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녀라고 성당에만 있나요"

[새벽을 여는 사람들 38]부평 노동자 사목의 김근자 수녀님

등록 2003.09.16 07:08수정 2003.09.16 12:10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 김진석

믿음과 사랑이 충만한 하루가 깨어나려 합니다. 아침을 맞이하는 김근자(47) 수녀님의 새벽 기도가 시작됐습니다. 부천 노동 사목 현장 새날 공부방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는 김근자 수녀님은 현재 부평 사목 현장에서 노동자들과 마음을 나누며 어느덧 십 년째 노동 현장을 지키고 계십니다.


'자신의 것을 온전히 다 내놓고 남을 위해 살 수 있는 삶'에 이끌려 종교인의 길로 들어선 김근자 수녀님은 수녀가 된 후 오히려 간과했던 사회 현실에 눈이 뜨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수도원에서 세상을 위해 기도하는 것 보다 직접 사회에 나가 현실과 부딪치기를 고집한 김근자 수녀님은 오늘도 우리와 같은 평복 차림으로 혼란스런 일상에 뛰어 들려 합니다.

"자신을 잊고 공동선을 위해 온전히 투신 할 수 있는 삶에 이끌렸어요. 수녀원에 들어와 우연찮게 노동 사목 현장을 경험하며 비로소 세상을 바로 볼 수 있는 시각을 얻었죠.

80년대의 치열했던 노동자 투쟁 현장을 보며 가난한 사람들이 울부짖는 현실에 함께 참여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수도원에서 종교적 신념을 쌓고 세상을 위해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반인들과 같은 사회의 일원으로 힘없고 가난한 이들과 같이 세상에서 어울리고 싶었죠."

a

ⓒ 김진석

우리 사회는 이런 김근자 수녀님을 가만 두지 않습니다. 수녀님은 그간 노동 사목 활동 외에도 이라크전 반대, 새만금 반대 등 다양한 사회 활동을 벌여왔습니다.

"온갖 욕설과 계란 세례 및 새만금 추진위분들의 열렬한 환영 인사(?)를 받으며 건강이 더 좋아졌어요(웃음). 실제로 현장에 나가지 않았으면 아마도 새만금 추진위들의 목소리를 직접 피부로 느끼지 못했을 거에요.


오히려 그분들의 생생한 육성을 온 몸으로 느끼고 나니 막연하게 생각했던 새만금 문제를 또 다시 돌아 볼 수 있는 계기가 됐죠.

또 평소에 만나기 힘들었던 다양한 종교인을 만나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앞으로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의견을 나눴던 것도 의미있었어요."


현실 참여에 신념을 투영하고 실천하는 것에 큰 의미를 느끼는 김근자 수녀님은 그 어느 곳보다도 세상의 중심이 되는 노동자들과 함께 할 때 보람과 행복을 얻습니다.

그간 십 년 동안 노동 사목 현장을 지키며 수녀님이 얻은 가장 큰 선물은 '사람들을 만난 일'이라고 합니다.

"처음엔 노동자들이 우리를 받아주지도 않았죠. 그분들의 진심어린 호응 없이 단순히 우리가 대외적으로 벌이는 사회 활동은 별 의미가 없어요. 노동자들과 실질적으로 함께 호흡하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그분들이 마음을 열어 우리에게 자신들의 얘기를 털어놓고 시대를 같이 살아가는 사람으로 우리를 인정해 줄 때 가장 뿌듯하죠.

우리는 종교인으로서 가난한 사람을 편애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적어도 우리만큼은 반드시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과 함께 해야 한다고 믿어요."

수녀님은 노동계의 열악한 현실이 단순히 그들만의 문제가 아닌 모든 사회 문제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녀님은 오히려 날이 갈수록 후퇴하는 노동 환경에 짙은 안타까움을 표합니다.

"아무리 일을 해도 구조적으로 개선되지 않으니 계속 빚을 지게 되요. 어렵게 일하는 분들의 대부분이 신용 불량자에 비싼 이자 및 연체료들을 물고 있어요. 결국 자살이라는 사회 현상도 열악한 노동 현실과 무관할 수가 없죠.

노동자들 대부분은 사는 게 너무 바쁘고 고단하다보니 인간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나 기본적인 행복들을 잊고 살아요. 때문에 싸워서 당당히 얻어야 겠다는 생각조차도 하기 힘든 편입니다.

그간 일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사람을 모으는 일이었어요. 제각기 하루 하루를 살아 가는 것 만으로도 벅찬 노동자들을 모으고 의식화 교육을 시키는 일이 쉽지 만은 않았죠. 더군다나 일하시는 산업 현장이 노동조합 조차 만들기 힘든 곳이 대부분이거든요.

80년대 중반엔 경제가 조금 나아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했지만 제가 십 년을 일해도 아직까지 노동자의 환경이 그리 달라진 것이 없어요. 아니, 오히려 요즘은 경제 불황으로 늘어난 비정규직 노동자들부터 시작해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고 있는 실정이죠."

a

ⓒ 김진석

노동 환경이 하루가 다르게 열악해 지며 경제 불황으로 힘없는 서민이 시름을 앓습니다. 동시에 수녀님 역시 만나야 할 사람과 해야 할 일은 한없이 늘어가지만 결코 버릴수 없는 신념과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복음' 이라고 생각해요. 제 역할은 기본이 되는 낮은 곳에서 복음을 믿고 실천하는 일이죠. 우리가 80년대의 민주와 운동을 거쳐 오늘이 있는 것처럼 지금 저와 함께 하는 노동자 분들의 작은 몸부림이 반드시 더 나은 삶의 환경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거라 믿어요.

지금 당장은 변하는 것이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우리들의 부단한 몸짓이 내일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요?"

a

ⓒ 김진석

수녀님은 우리 나라가 낮은 것, 기본이 되는 작은 것의 소중함을 잃지 않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사라져가는 '가정'의 중요함을 연신 강조하는 수녀님은 공동선을 위해 '옳음'을 믿고 실천하는 것이 종교인의 역할이라고 합니다.

온갖 혼돈이 난무하는 무법 천지의 사회 속, 저마다 남보다는 개인의 이익을 쫓아 쉼없이 달리기도 바쁜 세상에서 수녀님은 사람들이 본이 아니게 잃어버린 '기본'을 사람들에게 다시 되돌려 주려고 합니다.

a

ⓒ 김진석

수녀님은 오늘도 사회의 기본이 되는 노동자들에게 그들 존재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기 위해 아침 공기를 가르며 힘찬 발걸음을 내딛습니다.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당연한 행복과 권리를 노동자들에게 되찾아 주기 위해, 노동자들의 고된 땀방울을 헛되게 하지 않기 위해, 산업의 근간이 되는 값진 노동의 소중함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수녀님의 발걸음이 분주해 집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하루가 지옥" 주차장에 갇힌 주택 2채, 아직도 '우째 이런일이' "하루가 지옥" 주차장에 갇힌 주택 2채, 아직도 '우째 이런일이'
  2. 2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3. 3 체코 대통령, 윤 대통령 앞에서 "최종계약서 체결 전엔 확실한 게 없다" 체코 대통령, 윤 대통령 앞에서 "최종계약서 체결 전엔 확실한 게 없다"
  4. 4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5. 5 "윤 정권 퇴진" 강우일 황석영 등 1500명 시국선언... 언론재단, 돌연 대관 취소 "윤 정권 퇴진" 강우일 황석영 등 1500명 시국선언... 언론재단, 돌연 대관 취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