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224

빙화 구연혜 (7)

등록 2003.09.10 12:37수정 2003.09.10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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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 이 구절을 읽은 바 있는 혈면귀수는 깊은 감명을 받아 교토삼굴을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고 있었다.

덕분에 무천장 부장주로 재직하는 동안 숱한 부정을 저질렀지만 한 번도 걸리지 않고 무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같은 이슬이라 할지라도 약초가 머금으면 뛰어난 효능을 지닌 약이 되지만, 독사가 마시면 독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일일 것이다.

어쨌거나 세월이 흐르면서 혈면귀수는 교토(狡 )의 수준을 넘어 노회(老獪 :늙은 여우)의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여옥혜는 혈면귀수의 주변에 있던 정의수호대원들이 후원에서 발생된 화재를 진압하기 위하여 출동한 것을 확인한 바 있다.

불필요한 희생을 줄이기 위하여 인내를 가지고 그들이 출동하기를 기다렸던 것이다.

그들이 사라진 뒤 이제 무방비 상태일 것이라 판단한 여옥혜 일행은 혈면귀수를 찾아내기 위한 수색을 시작하였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문제는 이때 발생되었다.

한참 수색을 하던 중 백여 명에 달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인들이 서서히 포위망을 좁혀오고 있었던 것이다.


노회한 혈면귀수는 자신의 안위를 위해 정의수호대원들 이외에 낭인들로 구성된 호위무사들을 따로 은신시켜 두었던 것이다.

졸지에 형세가 역전된 여옥혜를 비롯한 일행은 그야말로 피가 튀고 살점이 날리는 대 혈전을 벌어야 하였다.

이런 모습을 비릿한 조소를 베어 문 채 바라보는 인물이 있었다. 혈면귀수였다. 자신에게 승산이 있다 판단되자 은신처에서 기어 나왔던 것이다.

왕구명을 비롯한 일단의 정의문도들이 들이닥친 순간은 여옥혜 일행이 몰살당할 수도 있는 위급한 상황이었다.

갑작스럽게 엄청난 인원이 들이닥치자 낭인들은 병장기를 내던지고 도주하였다. 개똥밭을 굴러도 저승보다는 이승이 났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은자에 팔려온 신세라고는 하나 제 목숨이 위태로워지자 그대로 줄행랑을 친 것이다.

의기양양해진 일행이 혈면귀수를 생포하려 할 때에도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되었다. 무공을 익히기는 하였으나 그리 강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진 혈면귀수가 대단한 고수였던 것이다.

여옥혜와 왕구명, 그리고 좌비직 등 사대당주까지 합세하지 않았다면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강적이었다.

결국 혈면귀수를 생포하여 압송하는 개가를 올리기는 하였으나 정의문도 적지 않은 희생을 치렀다. 아무리 우왕좌왕하였다 하더라도 정의수호대원들의 무공이 월등하였기에 당한 것이다.

아무튼 혈면귀수를 생포한 일행은 즉각 산해관 밖 이하구(二河口)로 향하였다. 이곳은 본시 해적들의 근거지였던 곳이다.

정의문은 일찌감치 그들을 제압하여 휘하로 삼고 이곳을 전진기지로 삼았다. 여차하면 내륙으로 숨어들거나, 바다로 도주할 수 있는 전략적인 요충지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육은하(六殷河)의 하류이기에 물자의 수송이 원활하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선택된 곳이기도 하다.

이하구에 당도한 정의문도들은 동료들의 장례식을 치르고, 부상당한 동료들을 치료한 뒤 이곳 육정림(育正林)에 집결하였다.

혈면귀수를 처단하기 위함이었다. 그로 인하여 지난 몇 년간 산해관 인근 양민들은 살아 있어도 산목숨이 아니었다.

농사를 지으면 거의 대부분의 소출을 수탈 당했을 뿐만 아니라 치마만 둘렀다 하면 미추노소를 가리지 않고 끌고 갔다.

여인들은 혈면귀수를 비롯한 그의 휘하에게 더럽혀질 대로 더럽혀진 뒤 중원 각지로 팔려갔다. 고리대금업으로 급한 사람들을 착취한 것으로도 모자라 아예 인신매매까지 한 것이다.

어린 소년이나 노인을 제외한 사내들은 일 년에 적어도 두 달은 강제노역에 종사하여야 하였다. 물론 품삯이라곤 한 푼도 지급하지 않았다.

