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게 먹은 고구마 오늘 따라 또 먹고 싶다

[어릴적 허기를 달래주던 먹을거리 14]싱건지에 삶은 고구마

등록 2003.10.25 18:47수정 2003.10.25 19:41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이렇게 부르트도록 삶아진 게 제일 맛있습니다.
이렇게 부르트도록 삶아진 게 제일 맛있습니다.김규환
구황작물 고구마 건강에도 좋아


초여름 6월 하지 무렵에 캐는 동글동글 못생긴 것이 감자인데 북쪽에서 온 감자라 해서 '북감자', 하지 무렵 캐는 까닭에 '하지감자'라 한다. 이와 함께 고구마를 감자라고 하는 지역이 더러 있다.

콜럼부스를 따라 물 건너 일본에서 온 길쭉하고 붉은 빛이 도는 또 하나의 뿌리를 고구마라고 하는데 '당감자', 그냥 '감자'라고도 불렀다. 고구마는 감저(甘藷)·조저(趙藷)·남감저(南甘藷:호남지방에서는 ‘감자’를 ‘북감저’라고도 하는데, ‘남감저’에 대비해 부르는 이름인 듯하다)라고도 한다.

중앙아메리카 열대지방이 원산지로 18세기 중반 통신사 조엄의 눈에 띄어 들어왔다. 하지만 초기 150여 년 동안은 재배법을 몰라 애를 태워야 했다. 거듭 실패한 끝에 실학자들의 손에 의해 널리 보급되었다.

고구마는 가뭄이나 장마에 시달리지 않고 걸지 않은 땅에서도 잘 자란다. 때문에 조선 후기 이후 중·북부지방에서는 감자가, 남부지방에서는 고구마가 가난한 사람의 배고픔을 달래주었다.

밭에서 캔 고구마
밭에서 캔 고구마김규환
줄기는 나물로 무쳐 먹고, 뿌리는 그대로 쪄서 삶아 먹거나 전·튀김·엿·맛탕 등으로 조리해 먹는다. 또 알코올 제조 원료로도 많이 쓰인다.


품종과 토질에 따라 밤고구마와 물고구마로 구분하는데 밤고구마는 익산을 비롯해서 여주·무안 등이, 물고구마는 전남 해남이 유명하다.

물고구마는 겨울에 얼렸다가 찌거나 구우면 엿처럼 끈끈하고 단 맛이 난다. 생육기간 중의 평균 온도가 섭씨 22도 이상이고 서리가 없는 날이 175일 이상인 곳에서 재배되는데 남부 섬지방에서도 많이 재배하고 있다.


탄수화물과 칼륨 성분이 많고 비타민 A·B·C가 고루 함유돼 있는 알칼리성 식품으로 선홍빛일수록 좋다. 미국 뉴저지주 남성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폐암을 예방하는 식품으로 으뜸이라는 보고가 있으며 통변개선과 혈중 콜레스테롤 감소, 해열, 변비 개선, 체력증진, 혈압강하 작용을 한다.

고구마 삶을 때 콩도 같이 삶아 먹으면 더 맛있습니다.
고구마 삶을 때 콩도 같이 삶아 먹으면 더 맛있습니다.김규환
동치미 신김치에 질리게 먹었지만 오늘 또 고구마 먹고 싶다

예전 방안에는 고구마를 보관했던 짚으로 짠 뒤주가 집집마다 있었다. 수수깡으로 둘러 보온과 보습을 강화했다. 밥 할 때마다 서너 개 같이 넣어 출출할 때 먹는 것은 예삿일이었다. 뿐인가 점심 한끼는 고구마로 때우는 일이 잦았다.

삶을 때는 바닥에 쇠그릇을 하나 엎고 고구마를 앉힌다. 물은 고구마가 잠길락말락 할 정도만 붓고 불을 한번 세게 땠다가 김이 풀풀 나면 줄여주면 되니 누구나 할 수 있는 간단한 방식이다.

잠시 뜸을 들인 뒤 솥뚜껑을 열어 젓가락으로 '푸욱' 찔러 '쏘옥' 들어가면 익은 것이고 들어가지 않으면 물이 졸아들 때까지 조금 더 불을 때면 된다. 고구마가 익어 가면 달콤한 향기가 정지에 가득 퍼진다.

이어 물이 '봍아'(졸아들어 거의 마른 상태를 일컫는 말)감에 따라 고구마 자체에서 물기와 당분이 빠지면서 약간 탄 냄새가 난다. 이 때 '복개'(밥그릇의 뚜껑)나 국그릇이 긴요한 구실을 한다. 물을 머금고 있다가 서서히 흘러내려 고구마가 높은 열에 타지 않고 맛있게 익게 한다. 복개가 없는 곳은 약간씩 타면서 눌러 붙어 구운 맛을 볼 수 있다.

잘라서 밥에 삶은 고구마
잘라서 밥에 삶은 고구마김규환
삶은 고구마는 밤고구마보다 물고구마가 더 맛있다. 한두 개 먹을 때는 밤고구마도 괜찮지만 주먹보다 큰 고구마를 밥 대신 예닐곱 개 먹을 때는 팍팍해서 침이 마른다. 밤고구마는 밥 할 때 부삭(아궁이의 전라도 사투리) 잔불에 아이들 숫자에 맞춰 하나씩 먹게 굽거나 추운 겨울 화로에 적사(석쇠의 전라도 사투리)를 올려 납작하고 두툼하게 잘라 뒤집어가며 구워 먹는 맛이 일품이다.

물고구마는 잔뜩 머금고 있는 물기가 입안을 적셔 주어 여러 개 먹기에 좋다. 또한 단맛도 훨씬 강하다. 찐득찐득한 조청 맛이요, 꿀맛이다.

달걀을 대여섯 개 먹으면 입안에서 닭똥 냄새가 나듯 고구마도 서너 개 이상 먹으면 달달한 침과 섞여 고구마 특유의 냄새가 난다. 질질 흐르는 물기에 손에 닿으면 진득진득한 성분이 손가락을 떨어지지 않게도 한다.

조금씩 물리기 시작하면 싱건지(동치미) 국물이나 신김치와 함께 먹는 그 맛은 결코 잊을 수 없다. 질리도록 먹었던 고구마. 그게 오늘따라 먹고 싶어진다.

삼겹살 구울 때 고구마를 납작하게 잘라 구워 먹으면 그 맛도 끝내줍니다.
삼겹살 구울 때 고구마를 납작하게 잘라 구워 먹으면 그 맛도 끝내줍니다.김규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이 기자의 최신기사 역시, 가을엔 추어탕이지

AD

AD

AD

인기기사

  1. 1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2. 2 수능 도시락으로 미역국 싸 준 엄마입니다 수능 도시락으로 미역국 싸 준 엄마입니다
  3. 3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경희대 시국선언문 화제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경희대 시국선언문 화제
  4. 4 미국에 투자한 한국기업들 큰일 났다... 윤 정부, 또 망칠 건가 미국에 투자한 한국기업들 큰일 났다... 윤 정부, 또 망칠 건가
  5. 5 의사 아빠가 죽은 딸의 심장에 집착하는 진짜 이유 의사 아빠가 죽은 딸의 심장에 집착하는 진짜 이유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