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것은 소중하고 아름답다

박철의 <느릿느릿 이야기>

등록 2003.09.09 09:55수정 2003.09.09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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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인호

작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마음


고장난 수도꼭지에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작은 새 소리, 어느 집에선가 울려나오는 피아노 소리, 가는 빗방울 소리, 그런 작은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조용하고 세심하게 그리고 아주 열심히 귀 기울여야 합니다. 작은 소리를 듣기 위하여 귀를 여는 것, 그것은 바로 작은 소리를 소중하게 여기는 청각의 개방(開放)입니다.

이른 아침, 가을 햇살이 눈부십니다. 숲 속에 들어가 숨을 고르고 단전(丹田)을 하면 더 작은 소리까지 들을 수 있습니다. 숲 속에서는 더 솔직한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번잡한 생각으로 마음이 분주하면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습니다. 숲 속에는 사위(四圍)가 조용합니다. 그러나 조용한 중에 들려오는 소리(音)가 있습니다. 가끔 만나는 작은 소리들이 크고 웅장한 소리보다 더 큰 아름다움을 담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볼프의 이탈리아 가곡집은 <작은 것일지라도>라는 곡으로 시작됩니다. 볼프의 가곡집 중, 가장 먼저 작곡된 것이 아니면서도, 이 곡이 제일 먼저 실린 까닭은, 아무리 작은 것에도 귀중한 아름다움이 있다는 곡의 내용을 일종의 캐치프레이즈로 삼으려 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시벨리우스는 ‘아름다움이란 그것을 발견하는 사람의 것’이란 말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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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릿느릿 박철

나는 작은 게 좋아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작은 게 좋아
다들 큰 것에 미쳐
큰 것만이 귀한 것인 냥
큰 것에만 매달려도
나는 작은 게 훨씬 마음 편해
작다고 해서 기죽지 않고
작다고 해서 불편하게 느끼지 않고
작은 것에 행복이 있으려니 믿고
나는 작은 것을 찾아 갈 테야
작으면 어때 작으면 작은 대로 의미가 있고
생명이 있으면 되는 것이지
그 속에 무한한 바람이 있고
어디서도 맛 볼 수 없는 평화가 있으니
나는 작은 게 좋아
나는 작은 게 훨씬 마음 편하고 좋아.
(박철의 詩 . 작은 게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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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인호

작은 자(小子)를 귀하게 여기는 마음


아침이면 우리집을 찾아오는 반가운 손님이 있습니다. 까치입니다. 어느 때는 한낮에도 찾아옵니다. 좀더 정확하게 얘기하면, 우리집에서 키우는 개(방울이) 집을 찾아옵니다.

개 집 앞, 방울이 밥그릇에 남은 밥찌꺼기를 먹으러 찾아옵니다. 방울이와 까치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까치가 자기 밥을 먹어도 방울이는 절대 짖지 않습니다. 까치가 밥을 먹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습니다. 까치도 방울이를 전혀 경계하지 않습니다.


방울이가 자기 집에서 나와 서성거려도 까치는 방울이 밥을 먹습니다. 얼마나 평화롭고 정겨운 아침풍경인지 모릅니다. 아침에 까치들이 “까까~”하는 소리가 들리면 까치가 방울이 집을 방문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요즘 사람들이 사는 게 힘들다고 말합니다. 가진 자는 너무 많이 가졌고, 없는 자는 너무 가난해서 생기는 문제들입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가진 자가 조금 양보하거나, 덜 가지려고 하면 될 것을, 몽땅 다 가지려고 하기 때문에 그만큼 없는 사람은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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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인호

나의 스승 예수님은 언제나 ‘작은 것’에 관심을 두셨습니다.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많이 가졌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 아니고, 내가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기 때문에 불행한 것이 아니라, 내가 이웃과 나누지 못한 것이 불행이며, 내가 이웃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행복한 삶입니다.

