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물이 주는 삶의 소리

나도 물처럼 낮은 곳으로 한없이 흘러가고 싶다.

등록 2003.07.23 14:55수정 2003.07.23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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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도르레가 달린 깊은 우물에서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먹었던 어린 시절의 꿈을 간직하고 있는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더운 여름날 누이가 그 깊은 우물에서 두레박으로 막 퍼 올린 물로 등목을 해주던 아련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렇게 자연이 주는 물을 그대로 마심으로 자연의 생명을 듬뿍 받았던 몸이었는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인공의 기운이 가미된 것들만 몸에 모시니 우리의 몸도 점차로 자연의 생명을 잃어 가는 것은 아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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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저에게는 설악산 용대리의 계곡이 너무 깊게 자리잡고 있는 탓인지 물이 잘 빠지는 토양의 제주에서는 그만한 계곡을 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장맛비가 지리하게 계속되다 소중한 햇살을 드러내자 한 여름이 습한 더위가 온 몸을 감싸는 듯합니다. 이럴 땐 계곡에 책 한 권 들고 들어가 차가운 계곡 물에 발을 담그고 독서삼매경에 빠져들면 그만인데 하는 생각을 하는데 아내가 돈내코계곡에 가보자고 합니다.

처음으로 가족들과 함께 찾은 돈내코계곡은 언제나 그랬는지, 아니면 장맛비의 영향인지는 모르겠지만 시원하다 못해 얼음같이 차가운 물이 우리를 반겨주었습니다.

흐르는 물이나 움푹 파인 돌에 고여있는 물이나 너무나 맑아서 그 속내가 온전히 드러나고, 잔잔한 물에 떠있는 나뭇잎이 한 폭의 화폭을 연상하게 합니다.


'아, 맑다. 참 좋다. 시원하다.'

이것이 맑은 물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나왔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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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이렇게 맑은 물을 보면서 여러 가지 삶의 단상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깨끗하면서도 잔잔한 물은 그 속내를 보여주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 속내는 너무 깨끗해서 물이라는 존재가 그들을 감싸고 있는지 조차 모를 정도로 그 속내를 깨끗하게 보여줍니다. 간혹은 나무도 담고, 하늘도 담고, 뭉게구름도 담아가면서 그 속내의 아름다움을 전혀 다른 풍경으로 바꾸어갑니다.


'과연 나는 저렇게 내 안에 품고 있는 것들을 다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못할 것 같습니다. 아주 조금만 꺼내도 추하고 냄새가 나서 보여줄 수조차 없을 것 같고, 남들이 나의 속내를 보기라도 한다면 창피해서 고개를 들지도 못할 것만 같습니다.

물 속에 들어있는 돌멩이 하나 하나가 나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꿈 조각 하나 하나이길 소망합니다. 저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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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그러나 그 맑던 물에 소용돌이가치면 속내도 보이지 않고, 물위에 떠있던 작은 풍경들조차도 일그러집니다. 평온할 때에는 모든 것을 다 보여주다가도 그 평온한 삶이 무언가에 의해서 흔들릴 때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지만 그것도 밉살스럽지가 않습니다.

자연의 물은 항상 낮은 곳으로 흘러갑니다.
사람들이 만든 문명의 이기에 의해 거꾸로 쳐 올라가는 물과도 다르고 갇혀있는 물과도 다릅니다.

어느 곳에 고여있어도 낮은 곳은 더 많이 채워감으로 수평을 유지하고, 어느 잔잔한 날에는 그 속내를 다 보여주는 물, 그런 물 같은 삶을 살아가려면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하는지 묻고 또 묻습니다.

낮은 곳으로 한없이 흘러가는 저 물처럼, 나의 삶도 낮은 이들을 향해서 한없이 흘러갈 수 있으면 하는 소망을 담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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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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