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차 안에서 둘째 낳던 날

박철의 <느릿느릿 이야기>

등록 2003.10.31 09:29수정 2003.10.31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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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릿느릿 박철

오늘은 우리집 둘째 아들 넝쿨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14년 전 식목일, 우리 집 둘째 넝쿨이가 태어났습니다. 14년 전 심은 나무가 건강하게 잘 자라 중학교 1학년이 되었습니다.


우리 집 둘째 넝쿨이 출생한 경위는 이랬습니다. 14년 전 식목일, 교회청년들이 봄나들이를 가자고 성화를 해서 자연농원으로 봄나들이를 가게 되었습니다. 마침 식목일이 월요일이었습니다. 그때 아내는 만삭이었습니다. 배가 남산만해 숨쉬기가 곤란한지 씩씩거리고 신경이 예민해져서 아무 일도 아닌데 톡톡 쏘아대고 성가시게 굴었습니다.

출산 예정일이 20여 일이 남았습니다. 아내의 몸 상태로는 도저히 봄나들이를 따라 나설 수가 없었습니다. 아내는 입이 한 자는 튀어나와 김밥을 만드는데, 함께 따라가지 못해서인지 말도 안 하고 저기압이었습니다. 청년들과 함께 차를 나누어 타고 자연농원을 갔습니다. 도시에 살던 사람들이 다 나왔는지 북적거리는데, 꼭 장날 시장통 같았습니다. 날씨는 쌀쌀한 게 햇살이 비쳤다가 사라졌다가 흐린 날씨였습니다.

교회청년들은 놀이기구 타는 재미에 빠져서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그렇게 한낮을 보냈습니다. 그 너른 공원에 밥 먹을 데가 마땅치 않았습니다. 이미 좋은 자리는 다른 사람들이 다 차지해서 하는 수 없이 주차장에 신문지 몇 장 펴놓고 차가운 김밥을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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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릿느릿 박철

청년들은 잠시도 쉬지 않고 떠들고 웃는데 오랜만에 나들이라 무척 재밌는 모양입니다. 나는 놀이기구에 취미가 없고, 또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이라 청년들 눈치만 보면서 미꾸라지처럼 빠져 다니는데 점심밥을 먹고 청년들에게 붙들려 꼼짝없이 청룡열차를 타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때 심장이 멎어 죽는 줄 알았습니다. 청년들은 재미있다고 소리를 지르며 스릴을 즐기는데 나는 이를 악물고 손잡이를 잡고 얼마나 용을 썼던지 청룡열차가 정지된 다음에 내려오는데 다리가 후들거려서 잘 걸을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열이 나고 몸살기운이 감지되었습니다.


추운데 김밥을 먹고, 청룡열차를 타면서 하도 진을 빼서 영락없이 반갑지 않은 손님이 내 몸에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도시락 가방을 집어던지고 아내를 찾았습니다. 아내는 방 한쪽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서 끙끙거리고 있었습니다.


"아이고, 죽겠다. 그놈의 청룡열찬가 뭐시깽인가 탔다가 돌아가시겠다. 으실으실 추운 거 보니 몸살이 왔나봐. 얼른 밥 주라! 밥 먹고 뜨신 방에서 땀 좀 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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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릿느릿 박철

아내는 진통이 오는지 끙끙 신음소리를 내면서 부엌으로 나가서 밥상을 차려왔습니다. 누가 갖다 준 개장국을 데워서 냄비채로 갖고 들어왔습니다. 입맛이 없었지만 밥을 말아 개장국 한 냄비를 꾸역꾸역 다 먹고 장롱에 이불을 꺼내 깔고 뒤집어쓰고 누웠습니다. 그 시간이 저녁 8시30분쯤 되었을 겁니다. TV연속극에서 귀에 익은 탤런트의 목소리를 들었으니 시간을 기억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막 잠이 오려고 하는데, 아내는 진통이 심했는지 끙끙 앓는 소리가 더 심해지는 것이었습니다. 출산예정일이 20일이나 남았으므로 나는 '저 여자가 좀 참을 것이지. 무슨 엄살이 저리 심할까? 애 처음 낳아보나. 시끄러워 잠도 못자겠네'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내의 진통은 심상치 않았습니다. 나중에는 비명에 가까운 신음소리를 내는데 억지로 일어나서 보니 아내가 손으로 방바닥 짚고 당장 애라도 낳을 동작으로 용을 쓰고 있었습니다.


"괜찮아? 많이 아파?"
"여보, 지금 애가 나올 것 같애. 빨리 택시 좀 불러요."


그 당시 남양에 택시가 서너 대 있었는데, 전화를 했더니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진통이 점점 심하게 왔는지 한 손으론 방바닥을 짚고 한 손은 배를 움켜잡고 곧 죽을 것만 같은 기색으로 거의 절규에 가까운 비명을 질러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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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릿느릿 박철


"아 여보, 가만있지만 말고 어떻게 좀 해봐!"


병원에 가려면 타고 가야할 차가 있어야 하는데, 남양 택시는 다 집에 들어갔고 오토바이를 타고 갈 수도 없고 나는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아내는 갑자기 '으악'하고 소리를 지르며 치마 밑으로 무슨 고무풍선 같은걸 쏟아냈는데 더럭 겁이 나서 '이러다 마누라가 죽을 모양이다.' 그 생각이 들자 아무데고 이 집 저 집 전화를 했습니다.

그때 마침 떠오른 생각이 장로님네 세째아들이 운전을 배운다고 어디서 고물똥차를 얻어다 놓은 게 있는데 그게 생각이 났습니다. '그거라도 타고 가자.' 장로님이 주무시다 전화를 받으셨습니다.


"장로님, 빨리 성희 깨우고 권사님이랑 우리 집에 좀 오세요. 아무래도 우리 집사람이 애를 낳을 모양이에요. 빨랑 오세요!"