방울이와 까치처럼, 모든 사람이 함께 나누고, 양보하며 살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작은 자’(小子)를 무시하면 안됩니다. 나보다 가진 것이 없다고, 나보다 배운 것이 적다고, 나보다 자랑할 것이 없다고 업신여기거나, 천대하면 안됩니다. 그런 편협하고 불평등한 생각이 나를 좀먹게 하고 병들게 합니다.

무릇 모든 생명있는 것은 귀한 것이다.

펄벅 여사가 우리나라를 처음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 파란 하늘과 깨끗한 풍경에 감탄한 펄벅 여사는 우리나라의 옛 모습을 보기 위해 경주로 향했다고 합니다. 기차 안에서도 ‘한국의 산하는 너무나 정겹고 아름답구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창 밖만 보고 있는데, 문득 스쳐가는 한 늙은 농부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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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릿느릿 박철

그 농부는 짚단을 실은 소달구지를 몰고 가는 중이었는데, 자기 등에도 짚단을 가득 얹은 지게를 지고 가더라는 것입니다. 분명히 소달구지에는 농부가 지고 가는 만큼의 짚단을 실을 여유가 있어 보였는데 말입니다. 펄벅 여사는 이것이 소의 힘을 조금이라도 덜어 주기 위한 늙은 농부의 고운 마음이라는 것을 알고는 큰 감명을 받아서 미국으로 돌아가서도 자주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한국은 산하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고, 사람들의 마음씨도 너무나 곱습니다. 저는 그때 본 가슴 찡한 광경 하나만으로도 이미 한국에서 보고 싶은 것, 봐야 할 것을 다 본 셈입니다.”

펄벅 여사가 우리나라 와서 보았다는 늙은 농부 같은 사람이 그립습니다. 모든 생명 있는 것이 귀하고 아름답습니다. 누구든지 이 세상에 나그네처럼 왔다가 나그네처럼 돌아갈 생각을 하면 얼마든지 욕심을 버릴 수 있습니다. 사람이 많이 갖거나 누릴수록, 그 생각은 번잡하고 복잡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욕심을 버리면 버릴수록 더욱 단순하고 넉넉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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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릿느릿 박철

법정 스님은 그의 <무소유>라는 책에서 집착을 버리고 삶을 관조(觀照)하는 것에 인간의 진실이 있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허욕(虛慾)에 사로잡히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실상은 눈이 먼 것입니다. 인간의 행복은 작은 것을 소중히 볼 줄 아는 마음에 깃들여 있습니다. 작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마음, 지극히 작은 것이라도 천시하지 않고, 거기에 생명의 경외(敬畏)를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속상해 아무도 작은 이의 소리에
관심도 없고 귀도 기울이지 않아
아침이슬 촉촉한 물기를 머금고
청초한 새날을 꿈꾸려니
쉽게 넘나들 수 없는 자유를 위해
속 알맹이 터뜨려 한 마리
나의 비상을 노래하려니
마음이 아프잖아
언제부터 작은 것은
모조리 성가신 것으로 생각할 줄이야
방긋한 미소 생명의 기운 물씬한
대지의 정직함도 소용없는 일로 간주하다니
너무 속상해
언제 노고지리의 노랫소리가
온갖 풀벌레의 사랑의 화음이
모든 이의 가슴으로 스며들지는 몰라
몰라, 몰라, 난 몰라
아무런 고민도 없이 망설임도 없이
거대한 불신의 벽
철조망같이 서슬 퍼런 냉기를 뛰어넘어
한 마리의 비상하는 나비가 되어
모든 이의 가슴에 따스한 온기로 남아
뿌리를 내릴 수 만 있다면,
누가 내 마음을 알아주고
누가 내 아픔을 이해해 주고
함께 사랑의 노랠 부를 수만 있다면
좋겠는데,
정말 좋겠는데,
(박철의 시. 민들레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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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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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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