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순 노모의 손자 사랑

내 딸아이와 아들녀석은 행복한 놈들이다

등록 2003.07.14 08:14수정 2003.07.14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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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연세 팔순에도, 그리고 재작년 가을에 대장암 수술을 받으신 몸으로도 집안 살림에서 여전히 손을 떼지 않으시는 어머니를 보면 우선은 죄스러운 마음이 크다. 아내가 직장에 몸을 매놓지 않으면 살아갈 방도가 막연할 정도로, 내 무능 탓이 크다는 생각이다. 아내가 더없이 착한 심성이긴 해도 동작이 다소 굼뜨고 이리저리 약삭빠르지를 못하니, 자연 어머니의 잔신경이며 몸놀림이 많을 수밖에 없다.


집안 살림을 온통 며느리에게 맡기고 밖으로 훠이훠이 나돌며 노인정에나 가서 소일하는 주변의 할머니들을 보면 어머니에 대한 죄스러움은 더욱 크다. 불효도 여러 가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연세 팔순에 이르신 어머니의 일상 생활을 편안하게 돌보아드리지 못하는 것도 필경 불효에 속할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예전에 이미 집안 살림을 온통 며느리에게 쓸어 맡기고 밖으로 나돌며 사시는 팔자 좋은 할머니들을 별로 부러워하지 않는다. "형편에 따라서는 자식을 위해 희생할 줄도 알아야지 노인이라고 해서 노상 편케만 살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하시며, 집안 형편을 너무 도외시하고 사시는 할머니들 흉을 보시기도 한다.

평생을 '고생주머니'로 살아오신 어머니에 대한 내 죄스러움은 한량없는 고마움이기도 하다. 팔순 연세에 이르신 오늘에도 어머니가 집안 살림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편안하게 사실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드리지 못하는 그 죄스러움 속에서도 나는 늘 어머니께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우리 집안에서 어머니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와 비중, 그것의 중요한 의미들을 찬찬히 되새겨보기도 하는데, 결국은 그 속에서 하느님의 오묘하고도 크신 안배와 은총을 느끼게 된다.

노인의 축적된 지혜와 창의, 때를 미리 맞추기는 해도 절대 놓치는 법이 없는 세심한 일들, 한도 끝도 없을 듯한 그 부지런함과 건강 등을 보노라면 그게 당신의 복인지 자식들 복인지 아리송하다가도, 노인의 그 모든 것은 내 한 집뿐만 아니라 여기저기 나뉘어져 사는 모든 피붙이들의 결속과 사랑을 유도하는 것이기도 하니, 그것은 결국 우리 모두에게 베푸시는 하느님 은총의 실체일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어머니는 어제 특별한 일을 하셨다. 일년 전에 단지 안에 담갔던 홍매실의 원액을 거르는 일이었다. 우리는 작년 이맘 때 홍매실 한 말을 구해 적당한 단지 안에 설탕과 함께 버무려 넣었다. 설탕이 딱딱하게 굳지 않도록 때를 맞추어 단지 안의 매실 무더기를 뒤집어놓는 일을 여러 번 했다. 그리고 꼭 봉해 놓았다가 일년이 지난 때 개봉을 한 것이다.


녹은 설탕과 혼합된 매실의 검붉은 원액이 단지 안에서 엿물처럼 보였다. 그 원액 속에서 매실들은 농창하게 무르녹아 있었다. 일년만에 모습을 드러낸 매실 원액은 새콤달콤한 내음을 풍기면서 내게 왠지 장중하면서도 신비한 느낌을 안겨 주는 것 같았다.

뒤 베란다 구석의 매실 단지를 들어내다가 일하기 좋은 곳에 놓아드리는 것으로 내 임무는 끝이었다. 나머지 일은 모두 어머니 몫이었다. 어머니는 단지 안에서 무르녹은 매실들을 모두 꺼내어 체 안에 담아놓았다가 유리 단지 안에 옮겨 담았다. 그것은 잘 보관하면서 집에서 담근 된장에도 넣고 간장에도 넣을 거라고 했다.


그리고 단지 안의 매실 원액을 체에 걸러서 유리병과 패트병에 담았다. 매실 원액은 모두 일곱 개의 병에 담겨졌다. 그것들을 일부는 냉장고 안에, 일부는 뒤 베란다 구석에 자리를 잡아 놓으면서 어머니는 이런 말을 하셨다.
"이것이 애비헌테 좋은 약이 되어야 헐 텐데…."

어머니의 목소리에는 통풍에 시달리고 당뇨 관리를 하며 사는 내 불안한 건강에 대한 염려와 연민이 짙게 묻어 있었다. 결국은 내 건강을 위해 어머니가 또 한번 그렇게 정성을 들이고 노고를 하신 셈이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한마디를 더 하셨다.
"오래 살어야 혀. 애들을 생각헤서라두 오래 살어야 헌다구."

