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244

백악루에 나타난 광견자 (6)

등록 2003.10.29 14:11수정 2003.10.29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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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놈! 네 놈이 감히 사라와 유라를 넘봐?"

"으으윽! 사, 살려주십시오. 족장님! 속하가 잘못…"


"흥! 어림도 없는 소리. 무엇 하느냐? 어서 놈의 목을 베어라!"

"존명!"

쐐에에에에엑!

"케엑!"

청타족 족장 자하두의 명이 떨어지자 허공을 찢어발길 듯한 파공음이 터져 나왔고 곧이어 보달기의 수급이 떨어져나갔다.


사라와 유라를 차지함으로써 장차 청타족 족장이 되길 바랬던 성질 더럽고, 못생긴 청년 보달기가 한 많은 세상을 하직하는 소리였다. 그의 죄목은 사라와 유라를 찾는 즉시 탑리목분지로 데리고 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강제로 욕보이려 한 것이다.

이는 하극상(下剋上)에 속하며 청타족의 율법은 예외 없이 참수형으로 다스리도록 되어 있다. 그렇기에 지켜보고 있는 다른 청타족 청년들의 눈에는 두려움의 빛이 감돌고 있었다.


그들은 보달기가 사라와 유라를 탐하려 할 때 이를 제지하기는커녕 수수방관 내지는 협조를 하였다. 따라서 엄밀히 따지면 참수형의 대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들어라! 율법은 너희들 모두를 벌해야 마땅하다고 한다."

"……!"

자하두의 말에 청년들 모두 올 것이 왔다는 듯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체념의 눈빛을 흘렸다.

족장에게 반항한다든지 덤빈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 못할 일이다. 자하두를 이기지 못한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절세기연을 만나 만년하수오(萬年何首烏)를 복용하게 된 족장의 무공은 너무도 고절하여 청타족 청년 열 명이 덤벼도 털끝 하나 건드릴 수 없을 지경이다.

청타족 역사상 가장 강한 무인이라 하여 그를 고금제일인이라 불렀다. 그래서 감히 덤벼볼 마음조차 먹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잘못되면 고향에 있는 모든 식솔들이 참수형을 당하거나 졸지에 노예로 전락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보달기는 쓸데없는 욕심을 품어 죽을죄를 지었고 그로 말미암아 보다시피 죽음을 맞이하였다. 너희는 그가 무슨 짓을 저지르려 하는지를 알면서도 제지하지 않았다. 따라서 하극상 방관죄에 해당된다. 이 역시 참수형으로 다스려야 할 죄!"

"……!"

"그러나 본 족장은 너희의 죄는 묻지 않겠다. 상명하복이 철저한 우리 청타족의 관습 때문에 보달기를 제지하지 못했다고 생각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엔 조건이 있다."

"……!"

족장의 말의 이어지는 동안 장내는 바늘 하나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조용해졌다. 생명이 왔다갔다하기 때문이다.

"이제 본 족장은 보달기와 마찬가지로 사라와 유라를 범하려했던 무림천자성 소성주 철기린에게 죄를 묻고자 한다."

"……!"

자하두의 말에 청타족 청년들의 눈은 있는 대로 크게 떠졌다.

그들은 강호를 유랑하는 동안 무림에 대하여 속속들이 알게 되었다. 그리고 청타족이 강하고 두려운 존재인 것은 탑리목분지 인근에서만 통용되는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청타족이 아무리 용맹스럽고 강하다 하지만 무림천자성을 상대한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렇기에 놀라움을 너머 경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자하두의 말은 이어지고 있었다.

"우리 청타족은 평화를 사랑하여 다른 부족을 먼저 공격한 일이 없다. 그러나 누가 건드리면 결코 그냥 두지도 않았다. 무림천자성이 아무리 강하다 한들 우리를 건드리면 무사할 수 없다는 것을 만천하에 알릴 것이다."

"……!"

"사라와 유라의 명예가 원상복구되는 그 날, 우리는 탑리목분지로 향할 것이다. 그때 너희가 지었던 모든 죄가 사해질 것임을 선포하는 바이다. 알겠느냐?"

"존명!"

자하두의 말은 법이다. 제 아무리 상대가 강하다 하더라도 꺾으면 그만이라는 것이 청타족 속담 가운데 하나이다.

이 속담 덕분에 탑리목분지에서 청타족을 칭할 때 흔히 불굴의 청타족이라는 표현을 쓴다. 불가능에 도전하여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림천자성은 강하다. 따라서 그들을 징계하려면 그들보다 강해야 한다. 하여 이제부터 너희에게 한 가지 도법을 전수할 터이니 귀를 씻고 잘 들어라. 알겠느냐?"

"존명!"

무인에게 있어 무공은 음식보다 귀한 것이며, 재물보다도 귀한 것이다. 따라서 자하두의 말이 이어지는 동안 청타족 청년들은 눈빛을 빛내며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 하고 있었다.

우연한 기회에 객잔에서 음식을 먹고 있는 사라와 유라를 본 보달기는 수하들로 하여금 객잔을 완전히 포위하게 하고는 두 여인을 제압하려 하였다.

이번엔 절대 놓치지 않고 뜻을 이룰 생각이었다. 하여 음흉한 미소를 배어 문 채 살금살금 다가갔다.

중원인과는 달리 사라와 유라는 탐스러운 금발(金髮)에 신비한 눈빛을 발하는 벽안(碧眼)을 지닌 미녀이다. 그것도 절세미녀이다. 따라서 어딜 가든 눈에 뜨이기 마련이다.

그런 미녀가 오가는 사람들의 눈에 잘 뜨이는 객잔 창가에 앉아 있었으니 눈에 뜨이지 않았다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어쨌거나 모든 것은 순조로웠다. 순조로워도 너무 순조로웠다.

사라와 유라는 음식을 먹으며 수다를 떠느라 완전 무방비 상태였다. 게다가 둘의 탁자 부근에는 시끄럽게 떠드는 여인 셋이 뭔 이야기를 그렇게 하는지 깔깔거리면서 연신 손뼉을 치고 있어 너무도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이제 슬그머니 다가가 마혈만 제압하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했던가!

결정적인 순간이 다가와 막 사라와 유라의 마혈을 점하려던 보달기는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한 인물을 보고는 뻣뻣한 통나무처럼 굳어 버렸다. 놀랍게도 청타족 족장 자하두가 거기에 앉아 있었던 것이다.

너무도 아름다운 두 여인을 차지할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는 생각에 미처 그가 있다는 것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잠시 후 보달기는 병장기를 떨구고 무릎을 꿇었다.

죽음이 임박했음을 알기 때문이고, 순순히 죽음으로서 고향에 있는 식솔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함이었다.

그는 모든 것을 순순히 시인하였다. 그래야 편히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덕분에 별다른 고통 없이 죽은 것이다.

어쨌거나 보달기가 죽은 후 자하두는 청타족 용사들에게 현묘한 도법 한 가지를 전수하였다.

이인 일조가 되어 시전하는 그것은 어찌나 현묘한지 무림에 이름이 알려진 명숙들조차 쩔쩔매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상승 도법이라면 반드시 조화를 이루고 있어야 할 경중(輕重)은 물론 완급(緩急)이 거의 완벽한 수준이었다. 게다가 익히기에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이에 청타족 용사들은 자하두가 전수해 준 도법의 신묘함에 빠져 그것을 연마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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