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 아홉의 절망을 안고 부른 노래들

<음악이야기>

등록 2003.09.30 11:44수정 2003.10.14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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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Viva La Tristeza ! (비바 라 뜨리스떼사) 영화 <그녀에게>를 구상하면서 들은 곡들- <뻬드로 알모도바르>

난 영화를 구상할 때, 보통 음악을 듣지 않는다.(음악은 내가 집중하고 있는 글을 방해하는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나는 조용한 가운데서 작업하기를 좋아 하지만 때로 깊은 고독이 밀려 올 때는 음악과 함께 하기도 한다.


그런 날에는 수천 번도 더 책상에서 일어나 정말 원하는 음악을 찾을 때까지 수없이 음악을 바꾸곤 한다. 주위를 산만하지 않게 하는 내 마음에 쏙 드는 곡을 찾으면 그제야 곧 작업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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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승

'비바 라 뜨리스떼사'는 영화 <그녀에게>의 대본을 읽고 나서 이 음악들을 듣게 된다면 영화와 음악이 하나로 통하고 있음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음반을 "비밀이 가득한 제2의 <그녀에게> 음반"이라 말하고 싶다.

'비바 라 뜨리스떼사'에는 눈물, 약한 감정, 고독, 아픈 기억을 갖고 있는 자신과의 홀로 서기, 우울함이 매저키즘이나 슬픔에 대한 너그러움 없이 정당화되어 표현되고 있다.

이 음반의 곡들은 내 안에 있는, 깊고, 더 이상은 아프지 않은 감정을 다시 유발시킨다. 모든 곡들이 서로 너무나 다양 하지만, 나는 이 곡들이 서로 닮은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감정의 분출인 La Llorona가 이를 증명한다. 이 음반의 모든 음악들은 나름대로 자신만의 매력을 가지고 있는 주옥같은 곡들이다.)

이 음반에서 Nicolette와 Nina Simone의 등장은 놀라울 것이다. 그들의 곡은 전반부 곡-Jimmy Scott은 제약이 없는 노래를 재창조함으로써 'Nothing Compares to U'(프린스의 원곡)를 그녀만의 새로운 스타일로 만들어 내었기에 가치가 있다. 또한, 미국인 Djivan Gasparian과 캐나다인 Michael Brook이 'Dark Soul'에서 밝은 슬픔을 노래한 점은 주목할만 하다-들이 자아내는 눈물을 절제시킨다.


Nicollette는 현대의 '빌리 할리데이'이며, 눈물의 최고점을 표현하기 위해 이 음반에 존재해야 하며, Nina Simone은 그녀 음악의 최고 버전이 수록되어 있다. Gregory Isaacs의 'The House of Rising Sun'은 해맑은 날에 열린 창문 사이로 빛이 들어오는 듯한 느낌을 선사한다.

'베니그노'가 4년 동안 혼수 상태에 빠진 '알리시아'를 간호하면서, 잠들어 누워있는 그녀를 위해 연주한다면, 이 곡들을 연주할 것 같다. 모든 곡들은 슬픔과 기쁨으로 가득 찬 우리의 마음에 자장가와도 같은 음악들이다.



이것은 '뻬드로 알모도바르'가 '비바 라 뜨리스떼사'라고 이름 붙인 음반 속에 적어 넣은 내용이다.

이 음반은 그의 영화에 애정을 보내준 사람들에 대한 배려, 또는 영화 제작과정 속에서 느꼈던 생각과 음악들에 대한 작은 보고서 그리고 또 하나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일 수도 있을 것이다.

눈에 띄는 명곡 몇이 있다. 특히 Albert Pla(알베르 쁠라)의 Qualsevol nit pot sortir el sol(햇살은 어디에 있는가- 의 뜻으로 생각된다)은 듣는 사람의 감성을 흔드는 매력과, 슬픔을 넘어 승화된 마음의 표현이 지극히 아름답다.

Chavela Vargas(챠벨라 바르가스)의 La llorona(라 요로나: 초상집 등의 장소에서 돈을 받고 울어 주는 여자)는 제목만으로도 충분히 많은 생각을 하게 하지만 "나는 거짓으로 우는 여자" 등의 가사를 생각해 볼 때 너무도 드라마틱하다. 세상의 어느 가수라도 가창력뿐만이 아니라 연기력까지 갖지 않았다면, 감히 불러보기 어려울 것이다.

Kepa Junquera(께빠 훈께라)의 'Maitia num Zira'는 '바스크' 언어의, 밝고 순수한 노래, 그들은 고유의 언어와 혈통을 갖고 있지만, 지상에 몇 되지 않는 나라가 없는 민족이다. 어려운 그들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한다 해도 음악은 순박한 감성을 충분히 전달한다. 음악을 언어라 할 이유는 거기에 있을 것이다.

아흔 아홉의 절망을 안고 부르는 이 노래들, 그리고 거기 있는 하나의 희망과 사랑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들에게도 돌아올 몫이 아닐지. 그래서 '알모도바르'는 그것을 적극적으로 나누려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드문 경우의 OST를 들어보며 생각해본다.


<2> MAL WALDRON <말 월드런>

세상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최고의 재즈피아니스트, '말 월드런'. 그가 남긴 말기의 녹음들 중에는 그의 이름과 같은 제목의 음반이 있다. 그의 별세 이후, 2003년 출반되었고 '히데하루 이토'라는 일본의 프로듀서가 기획한 음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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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승

재즈는 미국의 것이라 사람들은 말하지만, 그의 손을 탁본한 사진을 담은 이 음반은 일본 재즈의 산물이다. 그가 일본에서 남긴 마지막 녹음들은, 그의 연주를 깊이 존경하고 그의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 일본에는 많다는 사실에 대한 증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음반은 우리의 음악 문화 환경을 생각해 보게 하는 일종의 거울이 될 것이다.

유럽에 살면서도 30년대 미국의 스윙에 전혀 뒤지지 않은 재즈를 했다던 '기타리스트, 쟝고 라인하르트'에게 바쳐진 그 유명한 'Django'를 필두로 해서 '빌리 할리데이'가 세상을 떠난 후 만들어 졌다던, 'Left Alone(홀로 남았네)'에 이르기까지 최선의 연주로 채워져 있다. 그렇다고 해서 화려한 연주기술이나 특별한 음질을 기대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의 말년의 연주는 물이 흐르듯 자연스럽고, 단 한 순간도 무리가 없으며, 공격성(Attack)의 분위기가 없다. 방금 깎아 놓은 연필처럼 예리한 '키스 재릿'의 연주와도 좋은 비교가 될 것이다.

기회가 된다면 '월드런'의 음악과 정면으로 마주해 보기를. 그래서 그의 평화를 알게 되기를. 그러다 어느 순간 눈물을 글썽이며 "월드런이여 당신은 위대한 연주가입니다"라고 고백하게 될 당신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기를 기대한다.

일본의 음악을 완전개방 한다는 소식을 우리는 알고 있다. 단순히 그들이 우리보다 부유한 나라인 이유 등으로 그들의 음악을 판단하거나 하는 것은 위험하다. 게다가 진정으로 걱정할 일은 일본의 음악이 아닐 것이다. 걱정의 대상은 바로 우리 자신과 우리들의 음악문화 이기 때문이다.

"음악은 정보가 아니다"라는 말과 "음악은 지식도 아니다"라는 말도 더불어 남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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