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돋아나는 새싹에서 보는 희망이야기

등록 2003.09.24 16:33수정 2003.09.24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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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배롱나무

배롱나무 ⓒ 김민수

새싹은 희망입니다.
여리디 여린 새싹은 희망입니다.
그들이 여리기 때문이 아니라 그 연약함 속에 들어 있는 것으로 인해 희망을 얻습니다.
새싹은 믿음입니다.
연하디 연한 새싹은 믿음입니다.
그들이 간직한 아름다움을 미리 보게 함으로 그들은 믿음입니다.


태풍 매미의 상처를 치유해 가는 지금 태풍에 상했던 자연들도 스스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많던 꽃들과 이파리를 전부 잃었던 배롱나무의 가지마다에 새록새록 새순이 돋아나고 있습니다.

새싹을 내는 계절이 아니면 어떻습니까?
꽃을 피우지 못한들 어떻습니까?
아직도 겨울이 먼데 앙상한 나뭇가지로 겨울을 맞이하기는 너무 황량하고 추울지도 모르니까요. 어차피 겨울이 오면 훌훌 벗어버릴 나뭇잎이지만 그래도 겨울이 오기 전에 벗어버릴 옷이라도 있어야 할 것 같은가 봅니다.

나무는 겨울이 되면 옷을 훌훌 벗어버리고 몸 속에 있던 물기도 최소한만 남겨두고 비워버립니다. 우리네 삶의 방식과는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고난의 때가 되면 오히려 움추리게 되고 이런저런 준비를 하기 마련인데 오히려 있는 것조차 놓아버림으로 인해서 겨울이라는 고난의 기간을 지혜롭게 이겨나는 나무들 보면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됩니다. 나무들에게는 놓아버리는 것, 비워버리는 것이 준비인 셈이죠.

a 배나무

배나무 ⓒ 김민수

배롱나무만 새싹을 낸 것이 아니라 배나무도 새싹을 냈습니다.
지난해에는 제법 직접 따먹는 배 맛이 이런 것이구나 보여주었는데 올해는 단 한 개도 남질 않았습니다. 단 한 개도...

조금은 섭섭하더군요. 그래도 올 해 배를 익히느라 수고하지 않았으니 내면에는 올해보다는 좀더 풍성해 질 것을 기대해 봅니다.

앙상하기만 하던 가지가 흉해서 가지치기를 조금 해줄까 생각했는데 그 앙상하던 가지마다에서 새순이 돋아납니다. 새순이 돋아나는 모습이 아주 예쁘더군요.


새싹이 주는 매력은 참으로 무궁무진합니다. 일단 색이 곱고, 연약함이 주는 애잔함같은 것도 있고, 새싹에 들어있는 희망같은 것도 보게 되니 보고 또 봐도 실증이 나질 않습니다.

a 배꽃

배꽃 ⓒ 김민수

그런데 꽃까지 피웠으니 얼마나 예쁜지 모릅니다. 마치 가을 속에 들어있는 봄을 보는 듯합니다. 봄에나 볼 수 있던 진풍경을 가을에 보여주는 모습도 색다르고,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해도 예쁘게만 느껴집니다.


태풍이 지나간 자리, 그 앙상한 가지에서 새싹을 내고, 꽃을 피우며 '나 여기 살아있어!' 소리를 지르듯 피어난 배꽃이 주는 소리는 희망의 메아리입니다.

이 산 저 산에 그 희망의 메아리가 울려 퍼지면서 서로에게 화답을 하는 듯 해서 귀를 기울여 보지만 아직 세상의 욕심에 물들어 있기 때문인지 그 소리를 들을 수가 없네요.

a 토란

토란 ⓒ 김민수

토란대만 베어 내고 뿌리부분을 남겨두었는데 그 곳에서 또다시 토란잎이 올라옵니다.
'아, 참 앙증맞다!'
작은 것이 주는 아름다움, 토란잎이 가장 예쁠 때라고 생각합니다.

풀울 깍아 퇴비를 만들 요량으로 모아둔 그 곳을 비집고 올라온 토란이파리 하나. 희망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닌지요?

아마도 그가 뿌리를 내린 곳은 깜깜하고, 퇴비를 만들기 위해 쌓아둔 풀들로 후끈하게 달아올라 무더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더 힘을 내서 하늘로 하늘로 그 작은 이파리를 내밀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a 알타리무우

알타리무우 ⓒ 김민수

태풍이 지나간 텃밭의 한 켠을 비워두는 것이 흉해서 지난 장날 알타리무 씨앗을 뿌렸습니다.

"아줌마, 이건 뿌리면 얼마 만에 새싹이 나와요?"
"한 사흘 걸릴거외다."
"비가 안 와도요?"
"비가 안 와도 사흘이면 새싹을 볼 수 있을 거외다."

정말 그렇더군요. 지난 20일 장날에 사다 오후에 뿌린 것인데 오늘이 24일이니 거의 정확하게 사흘만에 새순이 돋아난 것이죠.

이렇게 저렇게 제 주변에는 태풍이 지난 후 새싹을 내는 것들이 눈에 많이 보입니다. 농부들도 부지런히 땀을 흘려서 밭마다 푸른빛을 찾아가기도 하고, 집집마다 지붕이며 담장이며 새롭게 단장을 하고 있습니다.

힘들다고 포기할 수 없는 일이죠. 그래도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네 사는 모습이지요. 그 몸짓에 힘을 더해 주기 위해 가을 새싹들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응원을 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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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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