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 알부자' 김규복씨 콩 농사 성공 비결

[시골마을 가을걷이 풍경 4]콩 타작

등록 2003.10.30 11:14수정 2003.10.30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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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콩, 국산콩 잘 말려야 합니다.
햇콩, 국산콩 잘 말려야 합니다.김규환

콩 세 알의 의미


콩 한 알은 몇 쪽으로 나뉠까? 노란 콩을 불려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까맣거나 자주색 씨눈 하나가 있다. 탱탱 불은 얇은 껍질을 벗기면 세 배 쯤 커져서 두 쪽으로 나뉜다. 커져 보았자 빤한 작은 알갱이를 둘이서 나눠 먹을 수 있을까? 마음 잘 먹으면 가능하다.

또한, 콩 세 알 중 한 알은 나 먹고, 또 한 알은 배고픈 날짐승 먹고, 나머지 한 알은 내년 농사 지으면 흙이 먹는다. 이렇게 해마다 반복하여 지금까지 우린 콩을 먹으며 살고 있다. 이렇게 나눠 먹는 의미심장한 삶의 교훈과 정성, 배려에 감복할 따름이다.

콩을 베어서 며칠을 말려야 깨지지 않고 탈곡이 잘 됩니다.
콩을 베어서 며칠을 말려야 깨지지 않고 탈곡이 잘 됩니다.김규환

콩 알부자 5.6톤 거둔 비결

김규복(저의 친형님이십니다)씨는 콩 부자다. 콩 알부자. 국산 콩 지키기에 남다른 열정을 가진 사람이다. 올해 수확한 콩이 자그마치 140가마(가마당 40kg)다. 5.6톤(ton)이나 생산했으니 '콩박사'라 해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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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마당은 온통 콩으로 채워져 있다. 벌써 콩 타작을 시작한 것이 보름째이지만 아직 마무리를 하지 못했다. 앞으로도 닷새 이상 콩을 거둬들여야 일단 하루라도 편히 몸을 쉴 수 있다.


이 많은 양을 과거처럼 도리깨로 두들기면 대체 며칠 동안이나 거둬야 할까? 기술이 좋아서 그나마 이 정도 분량을 해치우지 정말 엄두가 나지 않는다. 베서 나르는 것은 사람이 할망정 타작은 기계가 척척 해내니 꽤 일손을 덜 수 있다.

더군다나 올해는 전국에 걸쳐 잦은 비로 거의 콩알이 익지 않은 상태에서 거둔 그의 실력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부러움을 사고 있다. 올해 콩 농사를 직접 지어 봐서 안다. 얼마 되지 않은 땅에 김 매고 콩잎 따서 잘 익도록 도왔지만 허사였다. 수확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다.


그런데도 김규복씨는 자신이 예상했던 수확량의 10% 내외만 줄어들었을 뿐이다. 그 비결이 뭘까?

콩 타작. 트랙터에 싣고 다니다 기계를 내리고 적당한 양을 먹여주면 콩이 나옵니다.
콩 타작. 트랙터에 싣고 다니다 기계를 내리고 적당한 양을 먹여주면 콩이 나옵니다.김규환

귀향 후 휴경지를 활용하여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것만 하기로

형은 일찍이 서울에서 살았다. 그러다가 도시 생활이 맞지 않아 낙향을 한 지 10년이 넘었다. 논농사, 흑염소 농장, 소 사육 등 여러 농사를 거듭 실패한 끝에 5년 전부터는 나무 농사와 콩 농사만을 고집하는 젊은 농사꾼이다. 그게 다시 농사짓는 데 동의한 형수님과 굳게 맺은 약속이고 조건이었다.

이제 나이 39살인 형이 농사에 접근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했던가? 더 이상 논농사, 밭농사, 축산으로는 기업 농가와 외국산을 이길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잘할 수 있는 것만 하기로 결정했다.

어찌어찌 살다보니 땅 한 평 없이 시작한 농사. 그렇다고 그게 형을 주저앉히지는 못했다. 요즘 시골 농촌이 그렇듯 형이 사는 고향 주변의 땅은 겉만 농촌이지 실은 젊은 몇 사람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양로원이나 마찬가지다. 더욱이 경작할 사람이 없어 묵힌 땅이 날로 늘어가고 있다.

그것이 형에겐 기회로 작용했다. 휴경지(休耕地)를 빌려 초기 몇 년은 나무를 심고 이후 나무가 커 가는 동안은 소출이 미미하고 최소 2~3년은 걸리므로 대체 작물,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콩 농사인데 집집마다 땅을 빌려 일정한 지대(地代)를 물거나 아예 무료로 짓기로 하고 나중에 감사의 뜻으로 콩 몇 되나 몇 말을 주고 농사를 짓게 되었다.

