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나눔으로 풍성해 지는 자연

등록 2003.10.28 07:18수정 2003.10.28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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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시보다는 노래로 더 잘 알려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라는 노랫말의 일부다.

지독한 외로움에 쩔쩔매본 사람은 알게 되지
음~ 알게 되지
그 슬픔에 굴하지 않고 비켜서지 않으며
어느 곁에 반짝이는 꽃눈을 달고
우렁우렁 잎들을 키우는 사람이야말로
짙푸른 숲이 되고 산이 되어 메아리로 남는다는 것을


누가 뭐래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이 모든 외로움 이겨낸 바로 그 사람
누가 뭐래도 그대는 꽃보다 아름다워
노래의 온 길 품고 사는
바로 그대 바로 당신 바로 우리 우린 참사랑


그래, 이 시에서 노래하고 있는 그런 사람이라면 참 아름답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천천히 우리의 삶으로 들어와 보면 '정말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가?'하는 질문을 수도 없이 하게 된다.

a 물매화

물매화 ⓒ 김민수


가을이 깊어지면 온갖 꽃들과 곤충들로 북적대던 들판도 조금은 한적해 지는 법이다. 내년을 기약하면서 꽃잎까지 자취를 감추어 버리고 작은 씨앗들만 남아 가을 햇살에 덜 마른 자신의 몸을 온전히 말린다.
그렇다고 꽃이 없는 것이 아니고, 곤충들이 없는 것이 아니다.

무슨 연유에서 다들 휴식을 취하는 이 때에 비상하고 있는지 모르지만가을꽃과 곤충들로 인해 그들이 있어야 하는 까닭을 생각하게 된다.

밤에 피는 꽃은 밤에 날아다니는 곤충을 위한 꽃이라고 했다. 가을, 그것도 아주 늦은 가을이라 언제 서리가 내릴지 첫 눈이 내릴지 모를 계절에 피어난 꽃들은 늦가을 겨울을 준비하는 곤충들을 위한 것이리라.


아니, 어쩌면 꽃이 있는 한 우리도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곤충들의 '목숨을 건 의리지키기' 일지도 모르겠다.

a 쑥부쟁이

쑥부쟁이 ⓒ 김민수


가난함을 선택함으로 더 풍요해 지고, 느릿느릿 천천히를 선택함으로 더 빨라지는 비결을 자연은 알고 있다. 가난이 빈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느릿느릿 천천히가 게으름이 아니라는 것, 모두가 옳다고 여기는 것에서 벗어나 관조하는 삶이 무관심이 아니라는 것을 자연은 안다.


자연은 인간처럼 풍요롭게 살아가는 법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의 자연됨을 지켜왔다. 자연 중에서 그 자연됨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것은 유일하게 인간이 아닐까 싶다.

인간이 다른 자연이 갖지 못한 것을 소유했지만 그로 인해 더 풍요로운 삶을 살아간다고 누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가? 인간은 이익이 되지 않으면 그것이 아무리 가치 있는 일이라도 하지 않는다. 손해보는 일은 바보들이나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가을에 피는 꽃, 어쩌면 그들은 손해보는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a 자주쓴풀

자주쓴풀 ⓒ 김민수


27일 아침에 읽은 조간신문의 기사 중 하나가 종일 우울한 마음을 갖게 했다.

어느 유수한 제약회사에서 그것도 '생명'이라는 버젓한 이름이 들어간 단체에서 수익성이 없으므로 약품생산을 중단하겠다고 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환자들은 이제 열 배에 달하는 약값을 지불하고 외국제약회사에 의존해야만 할 지경이 되었단다.

한 달에 30만 원 하던 약값이 300만 원이 된다고 하니 나 같은 시골 범부는 그런 병에 걸리면 한 달도 살지 못할 터이다.

우리네 사람들은 이렇게 많은 것을 가지고 있지만 나누지 못함으로 서로를 절망하게 한다.그에 비해 자연은 어떠한가?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들만의 비밀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은 끊임없이 줌으로써 살아가고 있지 않는가?

a 엉겅퀴

엉겅퀴 ⓒ 김민수


나눔으로, 비움으로 풍성해지고 충만해 지는 비결을 자연을 보면서 배우게 된다. 그렇게 끊임없이 우리의 일상에서 자연은 우리에게 다가오는데 우리는 얼마만큼 그 다가섬에 대해서 진지하게 응답하고 있는 것인지, 그런 짓은 부질없는 일이요, 소득도 없는 일이라고 숫자놀음을 하고 있지나 않은지 돌아보게 된다.

자연은 기다린다. 기다리다 누군가 자신을 요구하면 때로는 뿌리까지도 다 내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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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엉겅퀴는 길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꽃이다. 꽃이 예뻐 무심코 다가갔다가는 가시에 찔리게 되고 때로는 그 작은 가시로 인해 붉은 피를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참 재미 있는 것은 이 엉겅퀴가 출혈을 멈추게 하는데 사용됨으로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이다. 피가 '엉겨붙는다'는 의미로 '엉겅퀴'라고 하니 참 그럴 듯한 이름이 아닌가?

꽃 한 송이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작은 통 모양의 꽃들이 무수히 모여서 한 송이 꽃처럼 보이는 것이라고 한다. 그 작은 통마다 꿀을 넣어 두었으니 엉겅퀴에 곤충들이 넋을 잃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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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늦가을인 지금도 엉겅퀴는 기세가 등등하다. 엉겅퀴만 그런 것이 아니라 가을꽃들은 다른 계절의 꽃들보다는 쓸쓸한 느낌을 자아낸다. 그러나 그것이 쓸쓸함으로만 다가오지 않고 풍성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겨울을 미처 준비하지 못한 이들에게 아낌없이 자신을 나누는 모습을 보기 때문이다.

나는 아주 가끔씩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말을 의심할 때가 있다. 그래서 절망할 때가 있다.

성서의 이야기 한 토막.

어리석은 부자가 있었단다. 대풍이 들어 창고에 곡식이 가득 찼으니 이제부터는 자기를 위해서 실컷 즐기며 살아야겠다고 행복에 겨워한다. 그러나 곡식을 창고에 가득 채우고 기뻐하던 그 날밤에 그는 저 세상으로 떠나고 만다.

어쩌면 이 어리석은 부자가 우리 삶의 자화상은 아닐지?

자연을 바라보노라면 누가 누구를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인지 잘 구분이 안될 때가 있다. 그러나 누가 누구를 필요로 하고 있는가 보다 서로를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우리도 서로를 위해 존재할 때 자연처럼 풍성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 때 비로소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시인의 노래에 나오는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을 도처에서 만나게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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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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