내가 결혼을 워낙 늦게 하여 이제 고등학교 1학년과 중학교 1학년인 아이들, 그 어린 것들을 노상 염려하며 사시는 어머니였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내가 오래 살아야 한다는 어머니의 그 말씀 속에 자식과 손자들을 함께 위하시는 마음이 간절한 기원처럼 어려 있음을 나는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다.

어머니는 천안으로 고등학교 진학을 해서 그곳에서 홀로 생활하고 있는 내 딸아이에 대한 염려를 우리 부부보다 더 많이 하신다. 어쩌다 집에 오는 딸아이를 우리 부부보다 더 반기시고, 딸아이가 다시 돌아갈 때는 한결 안쓰러워하는 눈빛이시다.

어머니를 모시고 온 가족이 천안엘 다녀온 적들이 있는데, 반갑고 즐거운 시간이 금세 지나 딸아이를 다시 자취방에 홀로 남겨두고 돌아올 때마다 어머니는 차안에서 줄곧 묵주를 놓지 않으시고도 밤에는 애틋한 손녀 생각에 잠을 쉽게 이루지 못하신다.

그러신 어머니가 최근 천안에 가서 손녀의 자취방에서 일주일 동안 머무르고 오셨다. 딸아이의 중간 고사 때문이었다.

딸아이는 평일에는 점심과 저녁을 학교 급식실에서 해결한다. 매일 아침과 토요일 일요일만 스스로 식사 해결을 하면 된다. 물론 아침을 거르는 날이 많고, 토요일과 일요일도 대충 건너뛰는 때가 많을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그런데 시험 기간에는 평일에도 학교에서 급식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오전에 시험을 치르고는 곧바로 하교를 한다고 했다. 어머니는 손녀의 그 말을 잊지 않으셨다. 아이가 시험기간 내내 익숙지 못한 손으로 하루 세끼 식사를 스스로 해결하려면 공부에 지장이 많을 테고, 공부 때문에 식사를 자주 거르기라도 하면 건강을 해치게 될 수도 있다고 걱정을 하셨다. 그러더니 아이의 시험 기간만 당신이 천안에 가셔서 아이를 돌보겠다고 하셨다.

그렇게 결정을 하신 어머니는 이번에는 손자 걱정을 하셨다. 당신이 천안에 가 계시는 동안에는 손자녀석의 이른 저녁 식사를 보살펴 주실 수가 없겠기 때문이었다. 내 아들 녀석은 오후 5시쯤이면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온다. 그 시간에 맞춰 어머니는 미리 녀석의 저녁 준비를 하신다. 녀석은 할머니가 차려주신 저녁을 맛있게 먹고 5시 30분까지 학원에 간다.

녀석이 학원에서 돌아오는 시간은 8시 30분. 좀 늦기는 해도 저녁 식사를 할 수 있는 시간이지만, 녀석의 그 늦은 저녁 식사를 우선은 할머니가 반대하셨다. 그렇게 하면 학교에서 먹는 점심 시간과 너무 동안이 길다는 말씀이었다. 자라는 아이가 허기지면 공부에도 지장이 있고 건강에도 해가 된다는 뜻이었다.

결국 내가 등산을 하는 시간을 조절해서 일주일 동안만 녀석의 저녁 식사 문제를 맡아주기로 했다. 그렇게 결정을 하긴 했지만 어머니는 내가 못 미더운 탓인지 이렇게 저렇게 상을 보아주라고 교육을 하시고 신신당부를 하셨다.

지난 6월 30일(월요일) 오후 천안 딸아이의 원룸으로 어머니를 모셔다 드리고 돌아올 때도 어머니는 손자녀석 저녁 걱정을 하시며 내게 또 한번 당부하는 것을 잊지 않으셨다.

그리고 천안에 머무시는 일주일 동안 휴대폰을 가진 딸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밤 9시 이후에 통화라도 하게 되면 어머니는 으레 손자녀석의 저녁 식사 상황을 물으시곤 했다. 그때마다 나는 내 소임을 다하고 있고, 아들 녀석도 아빠가 차려주는 밥을 잘 먹고 학원에도 잘 가고 있으니 걱정 푹 놓으시라는 말씀을 드리곤 했다.

그러나 아들 녀석은 첫날인 월요일 저녁은 중국음식점에 가서 자장면으로 해결을 하고, 이튿날인 화요일 저녁 한 끼만 내가 차려주는 밥상을 받았을 뿐이었다. 할머니가 부쳐주는 좋아하는 음식인 감자전도 호박전도 없는 썰렁한 밥상 앞에 앉아 겨우 데시기 듯한 녀석은 내게 제법 웅숭 깊은 말을 했다.

