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 일출에는 삶의 애환이 묻어 있다

동명항 영금정 그리고 아바이 마을을 다녀와서

등록 2003.11.20 00:53수정 2003.11.24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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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일출을 보려고 새벽에 일어났지만 창가에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보고 다시 이불을 부여잡았다. 오늘 또다시 도전할 것이다. 만약 오늘도 비가 와서 일출을 보지 못한다면 또 몇 년을 기약해야 할지 모를 일이다.

새벽 5시에 눈을 떴다. 눈을 비빈 채 창문으로 갔다. 하도 피곤해서 마음속으로 비가 왔으면 하고 바랐을지도 모를 일이다. 별이 반짝 빛나는 하늘을 보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었고 영금정이 있는 동명항으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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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금정과 정자를 연결한 다리 ⓒ 이종원


영금정

영금정(靈琴艇)은 원래 정자가 있어서 이름이 붙은 것은 아니다. 돌산 꼭대기 괴석들이 정자 모양처럼 생겼고, 하얀 파도가 바위에 부딪힐 때마다 신비한 거문고소리를 냈기에 '영금정'이란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아쉽게도 일제 말에 그 아름다운 돌산을 파괴하여 속초항구를 만드는데 사용하였다고 한다. 지금 그 자리엔 활어판매장이 들어섰다고 한다. 거문고 소리가 시장에서 흥정하는 삶의 소리로 바뀐 것이다.

정자까지 예쁜 다리가 놓여 있다. 바닷가의 아침은 추웠다. 손이 얼어 호호 불어가면서 사진을 찍었다. 섬도 정자도 다리도 이제 아침해를 맞을 채비를 하고 있다. 영금정 앞에 보이는 섬이 조도(鳥島)다. 말 그대로 새가 많이 찾아서 생겨진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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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가 하늘을 수놓고 있다. ⓒ 이종원


해맞이는 일종의 교향곡이라 할 수 있다. 여러 연주자가 지휘자의 손놀림에 맞춰 웅장한 화음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심벌즈의 경쾌한 소리 같지 않은가? 갈매기가 아침해를 맞기 위해 하늘을 날고 있다. 이 아름다운 그림을 잊지 말자.

바다는 늘 어리석은 인간을 일깨워 준다. 파도가 바위를 때릴 때마다 자만심에 빠진 나를 반성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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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 ⓒ 이종원


등대전망대

등대전망대에 올랐다. 추억의 등대에서 바라본 일출은 속초 제 1경을 자랑한다. 왼편에 달이 떠있다. 월몰과 일출을 함께 본다는 것은 참 의미 있는 시간이겠지.

바다를 뚫고 구름을 박차고 해가 솟아오르려고 애를 쓴다. 태양도 저렇게 인고의 고통이 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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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출 ⓒ 이종원


일출

절대자는 바다에 일찍 나간 순서대로 해를 보게 했다. 갈매기가 먼저 해를 감상하고 그리고는 오징어잡이 배에 그 경치를 양보한다. 그리고는 내 앞에 있는 부부에게도 그 빛을 보여주고 있다. 두 사람이 손을 꼭 부여잡고 해를 바라보고 있다. 무엇인가 소원을 빌었을 텐데…. 꼭 그 소원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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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세상을 비추고 있다. ⓒ 이종원


해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자 새들도 분주해졌다. 빛은 이 땅의 모든 생명체가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 준다. 동해의 작은 섬을 비추고, 밤새 차가워진 바위까지 온기로 덮어준다. 세상이 밝아지면서 등대도 휴식을 취할 것이고, 밤새 수고한 오징어잡이 배에게도 만선의 즐거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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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살 비치는 울산바위 ⓒ 이종원


속초시내를 환히 비추면서 도시도 새 날을 준비한다. 고층건물 꼭대기 공사판에는 새벽부터 인부들이 땀을 흘리고 있다. 이들에게도 태양이 똑같이 비추기 때문에 결코 외롭지 않다. 빛은 더 나아가 설악산 울산바위까지 비추고 있다. 벌써 정상에는 첫눈이 내렸나보다.

나는 이제부터 마음속에 속초 일출을 간직하고 매일 일어날 때마다 꺼내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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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의 물줄기와 항구에 막 들어온 어부 ⓒ 이종원


동명항

등대에서 계단을 밟고 내려오면 동명항이 나온다. 호수에서 나오는 물이 펄떡이는 활어를 기다리고 있다. 속속 배가 항구로 들어오고 있다. 밤새 어부는 배고픔과 추위와 싸우고 돌아온 것이다.

'따끈한 오뎅 국물에 소주 반병 마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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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매 ⓒ 이종원


어부들은 방금 잡아 올린 활어를 배에서 꺼내고 있다. 이들의 노고에 그저 머리를 숙일 뿐이다. 배에서 건져온 물고기들은 주인이 바뀔 때까지 물세례를 맞으며 기다린다. 예쁘게 보여야 비싼 몸값을 받고 팔려나가기 때문이다.

