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219

빙화 구연혜 (2)

등록 2003.09.02 13:15수정 2003.09.02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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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음을 엿들을 수 있으려면 적어도 등봉조극(登峰造極)의 경지에 이르지 않고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는 무림인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삼화취정(三花聚頂)이나 오기조원(五氣造元)을 넘어서는 경지를 이르는 말이다.

이만한 경지에 이르면 무공을 전혀 익히지 않은 것처럼 보이게 되는데 환골탈태를 하지 않고는 오를 수 없는 경지이다.


현 무림에 이만한 경지에 이른 것으로 추정되는 인물은 손으로 꼽을 정도인데 철기린과 순찰원주, 그리고 비보전주 등 몇몇뿐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아직 어리다면 어린 빙화가 그만한 경지에 올랐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기에 놀란 것이다.

"죄인을 하옥하되 상처를 치료해 주세요! 내일부터는 본 당주가 직접 국문할 것이니 그리 알도록 하세요."
"존명!"

빙화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국문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허리가 직각으로 꺾였다. 그러나 단 한 사람 뇌흔만은 넋이 나간 사람 마냥 멍한 표정을 지으며 서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빙화가 등봉조극에 이른 초극강 고수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으으으! 으아아아아악!"
"아아아악! 아악! 사, 살려줘! 잘못 했어. 살려줘! 아아악!"


"케에에엑! 마, 말할게 다 말할 테니 이 이제 그만. 아아아악!"
"끄아아악! 아아아악!"

둘레의 길이가 수십 리에 달하는 무림천자성의 성벽 지하에는 외인들이 알지 못하는 공간이 있다.


규환동(叫喚洞)이라 불리는 이곳은 원래 질 좋은 만년한철이 쏟아져 나오던 철광이었는데 더 이상 쓸모가 없게 되자 적당히 손질하여 죄지은 자들을 가두는 뇌옥으로 쓰이는 곳이다.

사람이 죽으면 생전에 선한 일을 많이 하여 공덕을 쌓은 자는 극락으로 가고, 죄업을 지은 자는 지옥에 가게 된다. 지옥에는 여덟 가지가 있는데 이를 팔열지옥이라 한다.

등활(等活)지옥은 몽둥이로 얻어맞고 살이 찢겨 거의 죽음에 이르렀다가도, 바람이 불면 다시 살아나 똑같은 고통을 되풀이해야 하는 지옥이다.

흑승(黑繩)지옥은 검정색 오랏줄로 꽁꽁 온 몸이 감겨서, 살이 갈기갈기 찢기는 지옥이고, 중합(衆合)지옥은 인간의 신체가 느낄 수 있는 모든 고통을 한꺼번에 느껴야 하는 지옥이다.

규환(叫喚)지옥은 고통을 못 이겨 짐승처럼 울부짖지 않을 수 없는 지옥이며, 대규환(大叫喚)지옥은 규환지옥에서 겪어야 하는 고통의 강도가 한층 더 심한 지옥이다.

초열(焦熱)지옥은 불길에 몸이 휩싸여 살이 타는 고통을 겪어야 하는 지옥이며, 대초열(大焦熱)지옥은 초열지옥에 비해서 한층 더 뜨겁고 고통스런 지옥이다.

마지막으로 무간(無間)지옥이 있는데 한 순간도 멈춤 없이 갖가지 고통을 겪어야 하는 지옥이다.

규환동의 규환은 바로 팔열지옥의 명칭에서 따온 것으로 이름 그대로 비명이 끊기지 않는 곳이다.

이곳에는 수천 개에 달하는 뇌옥이 있으며, 그곳에 갇힌 죄수들을 고문하여 알고자 하는 것을 알아내는 고문기술자들의 수효만 해도 수백에 달한다. 그렇기에 비명 소리가 끊이고 싶어도 끊일 수 없는 곳이다.

"으으으! 으으으으…!"

어두컴컴한 규환동의 한 구석, 굵은 창살 안쪽 벽에서 나지막한 신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지난 이틀 간 철마당주인 뇌흔의 고문을 받으면서도 비명한번 지르지 않던 이회옥의 신음이었다.

그의 두 손은 천장에서 내려온 쇠고랑에 묶여 있었으며, 그의 허리는 벽에서 튀어나온 쇠고랑에, 두 발은 바닥에 박힌 쇠고랑에 묶여 꼼짝달싹도 못할 상황이었다.

봉두난발이 된 그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만신창이라는 말이 딱 맞을 것이다. 어디 하나 제대로 성한 곳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엉망진창이었던 것이다.

그런 그의 무릎 부근에 무언가를 문지르는 사람이 있었다. 규환동 옥졸 복장을 한 그의 손에 들린 것은 외상을 치료할 때 사용하는 금창약인 듯 싶었다.

"크흐흐흐! 네놈은 운이 좋은 줄 알아라. 아씨의 명이 없었다면 지금쯤 몽둥이 찜질이 한창일 텐데…. 흠! 됐군. 내일부터는 우리 규환동만의 멋진 고문이 네놈을 기다리고 있을 거다. 크흐흐! 우선은 이게 어떤지 맛이나 보고 있어라. 크크크!"

음침한 괴소를 터뜨린 옥졸은 이내 어슴프레한 어둠 속으로 사라짐과 거의 동시에 고개를 떨군 채 혼절해 있던 이회옥의 눈이 떠졌다. 그리고는 길고 긴 비명을 지르기 시작하였다.

"으으으! 으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아악!"

사실 방금 전 왔다간 옥졸은 상처가 낫도록 금창약을 바른 것이 아니라 고춧가루를 마늘 즙에 갠 범벅을 발랐다.

따라서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쓰라림과 따가움, 그리고 그것으로 인한 엄청난 통증 때문에 깊은 혼절에서 깨어난 것이고, 비명 또한 저절로 터져 나왔던 것이다.

손이라도 쓸 수 있다면 덕지덕지 발라놓은 그것을 떼어내기라도 하겠건만 그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어떻게든 떨궈내야 한다는 생각에 본능적으로 움직이려 하였으나 허리와 발목이 고정되어 있어 그저 떠는 정도였다. 그 정도로는 끈적끈적한 것이 떨어질 리 없다. 따라서 통증은 전혀 줄지 않고 있었다.

불가항력(不可抗力), 속수무책(束手無策)!

이 말은 바로 이런 때를 표현하는 말일 것이다. 꼼짝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반 시진 동안이나 신음과 비명을 토하던 이회옥은 결국 혼절의 나락으로 떨어져 내렸다. 더 이상 비명을 지르거나 신음을 토할 기력조차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림의 정의를 수호하겠다는 기치를 내건 무림천자성 내에 이처럼 가혹한 형벌을 가하는 뇌옥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오로지 형당 사람들뿐이다. 이런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면 정의수호라는 말이 무색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이회옥이 혼절한 후로도 규환동 내부에는 비명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어디선가 누군가가 고문당하는 모양이었다. 과연 규환동이라 불릴만한 곳이었다.

"정말 대단한 사내였어! 어쩜 그럴 수 있지?"

깊은 밤 동경 앞에 앉아 머리를 매만지던 빙화는 지닌 이틀 간 지독한 고문을 당하면서도 끝끝내 비명이나 신음을 토하지 않으려 이를 악물던 이회옥이 너무도 인상적이었다.

고통이 심하면 심할수록 이회옥의 안광은 더욱 빛을 발했다. 뇌흔을 반드시 죽이고야 말겠다는 결심의 눈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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