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그만 허멍. 하나님한테 고라불키여"

작은 농어촌교회의 수련회 풍경

등록 2003.07.24 20:21수정 2003.07.25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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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투리 한 조각.


"멜삽서 멜, 파닥파닥 뛰는 싱싱헌 멜이 와수다." 허멍 외는 멜장수의 스피커소리에, 우리 어멍도 혼박세기 사다그네 튀김도 허고 소금구이도 허여 주난, 나도 정원 꾸미는 인부덜 허고 쇠주 한잔 허멍 쉬어 점쩌. 너네 옛날에 어멍이 만들어 준 멜튀김허고 소금구이 먹던 생각 남찌-이?. 객지에서 생활허멍 바쁘고 힘들주마는 이글 읽으멍 고향에 계신 어멍 생각 좀 허라이.

위의 글은 얼만 전 독자분께서 이메일로 보내 주신 구수한 제주사투리입니다.

맨 처음에는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지 못하겠더니 이제 이 정도의 말은 귀에 들어오기 시작하니 많이 적응한 셈입니다.

그런데 이 곳 사람 거반 다되었다고 자부할 즈음에 난데없는 사투리에 당황을 해서 오랜만에 부르던 노래를 중도에 포기하는 불상사(?)가 일어났습니다.

김민수
농촌의 장마철은 본의 아닌 농한기가 됩니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육체의 고단함을 재충전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고, 그동안 밭에서 골병이 든 몸을 치료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신경통이라는 것은 우중충한 날 더 도지는 법이니 지리한 장마가 계속되면 농촌의 어르신들은 신경통으로 고생을 많이 합니다.

바쁠 때에는 교회행사를 하기도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장마철에 전교인수련회를 1박 2일로 교회에서 갖기로 하고 젊은이들이 식사도 준비하고, 놀이도 준비했습니다.


역시 가장 즐거운 시간은 아이들이나 어른 할 것 없이 놀이시간입니다. 춤을 못 추신다고 하더니만 시키지도 않았는데 덩실덩실 춤을 추시는 권사님들, 헐렁한 옷에 풍선을 집어넣은 모습에 자지러지게 웃으시며 일년 동안 웃을 것을 다 웃어버렸다며 즐거워하십니다.

김민수
즐거워하실 때 배꼽이 빠질 정도로 한바탕 놀아보자고 생각을 했는지 청년들이 나와서 몸빼 바지를 입고 재롱을 떨기 시작합니다. 청년이라고는 했지만 다 애기 아빠들입니다.

아빠의 몸매가 일그러지는 것을 보면서 놀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어린아이들은 "아빠~이, 왜 그래~ 하지마라이!"하며 울상입니다. 그렇게 한참을 웃는데 저도 장난끼가 발동했습니다.

"자, 오늘 이렇게 비도 오는데, 소중한 시간을 내 주신 여러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강남에 갔다 돌아온 제비, 자, 애들은 잠시 가라, 가! 김제비 인사올립니다. 그럼 먼저 노래를 하나 사모님들께 선사해 올리겠습니다."

메고 있던 기타를 치며 '뽕짝 뽕짝'하다가 "두마안강~ 푸른 무울에~ 노젓는 배엣사아아공~"하며 노래를 시작하니 나이 드신 노인네들부터 할 것 없이 부부들이 다 나와 손을 잡고 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쑥스러움을 타는 남편을 향해 "빨리 옵써, 우리도 한번 땡겨부러!"하시는 권사님을 보니 웃겨서 노래를 더 할 수가 없습니다.

자지러지게 웃는 교인들, 나이 지긋하신 권사님이 한마디하십니다.

"목사님, 그만 허멍. 하나님한테 고라불키여."

노래를 부르다말고 무슨 말인가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혹시 목사가 뽕짝을 부른 것에 대해서 충격을 받으신 것은 아닌가 해서 황급히 노래를 마치고 분위기를 보니 분위기는 여전히 좋습니다. '고라불키여'가 뭐냐고 했더니 '일러버리겠다'는 말이라고 하더군요.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하나님이 이미 다 보셨는데. 목사가 교회에서 뽕짝 좀 불렀다고 혼내실까봐? 하나님한테 고자질하면 나 삐질껴."

또다시 웃음바다.....

김민수
흥겨운 놀이는 이어졌습니다.

어린아이 어른 할 것 없이 힘을 합쳐서 공동체놀이도 하고 밥도 맛나게 해먹고, 잠시 휴식을 하시는 동안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아다 회도 떠서 먹고, 명화도 한 편 감상했습니다.

이렇게 세상의 근심을 다 벗어놓고 마음껏 웃을 수 있는 시간이 좀더 많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근심걱정을 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면 웃으면서 사는 것도 삶의 지혜 중의 하나겠지요.

하마터면 하나님한테 고자질 당할 뻔했습니다. 목사가 거룩한 예배당에서 기타치며 뽕짝을 불렀다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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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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