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에밀 닮아서 그런가 보다"

어머님의 옥상텃밭(2)

등록 2003.07.22 08:34수정 2003.07.22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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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의 옥상 텃밭에는 먹거리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아기자기한 꽃들도 만발합니다.


화분마다 피어난 예쁜 꽃들, 서울에 살 때는 옥상에 가꾸어진 꽃을 보면서도 심드렁하던 아들이 시골생활 1년 반만에 꽃 사진을 찍는데, 취미를 붙였다는 말씀을 듣고는 "니가 에밀 닮아 그런가 보다" 하십니다.

오늘은 어머님의 옥상텃밭에 심겨진 꽃들을 소개해 드리면서 우리 어머님을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a 호박-주렁주렁 열리면 얼마나 예쁜지, 그 아래 평상에서 책을 읽으면 한 여름에도 시원합니다.

호박-주렁주렁 열리면 얼마나 예쁜지, 그 아래 평상에서 책을 읽으면 한 여름에도 시원합니다. ⓒ 김민수

1960년대 초반, 겨울에 태어난 아기는 2개월이 되기도 전에 거반 죽게 생겼습니다. 가진 것이라고는 몸뚱아리밖에 없는 빈농에서 병원비를 마련한다는 것은 언감생심이었고, 향린교회의 도움을 받아 의사선생님을 소개받고는 달려간 곳은 산부인과였습니다.

계란 두 줄을 가지고 의사선생님께 "이 아이 수술이라도 받고 죽으면 여한이 없겠습니다"라고 했다죠. 그 때 어머님은 간절히 기도했답니다.
"하나님, 이 아이 살려주시면 목사로 만들겠습니다."

당시 하나님의 일이라면 목사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일반적인 생각에 따른 기도였겠지만 어머님의 기도대로 저는 목사가 되어 작은 시골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a 금낭화-올해는 처음으로 사진으로 담은 금낭화, 때는 지났지만 옥상에서는 간혹 이렇게 철없이 핍니다.

금낭화-올해는 처음으로 사진으로 담은 금낭화, 때는 지났지만 옥상에서는 간혹 이렇게 철없이 핍니다. ⓒ 김민수

결혼을 앞두고 저의 생명의 은인이 되시는 선생님을 아내 될 사람과 찾아 뵈었습니다.
"아니, 젊은이가 정말 그 아기가 맞아?"
어머니를 통해 건강하게 자란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저 인사치레 정도로 들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어머니의 기도대로 되었구만. 축하허이. 신학을 한다면서? 어머니가 계란 두 줄 가지고 와서 수술해 달라고 하는데 사실 나는 포기했었지. 살아도 정상적인 삶을 못 살 줄 알았어. 그런데 세상에 이렇게 키도 크고, 건강하니 하나님의 은혜지…."


a 작두콩-콩이 얼마나 큰지 콩깍지가 영락없이 작두같이 생겼답니다. 대략 바나나만합니다.

작두콩-콩이 얼마나 큰지 콩깍지가 영락없이 작두같이 생겼답니다. 대략 바나나만합니다. ⓒ 김민수

목사안수를 받고 나의 영역을 하나 둘 찾아가며 나름대로 사랑을 받으며 목회를 하다가 여러 가지 일들로 인해 안식년 핑계를 대고 무작정 일년을 쉬면서 농사일도 하고 캄보디아에 다녀오더니 갑자기 농촌목회를 하겠다는 아들을 부모님들은 이해하시고 보내주셨습니다.

늘 곁에서 손주들 재롱을 이제껏 보셨는데, 손주들이 영 눈에 밟히시는 모양입니다. 너 같으면 서울에 있어도 자리가 날텐데 시골까지 왜 가려고 하느냐며 그 서운한 속내를 비치시긴 했어도 다 우리같이 생각하면 농촌교회는 누가 섬기겠냐고 자식의 길을 막지 않으셨습니다.

"야, 시골 살면서 너무 자주 서울에 오지 마라. 아예 그 곳 사람이 될 작정하고…."

a 작두콩 꽃의 색깔도 가지가지입니다.

작두콩 꽃의 색깔도 가지가지입니다. ⓒ 김민수

시골에 푸성귀가 더 많다는 것을 아시면서도 늘 옥상에서 키우신 것들을 바리바리 싸서 보내주시곤 합니다. 어머님의 소포를 받아볼 때마다 눈물이 그렁그렁하죠.

아버님이 매직펜으로 쓰신 주소를 보면 늘 "김민수 목사님"이라는 존칭입니다. 소포의 내용물만 보면 서울에서 온 것이 아니라 시골에서 온 것으로 착각할 정도입니다. 만일 소포의 속내를 볼 수 있다면 우체부가 분명 주소를 잘못 적었을 거라며 서울로 보낼 것입니다.

a 버베나라는 명찰이 붙어있더군요.

버베나라는 명찰이 붙어있더군요. ⓒ 김민수

"어머니, 꽃들이 아주 예뻐요. 나도 요즘 산책하면서 꽃들을 사귀고 있는 중인데 나중에 어머니 깜짝 놀라게 해 드릴께요."

문명의 이기에서 멀리 계시는 부모님, 그렇다고 PC방에 모시고 가서 그동안 썼던 꽃을 찾아 떠난 여행이야기를 보여드릴 수도 없으니 나중에 출력을 해서라도 보내드려야겠습니다. 그러면 목회는 안하고 다른 짓만 한다고 혼나겠지요.

a 제랴늄-여러가지 색이 있는데 하나만 소개합니다.

제랴늄-여러가지 색이 있는데 하나만 소개합니다. ⓒ 김민수

아주 급한 일 때문에 잠시 다녀온 서울이었기에 친구들에게 연락도 못했습니다.

어머님의 옥상, 그런데 이 글을 읽으시면 아버님이 서운해하실 것 같습니다. 같이 가꾸시는 것인데 말입니다. 그러나 아버님, 서운해하지 마세요. 어머니라는 말속에는 아버님도 같이 들어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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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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