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운동회. 누가 천천히 가느냐가 승리의 관건이다.느릿느릿 박철
나는 천천히 가고 싶었다. 내 삶의 목적지가 어디인지는 몰라도 가는 동안, 나는 주변의 모든 것들을 음미하고 싶었던 것이다. 한걸음 나아갈 때마다 달라지는 세상, 그 세상의 숨소리 하나라도 빠뜨리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삶의 끝, 그곳이 어디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되도록 천천히 가고 싶었다. 그곳으로 가는 과정이 바로 내 삶이므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 하나 하나가 모여 내 삶 전체를 이루므로.
사실 우리는 너무 조급하다. 너무 빨리 무언가를 이루려고 한다. 남보다 한 발짝 앞서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무턱대고 빨리만 달리려는 것은 곤란하지 않을까? 모든 것은 다 때와 시기가 있게 마련인데.
우물에서 숭늉을 찾는다고 숭늉이 나올 리도 없고, 바늘귀를 허리에 매어서도 아무 소용이 없다. 천천히 기다릴 줄 아는 지혜, 값비싼 도자기는 불 속에서 오래 구워진 것이라는 것을….
교회가 신축되어 그 제단에 세울 그림을 한 화가에게 맡기게 되었다. 사람들은 하루라도 빨리 훌륭한 그림이 완성되어 제단에 세워지길 기대했으나, 화가는 정작 그려야 할 그림은 시작도 하지 않은 채 산이나 바다를 쏘다니며 열심히 자연만 스케치할 뿐이었다. 나중에는 인물묘사만을 했는데, 그의 스케치북에는 사람의 근육이나 얼굴, 그리고 동작 하나 하나의 움직임 등을 그린 그림만 가득 차게 되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실망하기 시작했다.
"매일 저런 그림만 그린다면 교회의 그림은 언제 그린다는 거지? 왜 저런 사람에게 그림을 그리도록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