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수제공(水制工)을 아십니까?

박철의 <느릿느릿 이야기>

등록 2003.11.22 15:05수정 2003.11.24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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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릿느릿 박철

세상이 수상하다. 참여정부가 들어서면서 사회적인 이슈와 맞물려 각계각층의 의견분출과 집단시위가 봇물을 이룬다. 어느 것 하나 속 시원하게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참여정부에 기대한 것이 컸던 모양이다. 불행하게 노무현 정부는 국민들에게 믿음을 주지 못하는 듯하다. 무게감을 주지 못한다. 너무 가볍다는 생각이 든다. 즉흥적인 발상이나 아이디어만으로는 국가를 운영할 수 없지 않은가.


요즘 같이 각박하고 살벌한 시절에 남을 위하는 일이면 무엇이든 마다하지 않고 자기만을 위한 일이면 삼가는, 마음이 깊고 따뜻한 사람을 만나면 더없는 행복일 것이다. 요즘은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그런 사람을 만나기가 너무나 어려운 세상이다. 듬직하여 행동이 진실하고 일마다 신중하여 한결같은 것(謹)을 지닌 사람을 만나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이 세상 어디서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그런 사람이 그립다.

마음속이 맑고 변함없는 사람은 눈빛이 밝고 맑다고 한다. 눈빛이 마음의 속을 비추는 거울 같다고 여기는 셈이다. 눈을 바라보면서 입술에 미소를 지고 말하는 사람은 남을 속이거나 등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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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릿느릿 박철

자기를 엄하게 다스리면서 남에게 관대한 사람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약속을 제일 중히 여긴다. 다만 옳은 약속만을 택할 줄 알고 그른 약속은 처음부터 하지 않는 사람은 서로의 믿음을 생명처럼 여긴다.

살벌한 세상일수록 믿을 수 있는 사람은 기댈 수 있는 언덕과 같다. 남을 믿고 자신을 남에게 맡기는 것(信)을 서슴없이 하는 사람을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 어느 누가 이런 사람을 싫다고 하겠는가? 믿음직한 사람이 그립다.

상대방의 시선을 외면하고 말을 기어들듯이 하는 사람은 믿을 사람이 못된다. 남에게 감출 것이 많은 사람은 어딘지 켕기는 데가 있어서 당당할 수가 없는 법이다. 속이 음험하여 제 속만 차리고 이해득실을 따져서 해가 된다 싶으면 변덕을 부리는 사람은 옆 사람들을 밥상 위의 반찬쯤으로 여기려고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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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릿느릿 박철

저만 아는 사람은 제 배가 부르면 남이야 굶어 죽어도 모른 척한다. 이 얼마나 잔인한 잡식동물인가. 이러한 인간은 남을 사랑할 줄 모른다. 다만 남을 이용하려고만 할 뿐이다. 마음의 헤아림이 깊은 사람은 행동을 취하는데 신중할 수밖에 없다. 경망스런 행위로 다른 사람이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는 것을 헤아리는 까닭이다. 돈독한 마음은 덕이 무르익은 선물이며 그러한 선물을 받은 사람은 그 선물의 주인공을 존경하게 된다.


23일은 소설(小雪)이다. 겨울로 가는 길목, 조석(朝夕)으로 찬바람이 분다. 신문 여기저기를 뒤적이다보면 마음속까지 한기를 느끼게 된다. 하여 사람이 그립다.

창후리에서 배를 타고 교동으로 건너는데 보통 15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창후리에서 월선포까지 직선으로 건널 때 걸리는 시간이다. 그러나 바닷물이 빠지면 사정이 달라진다. 수심이 깊은 골을 따라 배가 우회(右回)를 하게 된다. 바다 한복판 갯벌이 드러나 기다란 섬을 이룬다. 배가 황청리를 지나 석모도를 마주하고 180도 방향전환을 한다. 창후리에서 떠난 배가 망월리와 황청리를 지날 때 해안가에 수직으로 쌓아놓은 돌무더기를 보게 된다. 처음에 나는 옛날 어부들이 저기에다 배를 대는 나루쯤으로 생각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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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릿느릿 박철

큰 돌을 쌓아 90도 각도로 15-20미터 길이로 길게 늘여놓은 모양이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았더니 일명 '수제공'(水制工)이라는 것이었다. 해안 저 편 육지가 바닷물이 만조(滿潮)시에는 지대가 더 낮아진다고 한다. 그래서 둑을 쌓고 일정한 간격으로 중간 중간 수제공을 쌓았다고 한다.

수제공의 역할은 거친 바닷물의 흐름을 분산시켜 방파제 역할을 하는 둑을 보호해 주는데 있다. 그리고 큰 지주를 여러 방향에서 당겨주는 밧줄이나 뿌리역할을 하는 것이다. 또한 제방에서부터 토사의 유실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선조들의 지혜이다.

처음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 정확한 문헌이 없어 연대기를 알 수 없지만 오래된 것은 수백년이 지났을 것으로 추측한다. 처음 수제공을 쌓았을 때 일일이 사람이 돌을 날랐을 것이다. 변변한 장비가 있었겠는가. 그들의 수고가 수백년동안 강화 저지대 사람들의 생명과 논밭을 지켜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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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릿느릿 박철

바닷물이 빠져 창후리에서 배가 우회하는 경우, 나는 수제공을 보기 위해 뱃머리에 올라선다. 물끄러미 수제공을 보고 있으면 처연한 마음이 든다. 세월은 많이 지났지만 여전히 수제공은 건재하며 자기 사명을 다하고 있다. 온갖 흙탕물을 뒤집어쓰고도 달다 쓰다 말 한마디가 없다. 수제공을 바라볼 적마다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 뿌연 안개 속에 수제공이 제 모습을 드러낸다.

이 가뭇한 세상, 수제공 같은 사람이 그립다. 무엇보다 내가 먼저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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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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