"아빠, 저 내일부터는 학원 갔다 와서 저녁 먹을 게요."
"그럴래? 그럴 수 있겄냐?"
"배고파도 참을 수 있어요. 그러니까 아빠도 안심하고 산에 갔다 오세요."
"그러자, 그럼. 고맙다, 야. 기특한 우리 아들."

아들녀석과 그런 합의를 하고 나서도 나는 어머니께 뻔뻔스럽게 거짓말을 한 것이었다. 일주일 후 다시 천안에 가서 어머니를 모시고 오자마자 곧바로 들통이 난 일이지만….

아무튼 어머니는 일주일 동안 천안의 손녀와 함께 지내고 돌아오셨다. 내 딸아이는 일주일 동안 참 행복한 생활을 했다. 할머니가 차려 주시는 하루 세 끼 밥을 먹으며 오로지 시험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딸아이의 이번 중간 고사 점수가 지난 5월의 1차 중간 고사 때보다 진일보할 수 있었다.

나는 종종 어머니가 가 계시는 천안 딸아이의 원룸 풍경을 상상해 보곤 했다. 팔순의 할머니와 고교 1년생 손녀가 밥상을 놓고 마주앉아 함께 저녁 식사를 하는 풍경…. 손녀의 시험 본 얘기를 들으시고 기쁜 웃음을 지으시며 손수 만드신 맛있는 음식을 손녀 앞에 옮겨놓아 주시기도 하는 팔순 노인네의 자애로운 모습….

하루 저녁에는 할머니와 손녀가 이름난 중국음식점에 가서 고급 자장면으로 식사를 했다고 했다. 그리고 평일미사가 저녁에 있는 날을 알아 가지고 근처 성당에 가서 미사도 지냈다고 했다.

내 딸아이는 일주일 동안 할머니의 사랑을 독점하고 흠뻑 누린 셈이었다. 할머니와 함께 한 그 일주일 동안의 생활은 딸아이의 평생에 참으로 좋은 추억이 될 터였다. 내가 바란 것은 사실 그것이었다. 딸아이의 가슴에 흠뻑 젖어 있을 할머니에 의한, 할머니에 대한 그 '정'은 평생 동안 딸아이의 가슴과 추억을 얼마나 풍성하고 감미롭게 할 것인가….

일주일 동안 객지 생활을 하고 오신 어머니는 객지에서 홀로 생활하고 있는 손녀를 또다시 안쓰러워하고 걱정하면서도 손자녀석의 이른 저녁 밥상에 정성을 기울이신다. 할머니가 계시지 않는 동안 시장기를 잘 참으면서 학원 공부까지 마치고 돌아와서 저녁을 먹곤 했던 내 아들녀석은 할머니가 돌아오신 날부터는 다시 학교 공부가 끝나면 곧장 집으로 오곤 한다. 할머니가 차려주시는 저녁상 앞에서 밥 한 그릇을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맛있게 비우고는 학원으로 가는 생활이 냉큼 회복된 것이다.

내 딸아이와 아들녀석은 누가 뭐래도 행복한 놈들이다. 할머니의 사랑을 그토록 누리며 사는 아이들이 요즘 세상에 흔치는 않을 것이다. 뒷동에 사는 가운데 동생네 아이들에게도, 대전에서 사는 막내동생네 아이들에게도 할머니의 사랑은 고루 미치지만, 아무래도 한 지붕 아래의 정과 친밀감이 한결 진하고도 농밀할 터이다.

나는 아들녀석의 유치원과 초등학교 1,2년 시절의 일을 즐겁게 기억한다. 그때 녀석은 곧잘 체하고 배앓이를 하곤 했다. 밤에 자다가 깨어나서 배앓이를 하게 되면 녀석은 엄마 아빠 곁을 떠나 할머니 방으로 건너가곤 했다. 녀석이 할머니 옆에 누우면 녀석의 아픈 기척에 잠을 깨고 지체 없이 일어나신 할머니는 손자녀석의 배를 문질러주시곤 했다. 그때마다 할머니의 손은 약손이었다.

화장실에 먼저 가서 구토를 했을 때도, 녀석이 가는 곳은 엄마 아빠 곁이 아닌 할머니 방이었다. 그때 나는 아들녀석에게 있어 할머니의 방은 영원한 '고향'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요즘도 녀석은 할머니 방에서 할머니와 함께 잔다. 누나가 집을 떠나 살게 된 후로는 할머니 옆의 잠자리는 온통 아들녀석 차지가 되었다.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다가 가끔 어머니의 방문을 살며시 열어보는 때가 있다. 팔순 할머니와 중학생 손자녀석이 한 이부자리에서 나란히 누워 자는 모습이 참으로 조화롭고도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또 가끔은 잠에서 깨어나신 어머니가 손자 녀석의 이불을 보살펴주시는 기척도 듣곤 하는데, 그때마다 나는 참으로 아늑한 평온 같은 것을 느끼곤 한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감미로운 질감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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