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243

백악루에 나타난 광견자 (5)

등록 2003.10.27 14:05수정 2003.10.27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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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초(楚) 나라 선왕(宣王)은 위(魏)나라에서 사신으로 왔다가 신하가 된 강을(江乙)에게 물었다.

"위나라를 비롯한 북방 제국이 우리 재상 소해휼(昭奚恤)을 두려워하고 있다는데 그게 사실이오?"


"그렇지 않사옵니다. 그들이 어찌 소해휼 따위를 두려워하겠나이까. 전하, 혹 호가호위란 말을 알고 계시옵니까?"

"모르오."

"하오면 들어 보시오소서. 어느 날 호랑이한테 잡아먹히게 된 여우가 이렇게 말했나이다. "네가 나를 잡아먹으면 너는 나를 모든 짐승의 우두머리로 정하신 천제(天帝)의 명을 어기는 것이 되어 천벌을 받게 된다. 만약 내 말을 못 믿겠다면 당장 내 뒤를 따라와 보라구. 나를 보고 달아나지 않는 짐승은 단 한 마리도 없을 테니까." 그래서 호랑이는 여우를 따라가 보았더니 과연 여우의 말대로 만나는 짐승마다 혼비백산(魂飛魄散)하여 달아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짐승들을 달아나게 한 것은 여우 뒤에 있는 호랑이였는데도 호랑이는 그걸 전혀 깨닫지 못했다고 하옵니다."

"호오! 그래?"

"예, 이 경우도 마찬가지이옵니다. 지금 북방 제국이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소해휼이 아니라 그 배후에 있는 초나라의 군세(軍勢), 즉 전하의 강병(强兵)이옵니다."


이처럼 강을이 소해휼을 폄(貶)하는 이유는 아부로 선왕의 영신( 臣: 간사하고 아첨하는 신하)이 된 강을에게 있어 왕족이자 명재상인 소해휼이 눈엣가시였기 때문이다.

금대준이 선무곡에서 위세를 부릴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뒤에 방조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휘하가 아니었다면 그의 말발은 전혀 먹혀들지 않았을 것이며, 늘 궤변이나 떠벌이는 정신 나간 놈 취급밖에 못 받았을 것이다.


"이 자가 속하에게 정보를 줄 것이 있다 하여 나왔습니다만 당주께서 어쩐 일로 여기까지…?"

"본좌가 자네에게 그걸 대답할 의무가 있는가?"

호인기의 주특기는 누군가를 취조하여 알고자 하는 정보를 캐내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늘 무언가를 묻는 어투이다.

이회옥은 그의 어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여 다소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헉! 아, 아닙니다. 속하가…죄송합니다."

호인기는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얼른 고개를 조아렸다. 마선봉신 이회옥이 누구던가!

현임 당주들 가운데 철기린이 성주가 된 이후에도 당주직을 계속 유지할 유일한 인물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게다가 최근 소문에 의하면 형당주인 빙화의 눈에 들어 어쩌면 그녀의 부군이 될지도 모른다는 소문의 장본인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앞으로도 오랫동안 권력을 쥘 인물이다. 그런 인물에게 잘못 보여 좋을 것은 하나도 없다.

게다가 상명하복이 철저한 무림천자성에서 지금과 같은 경우 치도곤을 내린다 하더라도 찍소리조차 못할 상황이다. 그렇기에 얼른 고개를 조아린 것이다.

한편, 곁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금대준은 이제 겨우 약관을 갓 넘긴 듯한 이회옥을 보며 안광을 빛내고 있었다.

줄이란 질기고 튼튼한 것이 좋은 법이다. 썩은 동아줄을 잡으면 올라가던 낭떠러지에서 떨어질 수도 있지만 질긴 동아줄을 잡으면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엇 하느냐? 어서 당주께 문안 여쭙지 않고?"

"핫! 소, 소인 금대준이 당주님께 문후 여쭙습니다."

"금대준? 들어본 이름인걸…, 혹시 선무곡에서 왔느냐?"

"예! 그, 그렇습니다요."

광견자는 이회옥이 자신을 아는 듯하자 신이라도 났다는 듯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나이로 따지면 자식 뻘도 되지 않건만 하대를 하고 있다는 것도 잊은 채.

"내 일찍이 선무분타 순찰로 재직시 자네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었네."

"아, 그, 그렇습니까? 어떤 말씀을 들으셨는지요?"

"선무곡에 개가 여러 마리 있는데 그 가운데 가장 먼저 때려잡을 개라고 하더군. 하긴 미친개이니 먼저 잡긴 잡아야지."

"예에…?"

"헉!"

금대준과 호인기는 기가 막힌 듯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말이 진짠가? 수하들이 우스개 소리라면서 그런 소릴 하길래 듣긴 들었는데..."

"예에…? 하하하! 하하하하!"

"어흠……!"

호인기는 이회옥이 농담하였다 생각하고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반면 금대준은 자신이 놀림감이 되었다는 것이 기분 나쁘다는 듯 어색한 헛기침만 할 뿐이었다.

"듣자하니 본성에 충성심이 강하다고 들었네. 기특한 일이지. 그나저나 하는 일 없이 본성을 배회한다고 들었는데 어떤가? 우리 철마당에서 일을 배워봄이…?"

"예에……?"

기특하다는 표현은 나이 많은 사람이 어린 사람에게나 사용할 만한 어휘이건만 이회옥은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였다. 금대준에 대해 좋은 감정이 없기 때문이다.

한편, 금대준의 입장에서는 마뜩치 않았으나 어쩌겠는가? 상대는 감히 쳐다볼 수도 없을 만큼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다. 따라서 기분 나쁘다는 내색조차 못한 채 고개만 조아렸다.

"아, 뭐해? 어서 당주님께 고맙다고 인사를 해야지. 철마당에 가면 배울 것이 많이 있을 것이네."

"아아, 처음부터 말을 돌보게 할 수는 없네. 우선은 허드렛일부터 배워야지. 그러다 차츰 차츰……."

"감사합니다. 무엇이든 열심히 하겠습니다. 시켜만 주십시오."

금대준의 허리가 직각으로 꺾이는 순간 이회옥의 입가에는 비릿한 조소(嘲笑)가 베어 물렸다.

'후후! 잘 걸렸다.'

이날 이회옥을 따라 철마당으로 간 금대준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마굿간에 널려있는 말똥을 치우는 일이었다.

세상에 태어난 이후 한 번도 힘든 일을 해 본 적이 없어 힘에 부쳤지만 어쩌겠는가? 당주의 지엄한 명인 것을!

각당의 당주에게는 무림천자성 사람들 가운데 필요한 사람들을 차출해 쓸 권한이 있다. 그것은 외부인이라 할지라도 마찬가지이다. 일단 성 내에 발을 들여놓으면 따라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빼도 박도 못하고 말똥을 치워야했던 것이다. 물론 든든한 줄을 잡아야겠다는 욕심이 먼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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