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그대 마음에 산이 있는가(3)

박철의 <느릿느릿 이야기> 에베레스트를 흠모하며

등록 2003.09.08 05:44수정 2003.09.08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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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인호

꼿꼿한 산허리는
둔하지도 않고 가늘지도 않고
누구나 보듬고 싶은
그리운 어머니의 품처럼 정겹기만하다
때마침 장마철이라 계곡의 물줄기는
풍요로운 어머니의 젖줄기처럼
넘치듯 흐르고
안개구름 사이로 솟아오르는
한 줄기 광선은
차라리 넉넉한 평화이어라


아, 이 반도강산에
어김없이 변함없이
가을이 오는구나
노추산의 낯선 나그네들은
한없이 취하여
차라리 조용한 침묵이어라.
(박철의 詩. 노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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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인호

산은 인간의 마지막 삶의 터이다. 자연이 망가지면 인류도 망하게 된다. 산이 좋기 때문에 사람들은 산에 오른다. 산이 좋지 않아도, 산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산에 오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경우는 극히 적을 것이다. 산은 아름답다. 그 선이 아름답고 그 모습이 아름다우며 그 색깔이 아름답다. 산에서는 신록과 꽃과 단풍, 그리고 억새밭이 아름답다.

산의 숲과 개울이 아름다우며 지저기는 새소리도 아름답게 들린다. 안개와 구름과 어울리는 산이 아름답고 산에서 보는 해돋이와 석양이 또한 아름답다. 하얗게 눈을 이고 있는 산도 아름답다. 산은 철마다 구석구석 모두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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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변하지 않고 움직이지 않는다. 물은 변하지만 산은 변하지 않는다. 산은 높이 솟아 줄기차게 뻗고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변하지 않고 장중하며 영원한 산에 비하면 인간의 고뇌와 번민은 하찮은 것이다. 산은 생명의 근원이 되고 넉넉하다. 산은 생명의 근원인 물을 공급하고 산소를 만들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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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인호

산은 높고 변하지 말아야 하며, 물은 고여 있지 않고 변해야 한다. 그래서 산이 높아야 물이 흐르고 맑다. 산에는 나무가 있고 짐승이 있으며, 나물과 약초와 열매가 있고 꽃이 있다. 그리고 인간에게 안식과 만족과 건강을 주는 아름다움이 있다.


산은 자연이며 태초로부터 인류의 보금자리이다. 문명은 자연스럽지 아니하고 비인간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다. 산은 문명으로부터 인간과 자연을 지키는 보루(堡壘)이다. 산은 너그럽고 잘 견디며 말이 없고 모든 것을 감싼다. 비바람과 눈보라가 호되게 후려쳐도 묵묵히 견디고, 눈이 내려도 마다하지 않고 뒤집어 쓴 채 치우려 하지 않는다. 산은 그의 자락에 있는 개울과 숲과 논밭과 마을 감싸 안고 있다. 사람들은 못된 짓들을 하고 산을 해쳐도 사람들을 쫒아내지 않는다. 사람들은 산을 버리고 떠날 뿐이다.

산은 우뚝하고 장(壯)하며 끊임없이 이어진 모습과 기상으로 사람들에게 희망과 위안을 준다. 산이 사람에게 주는 계시나 교훈을 참으로 크고 많다. 산은 무겁고 흔들리지 않으며 변하지 않는 의리를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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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인호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하고 현명한 사람은 물을 좋아한다(仁者樂山, 賢者樂修).”라는 말도 산의 흔들리지 않은 묵직한 속성 때문에 생겨난 말이다.

산의 인내와 침묵을 사람들은 배워야 한다. 산은 언제나 말이 없다. 산은 인간의 한계를 깨닫게 한다. 문명사회에서는 인간의 능력이 한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비행기로 하늘을 날고, 자동차로 빨리 달리며, 추위와 더위를 마음대로 조절하고, 몸의 병도 약과 수술로 고친다. 그러나 대자연인 산에서는 문명은 활용하기 어려우며 자연스러운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의 능력은 한이 없다는 착각에서 깨어나야 한다. 가파른 산비탈을 달려 오를 수 없고, 더위나 추위 그리고 걷는 것도 자기 능력과 체력을 감당해야 하며, 배가 고프고 병이 나도 자기 힘으로 해결해야 한다. 산에서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분명해 진다. 인간은 능력의 한계를 분명히 알고 겸손해 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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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인호

산의 고스락에 서서 성취의 기쁨과 만족을 얻고 조망(眺望)의 즐거움과 활기의 기(氣)를 얻으려면 어려움을 이겨내고 가파른 비탈을 오르는 등 노력이 있어야 한다. 산에 오르면 멀리 볼 수 있고 부분이 아닌 전부를 볼 수 있다. 높은 곳에 멀리 내다보고 부분이 아닌 전부를 살피는 인생이 되도록 산을 우리들에게 가르친다.

산의 등성이나 고스락에 오르면 내가 지나온 골짜기와 산등의 길이 되돌아보아진다. 이처럼 사람들은 지나온 과거를 돌아보고 반성할 줄 알아야 한다. 산은 올라가면 반드시 내려와야 한다. 정상에 서면 한없이 좋아도 정상에서 살 수는 없다. 적당한 시기에 정상을 떠날 줄도 알아야 한다.

높은 산을 오를 때도 처음부터 오르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조금 내려가는 경우도 있다. 또 북쪽이 있는 산에 오른다 해서 줄곧 북쪽으로만 가는 것은 아니다. 가다보면 남쪽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많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전진하다가도 잠시 후퇴하기도 하며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산은 우리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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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인호

산은 이처럼 사람들에게 너그럽고 넉넉한 마음을 갖도록 일깨워 준다.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을 품에 감싸 안도록 타일러 주고 있다. 산은 이처럼 많은 계시와 영감을 준다.

가을이 깊어간다. 나는 눈을 감으면 산이 어른거린다. 늘 마음에 산을 품고 산다. 내 마음에 있는 산은 나에게 “더욱 겸손하게”- 살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내가 산에 오르면서 깨닫게 되는 가장 큰 삶의 화두이다.

지금 그대 마음에 산이 있는가? 산이 그대에게 하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시라.

역사의 쓰디쓴 들녘을 걷자니
자꾸 눈물이 납니다
이미 초겨울 바람에 꺾여버린
억새풀 사이에서
무명에 간 어느 님의
호곡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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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인호


겉잡을 수 없는 적막함으로
비석대에서 중머리재로 내려오는 길에서는
정말 울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제발 무등산에는
찬바람이 불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따스한 봄 햇살을 맞으며
넉넉한 평화를 맞으며
호젓하게 산길을 걷고 싶습니다.
(박철의 詩. 무등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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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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