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벽에 새겨진 '서불과차'김강임
우선 정방폭포 절벽에서 또 하나의 전설을 만났다. '서불과차(徐不過此)'라고 쓰여진 석벽 앞에서 발길을 멈췄다. 이곳은 옛날 중국 진시황 때 서불이 진시황의 명을 받들어 삼신산(금강산, 지리산, 영주산) 중의 하나인 영주산(한라산)으로 불로초를 캐러 왔다가 머무른 자리라 한다. '서불'은 불로초를 구하지 못하고 신선의 열매라는 '한라산 시로미'를 얻은 후 서쪽(일본)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서불은 정방폭포에 들렸다가 아름다움에 흠뻑 취해 석벽에 '서불이 이곳을 지나갔다'는 뜻으로 '서불과차(徐不過此)'라는 네 글자를 새겼다고 한다. '서불과지(徐不過之'라 말하기도 하지만 실제 이 글은 흔적을 찾지는 못했고, 아마 없을지도 모르는데 그냥 전해오는 전설일 뿐이었다.
그러나 서귀포시가 1개월 전 정방폭포 옆 석벽에 '서불과차(徐不過此)' 라는 글을 새겨 많은 관광객들이 전설과 현실 속 기행에서 머무르고 있다. 더욱이 서귀포(西歸浦)라는 지명이 '서불이 서쪽으로 돌아갔다'고 하는데서 생겨났다고 하니 전설과 현실의 존재 차이에서 의문을 제기하는 순간이다.
특히 '徐不過之'라는 마애각은 해방 이후까지도 남아 있었으나 정방폭포 위에 전분공장이 생겨 폐수가 이곳으로 흐르기 시작한 뒤부터는 볼 수 없게 되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또 전설이지만 이들 일행이 떠날 때 동남(童男) 세 사람이 낙오되어 제주도에 남게 되었는데 이들이 탐라를 건국하는 시조가 되었다 하니 전설의 의구심 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