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와의 질긴 인연, 이제 그만 끊으렵니다

등록 2003.10.28 17:34수정 2003.10.29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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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디스 이즈 디스
담배. 디스 이즈 디스김규환
대학 가서 처음 손댄 술과 담배


국어를 본격 배우기 시작한 다음부터 나는 담배를 '남초(南草)' 또는 '담바고'라 했다. '시거'나 '토바코'는 왠지 낯설고 발음하기에도 어색했으니 담배, 남초, 담바고라 하는 게 내 말 입맛에 맞았다.

내가 담배를 피기 시작한 때는 스물 한 살 때다. 대학에 입학하고 두 달이 지나 북한강 강촌에 봄살이(MT)를 가면서다. 밤새 술잔을 기울인 여파로 새벽에 해롱대자 뒷산에 땀 빼러 같이 가자던 선배가 문득 권하니 냉큼 받아 뻐끔뻐끔 빨아댔다.

그 한 대에 어질어질하여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질 못하고 주저앉아 있었다. 몽롱한 상태가 지속되어 한 개비를 더 피고 나서야 정신을 차려 걸어 내려왔다. 처음 본 사람은 뒤뚱뒤뚱 걸으니 뭔가에 잔뜩 취한 사람으로 보았을 지도 모른다.

그 날 이후 내 담배 솜씨는 날로 늘어갔다. 한 달 동안 뻐끔 담배를 피다가 목구멍에 좋지 않다는 소리를 접하고 폐 속으로 쑤욱 빨아들이게 되었다. 담배에 대한 적응력은 꽤 괜찮은 편이었다.

술도 학력고사가 끝나고서 배운 것 치고 잘 마시는 편이니 부뚜막에 늦게 올라 간 죄로 모진 끈, 고문을 당하고 있는 내 몸이 불쌍하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아직 그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여직 한번 술이나 담배를 줄이자는 데는 동의했으나 끊는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그러니 벌써 16년 동안이나 피고 있다.

꽁초 못 찾아 안달이던 마음 이제 그만 접습니다.
꽁초 못 찾아 안달이던 마음 이제 그만 접습니다.김규환
어릴 적 담배 피다 불나기 직전에 들킨 사건


그렇다고 나라고 해서 담배를 어릴 적에 피지 않았던 건 아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인 1978년 가을로 기억한다. 꼴을 베어 놓고 친구들과 갖가지 놀이를 하던 어느 날. 여러 놀이를 해보아도 무료하기 짝이 없었다. 직성이 풀리지 않았다. 마땅한 소일거리를 발견하지 못한 벽지 마을 여섯 아이들은 말뚝박기 놀이를 끝으로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된다.

언제고 한번 꼭 빨아 보리라던 다짐을 실천으로 옮기고자 하는 짜릿한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한 아이의 제안으로 땅에 떨어진 꽁초를 줍기 시작했다. 고샅을 쓸고 다니며 담배꽁초를 주워 모아 공책을 찢어 만든 종이에 싸서 돌아왔다. 각자 자신이 피울 담배를 열 개비 정도 담았다.

우리 집 소죽 쑤던 행랑채는 방이 두 개였는데 평소 밤에만 사람이 들어가 잘 뿐 별다른 감시나 출입이 없으므로 안전가옥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신발을 손에 들고 방으로 들어가 문고리를 잡아 당겨 안에서 잠갔다.

꼴청 바로 옆 한 평 반 가량 되는 작은 방에 여섯 명이 함께 들어갔으니 방안이 꽉 찼다. 섬돌 위에는 신발 하나 보이지 않았다. 문 창호지에 일부러 손에 침을 묻혀 구멍을 조그맣게 하나 내서 누가 오나 감시하며 작업에 들어갔다.

그 중 하얀 공책을 골라 화랑, 개나리, 새마을 담배꽁초를 풀어 어른들이 봉초(封草) 말던 대로 담뱃가루를 오복이 모으고 두 손에 올려 오므려서 돌려 만다. 마지막으로 혀로 주르르 침을 발라 붙였다.

하지만 처음부터 잘 되지 않았다. 몇 번의 실패를 거듭하다가 요령을 터득하니 풀리지도 않는다. 더군다나 겉종이만 파르르 타고 말아 난감했던 과정을 극복하게 되었다.

이 간판 만나면 얼마나 반가웠습니까?
이 간판 만나면 얼마나 반가웠습니까?김규환
먼저 만 놈부터 한 대씩 꼬나 물고 피워대기 시작했다. 사각 화랑 통성냥을 확 그어대니 황과 인 냄새가 방안을 덮치듯 했다. 이어 뻐끔뻐끔 양 볼에 힘을 주어 빨아대니 아구지(입의 비속어)가 들숨날숨 들어갔다 나왔다 한다.