이렇게 하여 혈면귀수가 매년 수십만 냥에 달하는 은자를 축적하는 동안 양민들은 먹을 것을 찾아 나무껍질을 벗기러 산 속으로 산 속으로 들어가야 했던 것이다.

이하구에 있던 해적 가운데에는 전직 관병이 있었다. 형부 소속이었던 그는 상관을 살해하고 도주하다 해적이 된 자였다.

그는 전임 무천장주인 사면호협이 어찌 되었는지를 알아낼 방법이 있다 하였다. 그가 택한 방법은 주리틀기였다.

주리란 본시 전도주뢰(剪刀周牢)에서 파생된 말로 두 다리를 묶어 놓고 그 사이에 주릿대를 끼워 비트는 형벌이다.

이것을 오래 당하면 다리뼈가 부러지기 마련인데 노련한 고문기술자들은 부러지기 직전 가장 고통스러울 때 형벌을 멈춘다.

그리고는 조금 괜찮아졌다 싶으면 다시 비트는데 이렇게 하면 웬만한 사람은 죽은 조상들이 지은 죄까지 모두 토설(吐說)하게 된다고 하였다.

"아아악! 말한다니까. 아아악! 말한다는데 왜…? 아아아악!"
"호오! 그러셔? 좋아, 전임장주셨던 사면호협께서는 지금 어디에 계시느냐?"

"으으으! 그, 그는 무, 무림지옥갱에… 으으으으!"
"뭐, 뭐라고? 무림지옥갱?"

"그, 그렇다."
"이, 이런 나쁜… 어떻게 아버지를…"

무림지옥갱이라는 소리에 여옥혜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런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무림지옥갱이 대체 어떤 곳이던가!

천인공노할 죄를 저지른 자가 아니면 보내지 않는 곳이다. 가히 인세에 있는 지옥이라 할 수 있기에 세상에서 가장 참혹한 곳이라고 한다. 그런 곳에 부친이 보내졌다 하니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어 말을 이을 수 없었던 것이다.

"마, 말을 했으니 이제 이건 그만 빼주고…"

뻔뻔스럽게도 혈면귀수가 주릿대를 빼달라는 소리를 하자 왕구명의 안색이 돌변하였다.

"이런 개 같은 놈이…? 지금 당장 저놈의 입에 재갈을 물려라. 그리고 별도의 명이 떨어질 때까지 계속하도록!"
"존명!"

명이 떨어지자 주리를 틀던 청년들은 준비해 두었던 재갈을 물리고는 이내 주릿대를 잡고 힘을 썼다.

"으으으윽! 으으으으윽!"

재갈이 물려 마음껏 소리칠 수조차 없게 된 혈면귀수는 어디에 하소연할 데도 없으며 고통을 피할 수조차 없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것은 악어(惡魚)의 눈물이었다.

이를 본 왕구명은 가증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흥! 네놈은 네놈이 지은 모든 죄를 토설(吐說)해야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시기가 지금은 아니다. 오늘부터 삼칠일(21일) 동안 네놈은 죽지 않을 정도의 고통을 맛본 뒤에 불게 될 것이다."
"으으으으! 으으으으!"

혈면귀수는 뜻을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었다. 굳이 고문을 가하지 않아도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불 터이니 제발 멈춰달라는 뜻일 것이다.

"저 늙은 놈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 아직 덜 아파서 그러는 모양이니 조금만 더 세게 해라."
"존명!"
"으으으윽! 으으으으으으윽!……"

이날부터 삼칠일동안 혈면귀수는 지옥에서 맛 볼 고통을 맛보았다. 그 동안 그가 겪은 고문 수법은 무려 이백하고도 열한 가지였다. 그러는 동안 지은 모든 죄를 모두 불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당한 고문은 분근착골(分筋搾骨)이라는 것이었다. 글자 그대로 전신 근육이 가닥가닥 끊어지고 모든 뼈마디를 쥐어짜는 듯한 극심한 고통 속에서 처절한 비명을 지르다 저승의 고혼이 되었다. 또 하나의 악인이 지옥으로 향한 것이다.

며칠이 지난 후, 이하구를 떠나는 일단의 무리들이 있었다.

장삿길에 나선 상인 복장이나 서생 복장 등을 한 그들이 향하는 곳은 무림지옥갱이 있다는 황산이었다. 숙의 끝에 그곳에 하옥되어 있다는 사면호협을 구출하기로 의견을 모은 것이다.

지금껏 산해관 인근에서만 머물던 정의문이 정식으로 강호행을 시작하기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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