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 타작. 트랙터에 싣고 다니다 기계를 내리고 적당한 양을 먹여주면 콩이 나옵니다.김규환
귀향 후 휴경지를 활용하여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것만 하기로
형은 일찍이 서울에서 살았다. 그러다가 도시 생활이 맞지 않아 낙향을 한 지 10년이 넘었다. 논농사, 흑염소 농장, 소 사육 등 여러 농사를 거듭 실패한 끝에 5년 전부터는 나무 농사와 콩 농사만을 고집하는 젊은 농사꾼이다. 그게 다시 농사짓는 데 동의한 형수님과 굳게 맺은 약속이고 조건이었다.
이제 나이 39살인 형이 농사에 접근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했던가? 더 이상 논농사, 밭농사, 축산으로는 기업 농가와 외국산을 이길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잘할 수 있는 것만 하기로 결정했다.
어찌어찌 살다보니 땅 한 평 없이 시작한 농사. 그렇다고 그게 형을 주저앉히지는 못했다. 요즘 시골 농촌이 그렇듯 형이 사는 고향 주변의 땅은 겉만 농촌이지 실은 젊은 몇 사람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양로원이나 마찬가지다. 더욱이 경작할 사람이 없어 묵힌 땅이 날로 늘어가고 있다.
그것이 형에겐 기회로 작용했다. 휴경지(休耕地)를 빌려 초기 몇 년은 나무를 심고 이후 나무가 커 가는 동안은 소출이 미미하고 최소 2~3년은 걸리므로 대체 작물,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콩 농사인데 집집마다 땅을 빌려 일정한 지대(地代)를 물거나 아예 무료로 짓기로 하고 나중에 감사의 뜻으로 콩 몇 되나 몇 말을 주고 농사를 짓게 되었다.
그렇게 빌린 땅이 고향 화순 백아산(810m) 일대에 몇 만 평이나 되는지 형 자신도 정확히 모른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