입안으로 쓰디쓴 니코틴과 타르가 빨려 들어감에 따라, "캑캑!" "콜록 콜록" "쾍!" 오소리 잡는 소리를 내지른다. 11살 12살 아이들이 막힌 공간에서 멋모르고 연거푸 동시에 피워대니 숨이 탁탁 막혀왔다. 일찍 시작한 아이는 밖에 나가서 말라비틀어진 호박잎과 나뭇잎을 비벼 더 피웠다. 방안으로 기어들어 간 지 얼마나 됐을까? 거진 2시간이 다 될 무렵이었다.

"규환아!"
"…."
"규환아 어딨냐?"
"응. 나 여깄어."
"거기서 뭐해?"
"응~. 아무 것도 안 해, 형."
"빨리 나와봐야 짜식이 뭐한다냐?"
"아무 것도 안 했어."
"어서 문 열어봐. 문 열어보라니깐!"


엉겁결에 당한 것이었기 때문에 다들 얼어붙어 있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확-" 문을 열어 젖히자 고래를 뚫어 생나무로 불을 붙인 굴뚝에서 난 연기만큼이나 시커멓게 밖으로 빨려 나갔다.

"뭐해 니기들?"
"아무 것도 안 했다니까."
"이 새끼들. 담배 폈지?"
"아냐 아니라니까."
"다들 빨리 나왓!"


신발을 들고 마당으로 일시에 튀어 나왔다. 방바닥엔 성냥골이 어지럽게 굴러다니고 피다만 담배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났다.

형은 급히 양재기에 물을 한바가지 떠와서 방에 얹었다. 싹싹 빌었던 까닭에 우린 그 자리에서 한 대도 맞지 않고 각자 자리로 돌아갔고 어른들께도 이야기는 전해지지 않았다.

아직도 성냥을 고집하는 분이 있더군요.
아직도 성냥을 고집하는 분이 있더군요.김규환
담배와의 질긴 인연을 접기로

작년 이 때까지 한 갑 정도 피었던 담배가 1년 후 오늘 보니 거의 두 갑에 육박할 정도로 무척 늘었다. 왜 이리 되었을까? 몸은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 왼손엔 담배 한 개비가 들려있지 않으면 불안하다. 잠자리에서 일어날 때도 담배부터 찾는 악질이 되었다.

글쓴답시고 자꾸만 늘어가는 담배에 이제 내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몇 번이나 끊고야 말겠다고 다짐했던 순간이 올해만 해도 벌써 몇 번이던가.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한 방법과 출발점으로 나는 과감히 금연을 택한다. 더 좋아진 몸으로 가족과 사회를 향해 한 발 더 다가갈 것이다.

단지 추억거리였을 때가 좋았다. 그냥 나도 한 때는 '꽁초 오상순'처럼 많이 피웠노라고 추억하고 싶다. 이제 담배와의 질긴 인연을 그만 두련다. 정말 절연(絶緣)이다.

언제 내가 무엇에 의지하여 살았던가. 누구도 내 삶을 대신할 수 없는 독립인간으로서 신과 물건, 돈, 먹는 것에 좌지우지되는 삶은 내 것이 아니다. 다시 모든 껍데기는 가라.

지금 당장 창문을 열고 환기부터 시작해야겠다. 이를 가지런히 닦고, 진한 목욕으로 절은 냄새를 빼고 맑은 물을 많이 마셔 걸러내리라. 내일은 치과(齒科)에 가서 치석을 말끔히 제거해야지.

다만 누가 담배를 피면 '그래, 자유롭게 피소서. 다만 당신의 건강은 이제 전적으로 당신에게 달려 있소'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흡연권(吸煙權)은 마땅히 보장되어야 한다.

담배값을 또 들먹인다. 올리면 당분간 덜 피겠지만 정부 부처의 매부(妹夫) 생각하는 척 하는 모양이 가소롭다. 약주고 병 주는 그들이 밉지만 이젠 그로부터 벗어나 내 건강을 먼저 생각해야겠다. 올리든 말든 맘대로 하라.

보기 좋게 자꾸 진열하면 더 잘 팔리는가 보다. 더 좋은 담배를 만드는 담배회사. 얼마 전 위장 민영화를 해서 정부에서는 욕 먹지 않는다고 안심하고 있는 모양이다.
보기 좋게 자꾸 진열하면 더 잘 팔리는가 보다. 더 좋은 담배를 만드는 담배회사. 얼마 전 위장 민영화를 해서 정부에서는 욕 먹지 않는다고 안심하고 있는 모양이다.김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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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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