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왜 뛰어갑니까?"

등록 2003.11.22 17:38수정 2003.11.24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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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남오미자

남오미자 ⓒ 김민수


찬바람이 쌩쌩 부는 날 들판에 서니 하루가 다르게 겨울로 성큼성큼 걸어가는 계절의 모습이 보이는 듯 합니다. 겨울로 성큼성큼 걸어가는 만큼 또 다른 계절 봄으로도 성큼성큼 걸어가는 것이겠지요. 모든 계절 아름답지 않는 계절이 없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겨울을 별로 좋아하질 않습니다. 서민들에게 여러모로 힘든 계절이요, 어린 시절 보릿고개를 경험했었던 아릿한 기억 때문입니다.


한 청년이 찬바람 쌩쌩 부는 날 찾아왔습니다.

"저는 겨울이 좋아요."
"......."
"뭔가 도전이랄까, 오기랄까, 이런 것들이 막 올라오거든요."

꽃눈처리라는 것이 있습니다.
영하의 기온에서 최소한 15일 정도 지내야 건강하게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게 된다는 것입니다. 씨앗들에게도 고난의 시간이 필요하구나 생각하니 겨울의 문턱에서도 싱싱함을 잃지 않고 있는 열매들이 대견해 보입니다.

오미자(五味子)는 감(甘) ·산(酸) ·고(苦) ·신(辛) ·함(鹹:짠맛) 등의 5가지 맛을 고루 가지고 있고 그 중에서도 신맛이 가장 강하다고 합니다. 오미자차는 옛날부터 한방에서 폐기(肺氣)를 보(補)하고 기침에 특효약으로 알려져 있으며, 또 목소리가 가라앉았을 때 마시면 효험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 이렇게 차가운 바람 속에서도 그렇게 온몸으로 맞서고 있으니, 그런 약효를 온 몸에 가지고 있을 수 있겠구나. 그리고 그 여러 가지 맛들은 인생을 살아가면서도 느끼는 여러 가지 맛들과도 같겠구나. 지난 계절 내내 새순을 내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내고, 익히느라고 분주했겠구나. 이젠 잠시 그 포근한 열매 안에 들어 있는 너의 분신 그 작은 씨앗, 그 곳에서 곤한 겨울잠을 자려무나.'

a 구기자

구기자 ⓒ 김민수


어느 전설이 맞는 것일까요? 마치 어느 술 광고의 카피를 보는 듯 한 구기자에 대한 전설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여행을 가는 도중 길가에서 열댓살의 여자가 팔십은 됨직한 늙은이를 때리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여겼다. 그 여자에게 무슨 연유로 젊은이가 노인네를 때리는가 물으니 젊은 여자가 대답하기를 "이 사람은 나의 증손자인데 때리는 것이 무엇이 이상한가?"하더란다. 좋은 약이 있어 먹으라고 했는데도 먹지 않아 이같이 늙어 걸음도 잘 걷지 못하게 되었으므로 벌을 주는 중이란다. 젊게 보이는 여인의 나이가 얼마인가 물으니 372살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그 약이 무엇이냐 물으니 구기자라고 하더란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어 가는 계절,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이 열매들이 품고 있는 씨앗들을 통해서 봅니다. 때론 차가운 바람을 온몸으로 맞이하며 그 곳에서 말라비틀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새들에게 먹이가 되었다가 전혀 낯선 땅에 뿌리를 내리기도 하겠지요. 그런 눈으로 이 열매들을 바라보니 이제 저 작은 씨앗들 속에 자신들의 모든 존재를 차곡차곡 쌓아놓고 새 봄을 준비하는 것 같습니다.


쉼, 휴식이라는 것.
이런 것들을 우리는 쉽게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왜 뛰어갑니까?"
"저 사람이 뛰어가니까요?"

그 앞사람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왜 뛰어갑니까?"
"저 사람이 좇아오니까요?"

저는 열매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겨우내 씨앗은 과육에 둘러싸여 추위를 이겨내고, 때로는 풀섶에 떨어져 추위를 견디기도 하고, 새들의 먹이가 되어 어디론가 낯선 땅에 뿌리를 내리기도 합니다. 어찌되었든 겨울은 그들에게 있어서 잠시 쉬는 시간인 것이죠.
지난봄부터 쉴새없이 바쁘던 일상을 잠시 접어두고 쉬면서 천천히 가는 계절, 그래서 겨울은 밤도 긴 것이 아닌지요. 자연들도 겨울에는 자람도 덜하고, 자연도 그리 분주하지 않습니다. 쉬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었으니 잠시 쉬었다가는 자연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들도 뛰던 걸음을 멈추고 왜 뛰고 있는지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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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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