경매인들의 눈은 온통 활어에 쏠려 있다. 그리고 아주 조심스레 경매용지에 원하는 값을 적어 넣는다.

'다시 적을까? 저것이 맘에 드는데…'

좋은 물건을 싸게 확보하려는 경쟁이 치열하다. 펄떡이는 활어처럼 이들의 삶도 활기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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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단함이 묻어 있는 어부의 표정 ⓒ 이종원


어부들도 긴장하기는 마찬가지다.

'내가 잡은 고기가 높은 값을 받아야 하는데…'

선생님에게 성적표를 받는 기분일 거다. 굵은 주름엔 삶의 고단함과 경건함이 함께 묻어 있다. 밤새 추위에 떨면서 일하고 온 부부가 보인다. 서로 별 말은 없지만 눈빛만은 서로를 위로하고 있다.

경매에 붙여진 활어는 어판장에 수족관에 잠시 둥지를 튼다. 동명항 활어판매장은 자연산만 고집한다. 만약 자연산이 아닐 경우 10만 원을 보상하다는 현수막이 그 맛을 상상하게 한다. 노량진 수산시장처럼 좌판에서 횟감을 골라서 방파제나 횟집에서 먹는다고 한다. 시설은 그다지 좋지 않지만 저렴하고 살아있는 분위기가 동명항 활어판매장의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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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호동 갯배 ⓒ 이종원


아바이 마을

동명항에서 시청을 지나면 중앙시장이 나온다. 거기서 바다쪽으로 나가면 청호동이 나온다. 한국전쟁 1·4후퇴 때 함경도 피난민들이 조금이라도 고향 가까이 살기 위해 실향민들이 터를 잡은 곳이다. 우리나라 유일의 실향민 집단거주지이며 일명 '아바이마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곳엔 무동력 운반선인 갯배가 운항된다. 갯배란 ‘청호동 아바이마을’주민들이 속초시내로 다닐 때 좁은 바다를 건너다니던 배로 사람이 쇠줄을 이용해 움직인다. 갯배는 쉴새없이 사람들을 나르고 있다. 등교하는 학생들도 있고, 행상 나갈 할머니도 난간에 손을 잡고 있다. 매일 갯배에 몸을 싣고 쇠줄을 잡아당기면서 실향민들은 고향 함흥으로 갈 배에 올라탈 꿈을 꾸고 있을지 모른다.

드라마 '가을동화'의 주요 배경이 됐기에 갯배는 더욱 유명해졌다. 태석(원빈)이 돈에 팔려가려는 은서를 데리고 달아나는 장면에 나왔던 곳이 바로 청호동이기 때문이다. 한 때 수천 명의 관광객이 몰려 몸살을 앓고 이제 잠잠하는가 싶더니 요새는 중국과 동남아시아 관광객들이 몰려든다고 한다. 연속극의 힘이 이렇게 무서울 줄은….

백두대간이 가장 아름답게 빚어놓은 설악산이 있고, 쪽빛 동해바다가 일출을 그려내고 그림 같은 호수가 있어 속초에 오면 늘 가슴이 설레인다. 이런 외적인 아름다움 때문에 속초를 그리워하는 것만은 아니다. 실향민의 만들어낸 눈물과 한숨소리까지도 속초 땅에 배어있기 때문에 속초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포기하지 않는 그들의 잡초 같은 삶의 방식에 늘 감사를 드린다. 고향을 그리워하면 50년의 세월을 기다려왔다. 이제 그들의 소원을 들어줄 때가 되지 않았을까?

속초의 미래는 밝다. 활어판매장 여인네의 굵은 마디에서 속초의 희망을 보았고, 갯배를 끄는 노인의 팔뚝에서 속초의 힘을 느꼈기 때문이다.

속초여행정보

1. 영금정, 동명항 가는 법

1) 대중교통
-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도보 15분,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시내버스(노선 1,13,15,16,17,18 번)로 20분
( 고속터미널 → 아남프라자 → 시청 → 수복탑 → 영금정 )

2)자가운전
속초 시내 도로에서 고성쪽으로 오다가 동명항에 주차하면 된다. 주차는 무료

2. 아바이마을 가는길

1)자가운전
속초 고속버스터미널 사거리까지 가야 한다. 고속버스터미널 사거리에서 청호동 방향으로 들어가면 아바이마을로 들어갈 수 있다.

2)대중교통
고속버스를 이용해 속초고속버스터미널에서 내린 뒤 청호동으로 가는 버스를 타거나, 아니면 걸어도 된다. 10~15분 정도 걸으면 아바이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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