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보았던 모습이기에 더 아름다워라

등록 2003.09.03 08:31수정 2003.09.03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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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때를 따라 피는 꽃들이 아름다움을 담기 위해 산책길이면 늘 카메라를 챙겨들고 나간다. 꽃뿐만 아니라 좋은 풍경이나 사진으로 담겨져 어떤 의미를 줄 수 있을 듯한 장면들이 있으면 카메라에 담아 보기도 한다.


카메라에 담아둔 것들을 한 컷씩 보노라면 마음에 쏙 드는 사진들이 간혹 있는데 공통점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하나는 동적이라서 찍기가 어려웠던 곤충같은 것들이나 전혀 의외의 돌발상황을 담은 것들이요, 다른 하나는 언젠가 보았음직한 것들을 찍어 둔 것이다.

도시생활을 하면서 도감으로나 보던 것들의 실물을 만나게 되면 이름을 몰라도 '아, 저거 어릴 때 많이 보았던 것인데!'하는 반가움에 그 사진에 더 애착이 가는지도 모를 일이다.

둥지에 앉은 새를 언제 보았던가?
장맛비가 오고 나면 동네 개구쟁이들과 버섯을 따러 산에 가곤 했다. 풀섶을 헤치다 보면 새집이 있기도 했고, 나뭇가지에 걸려있는 새집도 있었다. 새알을 훔치기 위해 살금살금 다가가면 대부분 날아가지만 알이 있는 경우에는 끝까지 둥지를 지키고 있었다. 마음이 약해져서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돌아오던 유년의 기억들…. 그래서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a 제비나비

제비나비 ⓒ 김민수

꽃은 발견하기만 하면 거의 카메라에 담을 수가 있다. 설령 맘에 들게 담지 못했다손 치더라도 또 다른 자리에서 더 예쁜 모습을 담을 수 있다.

그런데 나비는 모습을 보여주기는 하되 다가만 가면 멀리 날아가고, 예쁜 꽃을 배경 삼아 앉아주었으면 하지만 앉는 곳도 제 맘 대로이니 몇 갑절의 수고와 행운이 따라주어야 한다.


제비나비는 좀 깊은 산중이나 환경이 깨끗한 곳에서 서식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니 유년 시절 동네에서 제비나비를 자주 볼 수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깨끗한 환경에서 자랐다는 증거이겠다. 언제부터인지 노랑나비 흰나비는 보였지만 제비나비는 쉽게 볼 수 없었다.

깊은 산길에서나 간혹 만나던 제비나비, 이름이야 근래에 알았지만 아주 오래 전에 보았던 그 모습 그대로 푸른 창공을 훨훨 비상하는 나비의 모습, 그래서 정감이 더 가는 것이겠다.


a 산호랑나비

산호랑나비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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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같은 나비라도 모양새가 다르고, 같은 나비라도 앉아 있는 곳에 따라 다르다. 깊은 산중에서 만난 것들이니 그냥 호랑나비가 아니고 산호랑나비겠거니 하고 나뭇가지나 꽃에 앉아서 휴식을 취하거나 꿀을 빨기를 기다린다. 수풀이 우거진 하늘로 '휘익!' 비상하면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른 것을 찾아 두리번거릴 수밖에 없다.

초등학교 때 여름방학 숙제 가운데에는 '곤충채집'이라는 것이 있었다. 매일매일 주변에서 보는 것이 뭐 대단한 것인가 했지만 숙제니까 사슴벌레, 나비, 잠자리 등을 개학하기 하루 전에 들판을 뛰어다니면서 잡던 기억들, 그래서 살아있는 것들을 학교로 가져가 친구들과 겨루었던 기억들이 생생하다.

곤충채집은 생명을 죽여야 하는 숙제니 좋은 숙제는 아닌 듯하다. 끈기를 가지고 계속 좇아 다니다 보면 나비도 지칠 때가 있는지 한번 모델이 되기를 허하면 그 다음부터는 몇 컷을 찍어도 요지부동이다.

a 나비인지 나방인지?

나비인지 나방인지? ⓒ 김민수

사람의 욕심은 한이 없다.
꽃을 배경으로 해서 나비를 찍고 싶다고 하더니 정작 그런 장면이 연출되면 저 나비 말고 다른 나비였으면, 저 꽃이 아니고 다른 꽃이었으면 하는 아쉬운 마음을 갖게 된다.

어린 시절에는 꽃에 나비가 앉아있는 것이 볼거리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 어른이 되고 보니 세상사에 치어서 어린 시절에 보았던 그 당연하던 풍경들이 눈에 잘 들어오질 않는다. 그러니 어느 한 쪽의 눈은 실명하고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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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포즈를 잘 잡아주면 뭐하냐? 제대로 찍지도 못하면서!'
이 사진을 찍고 나서 느낀 생각이다. 누구에게나 삶을 살아가다 보면 기회라는 것이 서너 번은 찾아온다고 한다. 그러나 그 기회라는 것은 뒷대머리라서 올 때는 잡을 수 있지만 스쳐 지나가는 순간부터는 잡으려해도 잡을 수 없다고 하던가.

어쩌면 우리의 하루하루가 기회다. 아니다 싶었는데 오늘 하루가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의 날일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하루하루의 삶을 더 열심히 살아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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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잠자리가 많아지면 모기가 적어지고, 잠자리가 적어지면 모기가 기승을 부린다. 하루살이들이 한 곳에 모여 윙윙거릴 때 잠자리 한 마리가 그들 틈으로 비행을 하면 하루살이의 대열이 순간 흐트러지고 잠자리는 먹이를 구했는지 다른 곳으로 날아가 버린다.

잠시의 휴식시간.
날아갈 듯 날아갈 듯 포즈를 취해준 잠자리를 어린 시절에는 검지손가락을 잠자리 앞에서 빙빙돌리다가 '휙!' 하루살이를 잠자리가 낚아채듯이 잡곤 했었다. 조금 더 진보된 잠자리 잡기는 철사를 둥그렇게 만들어 대나무에 달고, 모은 거미줄을 이용해 잡는 것이었다.

어린 시절에 보았던 것들, 언젠가 보았던 것들은 추억을 낳고 만든다.

a 무당벌레의 짝짓기

무당벌레의 짝짓기 ⓒ 김민수

빨간 윤기가 자르르 흐르던 무당벌레는 볼 수가 없다.
언젠가 볼 기회가 있겠지 하는 기대감, 아니면 이것들이 화려한 변신을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무당벌레는 농약을 치지 않는 나의 작은 텃밭에는 참으로 고마운 손님들이다. 진딧물이 그들이 좋아하는 별식, 간혹 개미들이 그들의 식사를 방해하긴 하지만 그들이 허기져서 아사상태에 이르기까지 방해하지는 않겠지.

그들의 짝짓기.
유년 시절에는 곤충들의 짝짓기 하는 모습을 많이 봤었다.
잠자리, 나비, 메뚜기, 무당벌레, 심지어는 파리들의 짝짓기까지….

모두가 언젠가 보았던 모습이기에 더욱 아름다워 보인다. 그리고 언젠가 보았던 그 모습이 아직도 우리 곁에 있음을 감사하며,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증거로 보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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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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