그렇게 빌린 땅이 고향 화순 백아산(810m) 일대에 몇 만 평이나 되는지 형 자신도 정확히 모른단다.

후두둑 떨어지는 콩.
후두둑 떨어지는 콩.김규환

콩 농사 방식부터 남달라

형이 짓는 콩 농사 방식은 조금 다르다. 대부분 국산 콩은 할머니, 아주머니들이 많아야 2~300평 정도의 밭에 호미로 파고 두세 알 집어 넣어 흙을 덮는 원시적·전근대적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형은 트랙터가 주요 기구다.

봄이 지나 일단 풀이 나면 이리저리 밭을 옮겨다니며 로터리를 쳐 준다. 한 열흘 지나서 거친 마른 풀 줄기를 한번 더 갈아주면 뿌리까지 말라비틀어진다. 그 위에 드문드문 콩을 흩어 뿌려주고 약하게 로터리를 쳐서 덮어주면 그걸로 끝이다. 사후 작업은 새 풀이 나기 전에 제초제 한번 하는 걸로 일년 농사짓기를 마무리한다.

콩깍지를 먹이는 모습. 손이 빨려 들어가지 않게 조심해야 합니다.
콩깍지를 먹이는 모습. 손이 빨려 들어가지 않게 조심해야 합니다.김규환

여기서 잠깐 알아둬야 할 것이 있는데, 유기농산물 최대 생산자·소비자 직거래 단체인 (사)한살림 등 생활협동조합에서마저 잡곡에 있어서는 스스로 무농약과 유기농(무농약+무화학비료+무제초제)을 실현하지 못한다고 그 어려움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니 주곡 이외의 잡곡(콩, 팥, 율무, 조, 옥수수, 수수, 기장 등)은 국산(國産)이라는 사실에 만족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반적으로 콩 농사는 모내기 전후로 5월에 많이 심지만 형은 일자를 꼭 지킨다. 반드시 날짜를 더 늦춰 6월 6일 전후로 씨뿌림을 한다. 그러면 20여일 가량 늦춰 뿌리지만 알맹이는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빨리 맺히는 기이한 현상을 발견하기도 한다.

초기 1년은 형을 도와 이틀 동안 힘들게 콩잎을 따주는 작업을 해봤는데 그 이후론 그 작업은 생략한다고 한다.

작년까지는 이렇게 콩깍지와 검불이 많아 일일이 풍구와 선풍기로 골라내야 했는데 올핸 좀 편해진 것 같습니다.
작년까지는 이렇게 콩깍지와 검불이 많아 일일이 풍구와 선풍기로 골라내야 했는데 올핸 좀 편해진 것 같습니다.김규환

콩 타작 현대화·기계화된 모습

며칠 전 내려가서 본 콩 타작 풍경은 사뭇 달랐다. 한 무리는 다른 마을에서 콩을 베고 있었고 일곱 사람은 형을 따라다니며 콩 대를 걷어 한 곳에 모으고 트랙터에 연결된 타작 기계에 마른 줄기를 넣자 알맹이는 가마니에 후두둑 떨어지고 줄기와 검불은 따로 분리되어 나왔다.

옆에서 한 사람이 콩을 한 깍지씩 떼어주고 한사람은 가마니를 잡고, 또 한사람은 검불을 긁어낸다. 나머지는 달음박질을 하며 콩을 한 꾸러미씩 들고 온다. 이렇게 두세 배미를 마치면 콩을 차에 싣고 트랙터는 기계를 살짝 들어 이동을 한다.

수확한 콩을 실어 옮기는 것과 그 많은 인부의 밥을 해 나르는 일은 형수의 몫이다. 하루 일을 마치고 인부를 실어다 주고 콩을 부리는 작업의 연속이다. 그러니 형이 콩 농사를 짓는 곳은 가까운 서너 마을이 아니라 면(面)과 군(郡)의 경계를 넘나든다.

콩 가마가 여러개 쌓여 있지요? 바닥엔 콩 바다입니다. 이렇게 많을 때는 상관없지만 조금 얇게 널린 곳에서는 노약자는 넘어져 코 깨지는 수가 있으니 조심해야 합니다.
콩 가마가 여러개 쌓여 있지요? 바닥엔 콩 바다입니다. 이렇게 많을 때는 상관없지만 조금 얇게 널린 곳에서는 노약자는 넘어져 코 깨지는 수가 있으니 조심해야 합니다.김규환

[인터뷰]형님 입을 통해서 콩에 대해 들어봤다

글쓴이 註: 친형이지만 독자를 위해 존댓말이 오갔습니다. 광고성 기사 같지만 농촌을 살리는 한 방법을 소개한 것이니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 수확량은 얼마나 됩니까?
"애초에는 40kg들이 160가마 정도 예상했는데 다소 줄어 140가마는 나올 것 같습니다."