평소에 행동이 꾸물꾸물하시던 이 장로님이 얼마나 빨리 왔던지 전화 끊고 났더니 바로 오셨습니다. 이 장로님의 부인 홍순남 권사님은
"아이구 사모님! 양수가 터졌네. 목사님 사모님! 애 낳을 것 같은데요. 어떻게 하실까요? 집에서 낳으실래요, 병원에 가서 낳으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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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릿느릿 박철

경험이 많으신 분이셨습니다. 나한테 물으면 내가 애를 낳을 것도 아니고 뭐라고 대답할 수 있겠습니까? 똑같은 질문을 아내에게 했습니다. 그때 아내는 독사 같은 눈으로 나를 노려보면서 그러대요. "집에서 애 낳다 죽으란 말이야."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노산(老産)인데다 아내도 겁이 났을 겁니다.


"지금 당신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빨리 수원 산부인과 있는 병원에 데려다 줘!"
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장로님 셋째아들 성희가 차에 시동을 걸어놓고 있었습니다. 애를 낳으러 병원에 가는 것이니 이불이고 옷이고 아무거나 챙겨서 권사님 손에 들려주고 나는 아내를 번쩍 안아 자동차 뒷자리에 살그머니 놓았습니다. 몸살이 걸려 죽어가던 사람이 그야말로 아내를 번쩍 안아보기는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이제 막 출발하려고 하는데. 운전기사 성희씨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 어떻게 하죠. 빵꿉니다. 조금 전까지는 멀쩡했는데…. 빵꾸가 났는데 어떻게 하죠? 스페어타이어로 바꿔야 하겠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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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릿느릿 박철

'하필 이럴 때 펑크가 났단 말인감?' 차체를 들어올리는 쟈키도 고장이 나서 나와 장로님이 초인적인 힘을 써서 자동차를 들어올려 천신만고 끝에 타이어를 갈아 끼웠습니다.

"성희 씨! 빨리 달려! 수원 아무 병원이나 산부인과 있는 병원으로 가! 빨리 달려! 전속력으로 달려!"


완전 폐차직전에 있는 똥차가 달리면 얼마나 달리겠습니까? 그때 우리 동네 장덕리에서 남양읍내로 나가는 길이 비포장도로였는데 차가 달리니 쿠션도 없이 고무공처럼 튀는데. 아내는 그야말로 진통의 절정이었습니다. 소리 소리를 질러대는데 아무리 아파도 그렇지, 소리를 지를 적마다 소름이 끼치데요.

그래서 그때 '얼마나 애 낳는 게 아프면 저럴까? 나도 한번 애 한번 낳아 봤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수원까지 가려면 적어도 4-50분 시간이 소요됩니다.

차가 남양읍 사거리 신호등 앞에 섰을 때였습니다. 뒤에서 아내를 머리를 무릎으로 받아주고 아내의 손을 잡고 있던 권사님이 아내의 치마를 들치고 하는 말이

"목사님, 애가 나와요."
"뭐요?"
"어… 어 머리가 나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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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릿느릿 박철

"사모님! 힘 한 번 더 줘요!"
"으악…!"
"아이구! 애가 다 나왔네. 아이구! 우리 사모님 대견하시네! 고추네 고추야!"


성희씨는 남양 사거리 바로 앞 산부인과가 없는 남양의원 샷터 문을 발로 걷어찼습니다. 그러자 이층 숙소에서 병원원장이 창문을 열고 누가 남의 병원 문을 발로 차는가 해서 내다보았습니다. 내가 달려가서 말했습니다.

"아이고 원장님! 우리 집 사람이 지금 차에서 애 낳았어요. 빨리 어떻게 좀 해주세요."


애는 권사님이 수건으로 둘둘 말아 안고, 나는 아내를 등에 업고 병원에 들어갔습니다. 병원이래야 동네의원이어서 병실도 없고 빈방이 두어 개 있었는데 방에 불을 넣지 않아 냉방이었습니다. 병원원장은 어디서 전기장판을 가져다 온도를 높이고, 아내는 사시나무 떨듯이 벌벌 떨며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웠고 애의 탯줄도 그 냉방에서 잘랐습니다.

방이 너무 추워서 서울 처형이 승용차가 있길래 전화로 불렀습니다. 장모님과 처형이 와서 아내와 애를 데리고 갔고 나는 우리 집 큰아들 아딧줄과 집에 남아 있었습니다. 집에 돌아오니 밤 12시가 훨씬 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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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릿느릿 박철

그 날 밤 나는 우리 집 둘째 넝쿨이의 출생을 둘러싸고 벌어진 해프닝을 통해 생명의 신비 앞에 깊이 감동하며 울었습니다. 나에게 찾아온 몸살도 그 야단법석을 떠는 사이 놀라서 다 도망가고 말았습니다.

넝쿨이를 낳아준 사랑하는 아내에게 감사합니다. 14년 전, 우리 넝쿨이를 받아주었던 홍순남 권사님, 그 집 세째아들 이성희씨, 넝쿨이의 태를 잘라주셨던 남양의원 원장님께 감사드립니다. 서울에서 밤12시에 승용차를 몰고 동생을 위해 우리 넝쿨이를 위해 달려온 처형과 사랑하는 장모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 넝쿨이가 이만큼 자란 것은 다 그분들의 덕분이었습니다.

우리 집 둘째 넝쿨이의 고향은 폐차 직전에 있었던 70년대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딱정벌레 같이 생긴 브리사입니다. 이미 차는 폐차를 해서 넝쿨이의 고향은 사라졌습니다. 넝쿨이는 '고향 상실자'입니다. 실향민 넝쿨이가 잘 자라서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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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릿느릿 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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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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