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깻잎, 상추, 속노란 작은 배추를 골고루 얹고 위에 고기 올리고 된장 발라 한 잎 쏘옥김규환
이것이 진짜 '삼겹살 맛있게 먹는 방법'이다
돼지고기 45.1kg, 닭고기 24.3kg, 쇠고기 19.5kg. 연간 국민 1인당 주요 고기 소비량이다. 단연 1위의 동물성 단백질 공급원은 돼지고기다.
어릴 적엔 돼지고기 한 근 사오면 여덟 식구가 세 번 정도 나눠서 먹었다. 훌렁훌렁한 김칫국에 잘게 썰어 태평양(太平洋)에 고기 몇 점 떠있는 듯이 끓여 먹는 게 대부분이었다. 비계도 결코 버리는 일이 없었다. 그렇게 먹는 돼지고기가 얼마나 맛있었겠는가?
어쩌다 고기 한 번 많이 먹게 되는 경우는 우리집에서 돼지 잡는 날이다. 내장을 손질하여 직접 순대를 만들고, 다리 하나 푹 삶아서 수육(獸肉)으로 즐겼다. 거기에 머리를 넣으면 푸짐하기 이를 데 없다. 동네 잔치가 벌어진다.
그 땐 누렁이도 쫄래쫄래 따라 온다. 뼈 하나 얻어먹자고. 기웃거리다 고깃 덩어리에만 입을 대지 않으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 놈의 돼지라는 영특한 동물이 동족상잔(同族相殘), 근족불식(近族不食)의 불문율을 철저히 지켰기 때문이다. 얼마나 기특한지 누가 돼지 잡는다는 말을 입 밖에 냈다가는 며칠이고 식음을 전폐한다.
한편, 먹을 게 늘 부족하고 대가족 시스템이라 고기를 구워서 먹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우리 집안 내력이 그래서인지 삼겹살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스무 살이 넘어서야 맛 들이기 시작한 삼겹살이었으니 꽤나 늦은 편이다.
통상 서민이 삼겹살, 불고기 등을 구워먹는 방식을 즐긴 건 80년대 중반 무렵이다. 쇠고기는 더 귀했다.
▲직접 길러 밭에서 뜯은 푸성귀. 배추, 무청, 깻잎, 상추, 고추, 갓, 고구마까지김규환
껍질과 껍데기 그리고 삼겹살
삼겹살은 두 부위에서 나온다. 일반적인 삼겹살은 갈비 대 근처 양쪽에 붙은 살로 앞다리 쪽에 몇 근 있다. 거기에서 나온 것은 껍질과 뱀이 물어도 이빨이 들어가지 않는 두툼한 비계를 벗겨내 시중에 유통되고 있다.
| | | ‘껍질’과 ‘껍데기’에 대하여 | | | 한글날이 국경일이 되길 기원하며 | | | | 껍질과 껍데기를 혼동하는 사람이 많다. 뭐 삼겹살 하나 먹는데 이런 것까지 알아야 하는가 할 수도 있으나 이왕 생각난 김에 한 번 돌아보자.
'돼지 껍데기'가 맞을까 '돼지 껍질'이 맞을까? 둘 다 맞을 수도 둘 다 틀릴 수도 있다. 왜냐하면 껍질은 야들야들 부드러운 느낌이 있는 겉표면을 이르는데 대개 고기의 살 바깥 부분인 사람의 피부에 해당하는 곳은 '껍질'이다.
반면 조개나 밤, 호두, 굴 등 갑각류와 견과(堅果)의 겉은 껍데기로 쓴다. 그러니 "조개 껍질 묶어 그녀에 목에 걸면~"에 나오는 조개 껍질은 마땅히 조개껍데기(조가비)로 고쳐져야 하나 운율과 시적 표현상 그렇게 쓴 것이니 가만 두어도 상관없다. 하지만 바른 말글살이에서는 고쳐나가는 습관을 들이자.
말을 맺자면 돼지를 잡았을 때는 껍질이던 것이 껍데기로 둔갑하는 것이 있다. 바로 껍질만 따로 벗겨 시장 통 머리고기 집에서 양념 넣고 딱딱하게 튀기듯 굽 듯한 것은 껍데기로 부르는 게 맞다. 돼지 껍데기 집에 있는 것은 그걸로 맞는 이름을 얻었다.
사과, 배, 오이, 감의 표면 상태는 익히지도 굽지도 않아 여전히 부드러워 칼이나 가위로 쉽게 자를 수 있으니 껍질이다. 딱딱해서 도저히 도구를 사용치 않고서는 해 볼 도리가 없는 게, 가재, 조개, 거북이 등짝은 껍데기인 것이다. / 김규환 | | | | |
지방질-살코기-지방질 순서로 배치된 세 겹 또는 두 겹 고기를 '삼겹살'이라 한다. 홀수를 좋아하는 백성의 가치관의 발로라고나 할까. 여기에 두 겹을 덧붙이면 '오겹살'이 된다.
뭐 대단한 것이 되는 양 5겹살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드는 수고를 했지만 실은 별 거 아니다. 껍질을 제거하지 않아 지방질(껍질)-살코기(껍질 바로 안 층)-지방질-살코기-지방질 순서로 배치되어 있다.
삼남(三南) 지방에선 보통의 삼겹살에 살코기가 너무 많아 구우면 딱딱해지므로 부드러운 층인 껍질과 비계가 섞인 고기를 예전 그대로 먹어왔다. 구워 놓으면 일반 삼겹살 맛과 비교할 수 없다.
다음으로 내가 일반 삼겹살보다 더 좋아하는 어깨 위부터 머리 아래 부분까지의 '목 삼겹살'이 있다. 더 쫄깃하고 부드럽다.
기껏 120kg짜리 한 마리를 잡아도 껍질을 벗기고 비계를 도려내면 사실 두 부위에서 나오는 삼겹살은 도합 10근(1근 600g 기준) 정도밖에 안 되니 삼겹살과 갈비 등 인기 부위에 앞다리 고기 빼고 나머지는 천덕꾸러기 취급을 당한다.
여전히 시골에서도 한 마리를 잡으면 네 다리와 갈비, 목살로 나누는데 뒷다리는 가져가려 하는 사람이 없어 고기 맛 모르는 살코기 좋아하는 도시민에게 은근슬쩍 제값 받고 줘 넘겨버린다. 살코기를 많이 주니 외려 주인은 사랑 받아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