- 매년 콩 재배 기술이 느는 것 같습니다.
"하다보니 이젠 기술자가 된 듯합니다."

- 다른 분들은 어떤가요?
"아예 쭉정이라 합니다. 수확을 포기한 사람들도 많지요. 콩 농사 지은 지 몇 년 안됐지만 파종 시기가 중요해요. 꼭 5월에 심는데 잎과 줄기만 무성하게 자랄 뿐 여물지가 않거든요. 알다시피 해마다 6월초에 심으니 아무 탈없이 잘 됩니다."

- 대단한 발견을 하신 거로군요.
"하다보니 됐고 책을 보며 공부를 좀 했지요."

- 2주 전에도 콩 타작에 바쁘던데….
"아직 다 거두지 못했지요. 한 5일은 더 해야 끝날 것 같습니다."

- 그럼 그 많은 콩을 또 말려야겠군요.
"걱정입니다. 며칠 동안은 몸이 지쳐 아무 일도 못 했습니다. 말리는데도 햇볕에 말리다 보니 보통 일이 아닙니다. 우리 마당뿐만 아니라 차로 싣고 가서 다른 분 마당에 널어 둔 게 더 많습니다."

- 힘들이지 말고 그냥 건조기에다 말리지 그렇습니까?
"누군들 그렇게 하고 싶지 않겠어요. 하지만 좋은 콩을 만들기 위해서는 마지막 인내가 중요합니다. 건조기에 말리면 이틀이면 바짝 마르지만 맛은 훨씬 떨어지거든요. 이왕 농사지은 것 최고로 만들어야죠."

하절기에는 두부를 쑤지 않는 원리마을 김정자씨가 김규복씨 국산콩으로만 만든 두부.
하절기에는 두부를 쑤지 않는 원리마을 김정자씨가 김규복씨 국산콩으로만 만든 두부.김규환

- 이 많은 콩을 어찌 다 처분할 계획입니까?
"일단 절반 정도는 수매와 시골 두부집에 팔고 나머지 절반은 메주를 쒀서 직거래를 한번 해 볼 작정입니다."

- 메주 쒀서 말리고 발효시키는 일도 간단치 않을 건데요.
"형수와 마을 할머니 몇 분의 손으로는 감당하기 힘들어요. 작년에도 해 보았지만 고된 노동의 연속입니다(시간 되면 동생도 내려와서 거들었으면 좋겠구만. 수고비는 챙겨 줄 테니까)."

- 물론 도와야죠. 불러만 주시면 만사 제치고 내려가겠습니다. 한 말에 몇 덩이나 나올까요?
"작년엔 한 말에 일곱 덩이가 나왔는데 -어른들 말씀에 메주는 홀수로 쒀야 한다고 합니다- 올해는 택배 문제도 있고 해서 여섯 덩이로 만들 생각입니다. 포장이 문제가 되니까…."

-얼마 전 들으니까 국내에 유통되는 메주의 절반 이상이 중국산 콩으로 만든 거라는데….
"뭐는 안 그런가요? 하다 못해 농협 김치마저도 값이 싼 중국산 절임 배추를 사와서 버무려서 국산화하는가 봐요. 법적으론 문제가 될 게 없으니까. 아마 콩은 갈수록 재배 면적이 줄어 더 심할 겁니다."

- 메주 판로는 확보하셨는지?
"한 절반 정도는 어찌 팔아보겠는데 나머지는 동생과 친구들에게 부탁하는 수밖에 없어서 고민 중입니다. 마땅한 방법이 있으면 알려주면 좋겠구만."

- 뭐 다른 점이 있으면 성의껏 팔아보겠습니다.
"가마솥에 장작불로 콩을 삶습니다. 솔잎 추출물을 희석하여 메주를 삶을 생각입니다. 띄우는 방법도 달리할 생각인데 황토방에서 건조 및 발효를 합니다. 덧붙여 일정량 이상을 주문하면 간장 담기 좋은 백아산 맑은 물을 공수할 계획입니다."

- 마지막으로 소비자에게 콩으로도 파실 계획이 있습니까?
"사실 분이 있다면 팔아야죠."

- 전화비 많이 나오겠네요.
"콩 한 가마 팔면 부쳐줄 테니 걱정 말더라고."

- 많이 팔아야 빚 좀 갚겠네요. 하하하
"그랬으면 좋겠구만 모르겠어요."

작년에 쑤었던 메주 덩어리를 말리고 있는 중입니다. 바닥에 지푸라기를 깔고 방바닥과 벽은 황토를 바를 예정이랍니다.
작년에 쑤었던 메주 덩어리를 말리고 있는 중입니다. 바닥에 지푸라기를 깔고 방바닥과 벽은 황토를 바를 예정이랍니다.김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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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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