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결같은 옥빛바다 누가 다 삼켜 버렸을까

아직도 중문해수욕장에는 여름이 남아 있다

등록 2003.09.16 10:52수정 2003.09.16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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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바다엔 아직 여름이 남아 있었다. 지난 여름 불야성을 이뤘던 타가 남은 재. 모래 위의 발자국. 누군가 정성스럽게 쌓아 올린 모래성.

a 쪽빛바다 어디가고 잿빛 바다가 반기는가?

쪽빛바다 어디가고 잿빛 바다가 반기는가? ⓒ 김강임

그러나 푸른 물결 춤추던 옥빛 바다는 어디로 갔을까? 잿빛 바다는 파도를 타고 밀려왔다. 하얗게 이는 물거품이 태풍으로 상처받은 백사장까지 몰려든다.


활처럼 굽은 긴 백사장과 흑·백·적·회색 등의 네 가지색을 띤 '진모살'이라는 모래로 유명한 중문해수욕장. 태풍은 바다마저 빼앗아 갔다.

a 모래성을 쌓는 아이는 가는 여름이 아쉽다.

모래성을 쌓는 아이는 가는 여름이 아쉽다. ⓒ 김강임

서귀포 70경의 한 곳으로 제일 먼저 달려간 중문해수욕장은 쪽빛 바다와 병풍을 두른 듯한 바위 풍광이 너무 아름다워서 '님'이 오시면 함께 가려고 여름내 아껴 두었던 곳이다. 계절은 바뀌었건만, '님'은 오시지 않았고. 그 아름다운 바다는 태풍의 그림자만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 세상에 이럴 수가?"

바다 위에 둥둥 떠다니는 미역들. 백사장 위에 어지럽게 건져진 오물들. 수평선 끝까지 온통 잿빛으로 변한 바다를 바라보노라니 가슴이 시꺼멓게 타 들어가는 것 같았다.

a 신발의 주인은 누구일까?

신발의 주인은 누구일까? ⓒ 김강임

파도를 잡으려는 어린이는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모래성을 쌓는 어린이도 지난 여름이 마냥 아쉬운가 보다. 이들이 '매미'의 아픔을 어찌 알겠는가. 그냥 둘이서 마주 앉아 두꺼비집을 짓느라 정신이 없다.


가지런히 벗어놓은 신발의 주인은 누굴까? 그 신발의 발자국을 따라 쫓아가니 바다를 부르는 아이는 그저 즐겁기만 하다. 파도에 떠 밀려온 미역이 모래 위에 쌓여 있다.

a 바다를 부르는 아이는 태풍을 알까?

바다를 부르는 아이는 태풍을 알까? ⓒ 김강임

여느 때 같으면 아름다운 모래가 가을 햇빛에 반짝여 눈이 부셔야 할 계절에. 모래 위를 맨발로 걸어볼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백사장 한 켠에는 많은 사람들이 남기고 떠난 추억의 흔적이 아직 남아 있었다. 누군가 힘을 모아 쌓아 올린 모래성이 용케도 태풍에 잘 견뎌내고 있었다. 아니 태풍이 너무 성급히 달아나는 바람에 모래위의 집 한 채를 그냥 남기고 떠났나 보다.

a 태풍은 모래성 하나만을 남겨 놓고 떠났다.

태풍은 모래성 하나만을 남겨 놓고 떠났다. ⓒ 김강임

여름내내 불야성을 이뤘을 타다 남은 재. 밤바다를 활활 타올랐을 추억과 낭만은 다 어디가고 이들이 남기고 떠난 흔적은 아픔으로 남아 있는지. 학창시절 친구들과 바닷가에서 캠프를 떠났던 기억이 새롭다. 기타를 치며, 손뼉을 치고 둥글게 모여 앉아 여름을 달궜던 추억을 생각하기엔 너무 씁쓸하다.

그러나 아직 못다한 얘기를 가슴에 안고 늦게 떠나온 사람도 있다. 얼마나 지난 여름이 아쉬웠을까? 햇빛도 없건만, 이들에게 파라솔은 그저 낭만이다. 파라솔에 몸을 감추고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 사람들. 술잔을 기울이며 잠시 바다 건너 전설을 이야기한다.

a 태풍에 떠밀려 온 미역

태풍에 떠밀려 온 미역 ⓒ 김강임

무얼 찾고 있는 걸까? 소라 고동도 모두 파도가 삼켜 버렸을 텐데. 바다 속에 무엇이 남아 있을까? 바지를 걷어 올리고 첨벙대며 바다로 들어가는 이의 마음을 알 것 같다. 그냥 바닷물 속에 발이라도 한번 담가보고 싶은 아쉬움일 게다.

a 밤 바다를 밝혔을 타다 남은 재

밤 바다를 밝혔을 타다 남은 재 ⓒ 김강임

그러나 이들도 계속해서 회색빛 바다만 바라본다. 아마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바다 끝에서 보트를 타고 신나게 달려오는 사람에게 물어 봐야겠다. 바다 건너 저쪽 세상에는 모두가 무사 한지.

철 지난 바닷가에서 엄마는 아이에게 시를 읊어 주고 있었다. 엄마의 아이에게 아름다운 바다를 보여 주지 못함이 아쉬운가 보다. 얼마나 바다가 보고 싶었으면 태풍이 지난 뒤 숨가쁘게 달려 왔을까?

a 햇빛도 없건만 파라솔은 낭만이다.

햇빛도 없건만 파라솔은 낭만이다. ⓒ 김강임

중문해수욕장은 제주도 특유의 검은 현무암이 조화를 이룬 풍광이 아름다워서 영화나 드라마의 촬영지로도 자주 이용되었다. 특히 오른쪽에 병풍처럼 둘러쳐진 해안절벽에는 길이 15m 가량의 천연동굴이 더욱 운치를 자아낸다.

또한 중문해수욕장은 여름이면 파라세일링, 수상스키, 윈드서핑 등으로 수놓았던 추억의 바다였다. 더욱이 세계인이 극찬하는 4계절 휴양관광지로 경관적·생태적·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은 '아시아의 진주'로 소문이 나 청정해수욕장으로 인정을 받았다.

a 엄마는 아이에게 시를 읊어 준다.

엄마는 아이에게 시를 읊어 준다. ⓒ 김강임

중문해수욕장은 서귀포 70경의 하나로 중문관광단지의 끄트머리에 자리잡고 있다. 주변 관광지로는 천제연폭포, 여미지식물원, 테디베어박물관, 쉬리의언덕(신라호텔), 퍼시픽랜드, 대유수렵장, 중문민속박물관, 대포동 지삿개(주상절리해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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