그는 유달리 일기예보에 민감합니다. 혹여 비라도 온다는 소식이 들릴라치면 유제품의 발주량을 줄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비 오는 날엔 유제품이 잘 안 나가요. 다른 식품과 달리 유제품은 과발주하면 모두 폐기처분해야 하잖아요. 사람들보다 미리 앞서 판단하는 것이 중요해요.”

김진석
“편의점은 말 그대로 사람들에게 편의를 위한 공간이잖아요.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다 만족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맞춰가는 게 중요하죠. 고객은 찾는 게 없다고 몰아세우지 않고, 또 점원은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야 하죠. 편의점은 고객과 점원이 하나하나 맞춰가는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김진석
슈퍼 바이저 한 사람이 관리하는 점포 수는 대략 10군데 정도. 그의 말에 따르면 그가 속한 회사의 편의점은 한달에 약 80여 군데씩 늘어난다고 합니다. 이런 경쟁 속에 그는 가끔씩 일부러 타사 점포를 들러보기도 합니다. 15분 정도 물건을 사지도 않으면서 쭉 둘러보는 것이지요. 그러다 혹여 보지 못한 제품이 있으면 바코드번호를 적어옵니다.

“이젠 편의점이 양적으로는 다 비슷해요. 어딜 가나 있는 건 다 있잖아요. 결국엔 서비스인 것 같아요. 얼마나 차별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느냐가 관건이에요.”

김진석
"매출에 기복이 없어야 좋거든요. 막 오르락내리락 하면 안 좋아요. 가장 속상했을 때는 아무래도 매출이 떨어졌을 때죠. 매출이 떨어지면 우리가 잘못한 게 뭔가 점장님하고 회의도 하고 그래요. 힘들어도 매출이 올라가면 기운이 나요.”

역시 그도 매출로부터 자유로워질 순 없나 봅니다. 그런 그에게 매출외에도 힘을 주는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고객의 “수고한다”는 말 한마디입니다. 반면 돈을 던지며 건네는 고객은 그의 기운을 쭉 빠지게 만듭니다.

김진석
야간근무 때 그는 늘 창고에서 아침을 맞이합니다. 옆 가게를 개조한 창고는 불이 없고 투명한 천장 때문에 날이 밝아야 쓰레기 정리하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50%도 되지 않는 분리수거율 때문에 그가 일일이 쓰레기를 다시 분리합니다.

"날이 밝고 청소를 한 후 비어 있는 곳에 상품을 진열할 때 가장 뿌듯하다"는 그의 꿈은 자신의 이름을 내건 프랜차이즈 사업입니다. 아직 어떤 것이 될지는 구체적이진 않지만 언젠간 꼭 이룰 것이라고 합니다. 물론 지금 당장은 자신의 일에서 인정을 받는 게 우선입니다.

이제 스물다섯 사회 초짜 강응권씨의 꿈이 어떤가요? 커보이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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