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도 칭찬만 하라!

등록 2003.11.19 00:38수정 2003.11.19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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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밤입니다. 월동 배추와 무, 시금치, 당근, 갓, 마늘 등속의 겨울 채소 살찌우는 가을비가 종일 그치지 않습니다. 이 비에 지천으로 피었던 붉은 동백도 더러 지고 말겠지요.


저녁 참에 가을비를 핑계로 한동안 멀리 하던 술도 한잔했습니다. 보길도에 하나 뿐인 중국 음식점 '청하 반점'에서 부황리 이장 현천 형님과 목수 상일이 형님이랑 탕수육에 고량주 몇 병을 마셨습니다. 50도 짜리 독주를 마시고 돌아 왔으나 술은 취하지 않고 늦도록 정신은
더욱 또렷해지기만 합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책상 앞에 앉았습니다. 오랜 동안 글쓰기를 멀리 했었습니다. 5월 이후부터니 근 7개월이나 되지요. 그간의 날들이란 말하기 또한 어려운 날들이었으니 침묵으로 그 많은 날들을 흘려 보냈습니다. 하루하루가 고통에 찬 날들이었고 순간 순간이 숨막히는 순간들이었으나 그 고통에 대해서는 굳이 말하지 않겠습니다.

세상의 어떤 사람이든 다들 나만큼의 고통은 이고 지고 가는 법. 오늘은 다만 세상 사람들이 타인에 대해 함부로 판단하고 나쁘게 말하는 습성에 대해 스스로 되돌아 볼 수 있기만을 바랄 뿐.

"남을 판단하지 말아라. 그러면 너희도 판단 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판단하는 대로 너희도 하느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고 남을 저울질하는 대로 너희도 저울질 당할 것이다. 어찌하여 너는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제 눈 속에 들어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제 눈 속에 있는 들보도 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형제에게 '네 눈의 티를 빼내어 주겠다'고 하겠느냐? 이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눈이 잘 보여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지 않겠느냐?" (마태오 복음 7: 1 - 5 )

사람들은 흔히 둘만 모여 앉아도 남 이야기로 날이 샙니다. 나 또한 버릇처럼 그렇습니다. 술자리가 됐든, 차 마시는 자리가 됐든 스스로 자신을 되돌아보기보다는 남의 뒷공론으로 허송 세월 합니다. 자리가 파하고 나면 그 허망하고 부끄러움에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지만, 그도 그 때 뿐 늘 똑같은 잘못을 반복합니다.


남의 눈 속의 티끌을 찾아내고 기뻐하기보다는 남의 좋은 점을 찾아내고 기뻐하는 일이 더욱 아름다운 일인 것을! 그러나 부디 다 아는 소리 새삼스럽게 꺼낸다고 나무라지는 마시길! 앎이라고 다 앎은 아닌 것을, 실천하지 않는 앎은 앎이 아닌 것을!

'재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고, 하늘에 재물을 쌓으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무릇 재화를 비밀리에 숨겨 두는 방법으로 남에게 시혜하는 방법보다 더 좋은 게 없다'는 실천적 가르침으로 풀어냈던 다산은 산상설교를 통해 '남을 판단하지 마라'고 가르친 예수의 말을 또 이렇게
삶의 지침으로 삼으라고 타이릅니다.


초천의 농막으로 돌아온 뒤, 나는 날마다 형제, 친척들과 유산의 정자에 모여서 술과 참외를 먹고 마시며 떠드는 것으로 즐거움을 삼았다. 술이 거나해 지자 어떤 이가 술병을 치고 책상을 두드리며 일어나 말했다.

"누구누구는 이익을 추구하며 부끄러운 줄 모르는데도 권세와 명예를 거머쥐었으니 분통이 터질 노릇이요, 누구누구는 욕심 없이 담담하여 자취를 멀리 숨겨 버렸으니, 끝내 묻혀버리고 출세하지 못하니 애석한 일입니다."

