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자라서 이 나라에 '소금'이 되려무나

박철의 <느릿느릿 이야기>

등록 2003.09.12 09:12수정 2003.09.12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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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릿느릿 박철

가을입니다. 아침이면 하얀 이슬이 방울방울 맺히는 가을입니다. 아직 한낮엔 곡식을 익히는 햇볕이 따갑습니다. 그러나 제법 가을빛을 띠는 나무그늘에 들어서면 선선한 기운이 감돕니다. 질금 질금 오던 비가 개면 하늘은 점점 더 높아지고 먼 산이 가깝게 보입니다. 들판의 초록물결이 황금물결로 바뀌는 계절입니다.


오늘 아침, 며칠 전 인터넷 신문에 올린 "오빠, 바로 내가 교동을 빛낸 사람이야!"라는 은빈이 이야기에, 어떤 분이 '아저씨'라는 필명으로 "잘 자라서 이 나라에 소금이 되려무나"라는 짤막한 댓글을 남겨주셨습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에 감동을 받습니다. 아니 그 고마운 말 한마디에 내 온 몸을 떨게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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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빠, 바로 내가 교동을 빛낸 사람이야!"

세상이 거칠고 어수선하기가 이를 데 없습니다. 말 한마디에 가시가 돋치고 송곳처럼 뾰족하여 사람을 마구 찔러댑니다. 크고 작은 삶의 틀이 다 무너져 내릴 것 같습니다. 이래저래 걱정하는 소리가 많습니다.

"이래서는 안 된다. 저래서는 안 된다. 이것은 이래서 잘못이고, 저것은 저래서 잘못이다.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

소금. 세상에서 가장 귀한 소금이다.
소금. 세상에서 가장 귀한 소금이다.느릿느릿 박철
그런데 이렇게 걱정하는 소리들이 많은데도 세상은 별로 잘 되어 가는 것 같지 않습니다. 이런 일들을 생각해 보면, 세상을 염려해서 많은 말을 하는 것 보다,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이 보다 신중하게 심사숙고되지 않으면 못된 소리보다 더 못된 소리로 끝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옳은 일은 착한데, 착한 일을 옳게 해야 세상이 좀 살만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세상이 어둡고 어수선한 만큼, 참으로 역설적이게도 오늘 우리 사회는 '의인'도 많고 '양심'도 많은 듯 합니다. 그런데도 세상이 반듯해지지 않는 것은 '악의 세력의 집요함'을 탓하는 데서 설명해야 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탓하는 자세를 되물어 탓하는 자리에서 검토되고 설명되어져야 할 듯 합니다.


나의 스승 예수님은 이런 맥락에서 다시 음미해도 좋을 듯싶습니다.

"소금은 좋은 물건이다. 그러나 만일 소금이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하겠느냐? 땅에도 소용없고 거름으로도 쓸 수 없어 내버릴 수밖에 없다.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알아들어라."(누가 14. 34-35)


오늘날 가정과 사회·정치·종교 등의 모든 분야에서, '너'가 '나'처럼 되도록 서로가 강요하고 폭력으로 '나'에게 예속시키려고 한다면, 인간이 소유되는 물질로 전락하여 인간 상실이 야기되고 세상의 모든 분야에 반목과 분열이 발생하고 맙니다.

소금이 맛을 잃어버리면 무엇에 쓸 수 있겠습니까? 비축 과정에서 소금만 순수하게 구별짓지 않을 경우, 소금은 습기로 인해 녹아 그 짠 맛을 상실하여 무용지물이 됩니다. 장소만 차지하고 논밭에 들어가면 농작물에 피해가 커서 밖에 버려져 밟힐 뿐입니다.

느릿느릿 박철

"잘 자라서 이 나라에 소금이 되려무나."

소금, 세상에서 소금만큼 귀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소금은 귀하나 별로 크게 대접을 받지 못합니다. 변변치 못한 깨어진 독 같은 데에 담아둡니다. 소금이 꼭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을 좋은 그릇에 두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루도 이것 없이는 살 수 없을 만큼 귀한 것이지만 푸대접을 받기 일쑤입니다.

'소금이 되라'는 말은 참 인간을 지향하는 경우에는 아예 대접을 받으려는 생각을 버리라는 말과 같습니다. 그러나 소금과 같이 푸대접을 받으나 없어서는 안 되는 귀한 존재입니다. 소금은 생명 같은 존재입니다.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는 염분이 있어야 생명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 피 속에 염분이 있어야 합니다.

소금은 또 맛을 내는 역할을 합니다. 아무리 좋은 음식도 간이 맞아야 맛이 있습니다. 소금이 없으면 국이나 반찬을 만들 수가 없습니다.

소금은 순결을 연상케 합니다. 소금은 깨끗합니다. 부정을 타지 않도록 소금을 뿌리기도 합니다. 소금은 또한 썩는 것을 막아 깨끗하게 하는 방부제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소금을 뿌리면 썩는 것을 막고, 썩다가도 더 썩지를 못하게 합니다.

느릿느릿 박철

우리집 은빈이에게 "잘 자라 이 나라에 소금이 되려무나"라는 글을 남겨주신 '아저씨'라는 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그 고마운 마음을 저부터 마음에 잘 새겨 은빈이가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가르치겠습니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죄 짓는 일이 되지 않게 하소서
나로 하여 그이가 눈물짓지 않게 하소서
사랑으로 하여 못 견딜 두려움으로
스스로 가슴을 쥐어뜯지 않게 하소서
사랑으로 하여 내가 쓰러져 죽는 날에도
그이를 진정 사랑했었노라 말하지 않게 하소서
내 무덤에는 그리움만
소금처럼 하얗게 남게 하소서.
(안도현의 詩.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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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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