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218

빙화 구연혜 (1)

등록 2003.09.01 12:39수정 2003.09.01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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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빙화 구연혜

"으아아악! 그, 그만! 내, 내가 죽였소. 내가 죽였다구."
"흥! 이제야 바른 말을 하는군. 짜식, 진작에 불었으면 이런 고통은 안 당해도 되잖아. 바보 같은 놈!"


형당의 너른 국문장에는 뇌흔을 비롯하여 철마당 소속 조련사들과 형당 소속 정의수호대원 등이 운집해 있었다.

국문장 한 복판에는 잡털 하나 섞이지 않은 백호피가 깔려있는 태사의가 있었고, 거기엔 오만한 자세로 앉아 있는 여인이 하나 있었다.

무림천자성의 암사자라 일컬어지는 빙화(氷花) 구연혜였다. 그녀는 무림천자성주인 철룡화존의 외동딸이자, 철기린 구신혁의 하나밖에 없는 누이동생이다.

그런 그녀가 죄인을 국문하는 국문장에 앉아 있는 것은 그녀가 신임 형당 당주이기 때문이다. 오랜 동안 무공을 연마하느라 세상 밖에 발걸음도 하지 않던 그녀는 좋은 자리 모두를 거절하고 형당 당주직을 고집했다.

직급은 당주이지만 무림천자성의 그 어느 누구도 감히 그녀의 비위를 거스르지 못한다. 그랬다가는 경을 치게 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차기성주로 내정된 철기린도 마찬가지였다.


여기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빙화는 철기린의 배다른 누이동생으로 그녀를 낳던 모친은 산고를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졸지에 어미를 잃은 그녀를 측은히 여긴 철룡화존이 총애를 아끼지 않았기에 누구도 그녀의 비위를 건드리지 못하게 된 것이다.

어찌되었건 올해 십구 세가 된 빙화는 그녀의 외호에서 드러나듯 아름답기는 천상옥녀를 뺨칠 정도이나 성품이 매우 차가운 여인이다. 그래서 차가운 꽃이라는 외호로 불리는 것이다.


그녀가 당주직에 봉해진 것은 불과 사흘 전의 일이다. 그러므로 그녀에게 있어 이회옥은 첫 번째 죄수인 셈이다.

"좋아,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네놈은 무면호리 조관걸의 사주를 받아 동료를 살해했다. 맞느냐? 틀리느냐?"
"으으으! 으으으으…!"

용모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봉두난발이 된 이회옥은 대답대신 신음만 토했다. 그가 무릎 꿇고 앉아 있는 주변에는 예리한 사금파리 조각들이 깔려 있었고, 무릎 위에는 하나에 열 관(37.5㎏)은 족히 나갈 돌덩이가 두 개나 올려져 있었다.

압슬(壓膝)에 처해진 것이다. 뿐만 아니었다. 손톱마다 굵은 침이 박혀 있었는데 그 끝으로부터 선혈이 방울방울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온통 누더기가 되어버린 그의 의복 사이로 보이는 등에는 붉은 뱀 수십여 마리가 기어다니는 듯한 흔적이 있었다. 채찍질에 의한 흉터였다.

방금 전 이회옥은 묵직한 돌덩이 하나가 더 올려지자 무릎이 빠개지는 듯한 통증에 비명을 질렀다.

수십여 대의 채찍질에도 이을 악물기만 할 뿐 비명 한번 지르지 않았다. 손톱과 발톱 아래에 굵은 침을 박아 넣을 때에도 두 눈을 부릅뜬 채 부들부들 떨기만 할 뿐 비명은 지르지 않았다.

무릎을 꿇고 앉아있기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그의 둔부는 헤어질 대로 헤어져 선혈이 낭자한 상태이다.

그렇게 되기까지 그의 둔부를 난타하던 곤장은 다섯 개나 부러졌다. 결국 지독한 고통 때문에 혼절하기는 하였으나 그때에도 비명은 지르지 않았다.

그러던 이회옥이 처음으로 비명을 지른 것이다. 아무리 굳은 의지를 지닌 사내라 할지라도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고통 때문이었다.

"이놈! 어서 불지 못할까? 무면호리의 사주를 받았느냐 안 받았느냐? 어서 말하지 못해?"
"……!"

뇌흔은 이회옥이 또 다시 입을 다물자 화가 났다. 자신을 무시하는 것으로 오인한 것이다. 사실 이 순간 이회옥은 앉은 채로 혼절한 상태인지라 대답하고 싶어도 대답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이회옥이 의천문 앞에서 이십사 인의 정의수호대원들을 상대로 무위를 선보인 덕분에 철마당의 위상이 크게 높아졌다.

그래서 이회옥을 부당주에 임명하기는 하였지만 사실 자신의 자리가 위태롭다 느껴졌기에 과히 기분이 좋은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철기린의 총애까지 받자 더더욱 불안했다.

하여 무엇이든 꼬투리만 잡히기를 기다리던 그는 이회옥이 의성장에서 생포되었다는 보고를 받자마자 형당으로 달려갔다.

빙화를 본 뇌흔은 이회옥이 철마당 사람이니 철마당에서 사건의 전말을 파헤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하였고 이는 흔쾌히 허락되었다. 하여 지난 이틀 간 곤장도 치고, 손발톱 밑에 침을 박아 넣기도 하였으며, 채찍질도 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모든 형벌을 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이회옥은 범행을 자백하기는커녕 신음소리 한 번 내지 않았다. 대신 고통이 느껴질 때마다 살부살모를 범한 불공대천지 원수인 뇌흔을 반드시 죽이고야 말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한편, 빙화가 빤히 보고 있었기에 망신을 당했다고 판단한 뇌흔은 평상시 안면이 있던 형당 소속 대원에게 전음을 보냈다. 이럴 때 어떤 형벌이 좋겠느냐는 조언을 구한 것이다.

이에 압슬에 처하면 제 아무리 굳은 심지를 지닌 자라 할지라도 있는 죄 없는 죄를 모두 불 것이라는 답변이 있었다.

그래서 이회옥의 무릎은 물론 정강이에 예리한 사금파리 조각들이 수없이 박혀 있는 것이다.

"이 자식이? 안 불어? 여봐라. 여기 돌 하나를 더…"

빙화가 보는 앞에서 자신의 무능함이 드러나고 있다는 느낌에 노성을 터뜨리던 뇌흔은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지금껏 구경만 하던 빙화가 자리에서 일어섰기 때문이었다.

"됐어요. 그만 하세요."
"아, 아씨…!"

나이로 치면 막내딸 정도밖에 되지 않고, 당주가 된 세월만 따져도 한참 차이가 되겠지만 뇌흔은 쩔쩔매고 있었다. 잘못 보이면 어찌 되는 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됐어요. 오늘 국문은 여기까지 해요."
"아씨, 이제 조금만 더 놈을 다그치면…"

"흥! 당주께서 지난 이틀 동안 하신 일이 뭐 있죠? 아무 것도 없었어요. 아까 본당 소속 대원이 전음을 보내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까지도 아무 것도 없었을 것이에요. 안 그래요?"
"헉! 그, 그걸 어찌…."

"흥! 전음을 엿듣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요."
'허억! 전음을 들을 수 있다고…?'

뇌흔은 너무도 놀랐는지 한 발짝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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