내가 술잔을 부어서 꿇어앉으며 청하기를, "예전에 반고(班固)는 옛 사람들을 품평하다가 종래에는 두헌의 죄에 연좌되었고, 허소는 당대의 인물들을 품평하다가 결국 조조에게 협박을 당했습니다. 사람은 품평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까닭에 삼가 벌주를 드립니다" 하였다.

얼마 지나자 또 어떤 이가 '쯧쯧찢찢' 하고 혀를 차며 일어나 말하기를 "저 말은 장에 내가는 쌀 짐도 지지 못하면서 꼴과 콩만 축내고, 저 개는 담장을 뚫고 넘어오는 도적도 지키지 하면서 뼈다귀만 바라고 있구나"라고 하였다.

나는 다시 한 잔을 부어들고는 꿇어앉아 청하였다.
"예전에 맹 정승(맹사성)은, 어느 소가 더 나으냐고 묻는 말에 소가 들으면 기분 상할까 하여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짐승도 품평해서는 안됩니다. 이런 까닭에 삼가 벌주를 드립니다."

여러 손님들이 낯을 찡그리고 불쾌해 하며, "그대의 정자에서 놀기가 참으로 힘들구려! 우리가 앞으로는 입을 꿰매고 혀를 묶어두고 있으리까?" 하였다.

내가, "이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여러분들을 위해 제가 먼저 해보지요. 부암의 바위는 삼엄하게 우뚝 서서 북쪽으로는 고랑의 성난 물결을 막아주고 남쪽으로는 필탄의 흰 모래사장을 펼쳐놓으니, 이것은 바위가 이 정자에 대해 공이 있는 것입니다. 남자주의 바위는 돌무더
기가 쌓인 것이 죽 늘어서서 깃이나 띠처럼 둘러싼 두 물을 갈라 오 강의 배들을 받아들이니, 이 것은 바위가 이 정자에 대해 다정한 점입니다.

석호의 바위는 붉고 푸른 온갖 모양을 만들어 내는데, 새벽이면 환한 아침노을에 물들고 저녁이면 석양에 안겨 정자 마루의 석가
래를 비춥니다. 그러면 상쾌한 기운이 저절로 생기니 이것은 바위가 이 정자에 아취를 더해주는 것입니다. 대체로 사물 중에 지각이 없는 것이 돌입니다. 종일토록 품평해도 화낼 줄을 모릅니다. 누가 그대들에게 입을 꿰매고 혀를 묶어두라고 했습니까?" 하였다.

그러자 어떤 이가 "예전에 유후(留侯) 장양은 황석을 황석공(黃石公)의 후신이라 여겨서 제사를 지냈고, 원장(元章) 미불은 바위를 좋아한 나머지 공경하여 절까지 하였었네. 자네가 바위를 품평하니 유독 어찌 된 일인가?" 하고 나를 나무랐다. 내가 "좋은 말씀! 바로 그렇기에 제가 칭찬만 하였지요. 언제 모욕하며 불손하게 말한 적 있소이
까?" 하고 대답하였다.

-정약용 지음, 박무영 옮김, '뜬세상의 아름다움'(태학사) 중 品石亭記에서


한번 입 밖으로 나간 말을 주어 담을 수 없다는 것은 불문 가지. 내가 남의 말로 날을 새는 사이 나 없는 자리에서는 또 누가 나의 험담으로 많고도 많은 밤을 새우고 또 새울 것인지! 그래서 다산은 말을 삼가고 삼갈 것을 이토록 누누이 당부했을 것입니다.

"다시금 이르니, 말을 삼가야 한다. 전체가 모두 멀쩡해도 구멍 하나가 새면 그것은 깨진 항아리일 뿐이다. 온갖 말이 다 믿을 만 해도 허튼 소리가 한마디만 있으면 귀신 소리일 뿐이다"

함부로 말하고 남을 헐뜯는 일, 어찌 두렵고 두려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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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자 섬 활동가입니다. 사단법인 섬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으며,<당신에게 섬><섬을 걷다><전라도 섬맛기행><바다의 황금시대 파시>저자입니다. 섬연구소 홈페이지. https://cafe.naver.com/islan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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