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잠에서 깨어나는 '녹청자'

[이철영의 전라도 기행 23]해남 녹청자

등록 2003.11.25 14:07수정 2003.11.25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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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청자 찻잔
녹청자 찻잔오창석
1983년 말 완도군 약산면 어두지섬 앞 바다에서는 1000년 전 이곳을 지나던 배와 함께 가라앉았던 3만여 점의 청자가 인양되었다. 그런데 그것은 세간에 알려진 고려청자와는 확연히 다른 이른바‘녹청자(綠靑瓷)’였고, 이는 우리의 도자사(陶瓷史)를 새로 쓰게 하는 큰 사건이었다.

그곳에서 발견된 유물은 현재의 해남군 산이면 일대에서 생산된 것으로 밝혀졌는데, 1000년의 시간을 뛰어 넘은 지금도 이곳에서는 녹청자가 만들어지고 있다.


정기봉씨가 초벌구이 한 녹청자에 상감작업을 하고 있다.
정기봉씨가 초벌구이 한 녹청자에 상감작업을 하고 있다.오창석
‘화원요(華元窯)’의 주인 정기봉(47)씨는 선친(화원 정형식, 96년 작고)과 함께 청자 재현작업에 힘을 쏟던 도중 명맥이 끊긴 녹청자 재현작업에 뛰어들었다.

“할아버지께서 제가 사는 바로 이곳에 사시며 평생 옹기일을 하셨어요. 그때만 해도 천대 받던 시절이라 자식들에게는 이 일을 물려주지 않으려고, 장남을 공부시켜 어엿한 학교 선생님을 만드셨죠. 얼마나 좋으셨겠소.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교직 생활 하신지 얼마 안되어 할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리고 험난한 도공(陶工)의 길을 가버리신 거죠.”

그 이후로는 선친의 삼형제 모두가 도공의 삶을 살았으니 어쩌면 그에게까지도 이미 피할 수 없는 숙명의 끈이 길게 드리워져 있었던 셈인지 모른다. 그가 기억하는 선친은 언제 잠자리에 드시는지, 언제 일어나시는지 알 수가 없었다고 한다.

정기봉씨와의 인터뷰
정기봉씨와의 인터뷰오창석
“대학시절에도 청자 만드는 일을 배우기 싫어 친구들과 맨 날 밤늦도록 술 마시고 어울리다 집에 들어가면 아버지께서는 항상 새벽녘까지 작업장에 앉아 계셨어요. 그냥 모른 척 발뻗고 잘 수가 없어 일을 거들다가, 결국 이 일의 마력에 어이할 수 없이 빠져들어 버리고 만 것 같아요”

부자가 함께 청자 제작에 몰두하고 있던 어느 날 선친은 “더 늦기 전에 해남 사람인 우리가, 우리의 녹청자를 재현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씀을 따라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나 생전에 스스로 만족할 만한 녹청자를 재현시키지 못한 채 선친은 떠나가셨고 남은 몫은 그의 것이 되고 말았다.


재현한 녹청자 완(접시). 태토를 수비하지 않고 그대로 써서 표면이 거칠거칠 한데, 그것은 옛날 사람들이 수비(물에 개어 모래 등의 거친 입자를 걸러내는 작업)하지 않고 그대로 써도 되는 정도의 좋은 흙은 다 퍼다 써 버려 지금은 이 정도의 거친 흙 밖에 구할 수 없기 때문.
재현한 녹청자 완(접시). 태토를 수비하지 않고 그대로 써서 표면이 거칠거칠 한데, 그것은 옛날 사람들이 수비(물에 개어 모래 등의 거친 입자를 걸러내는 작업)하지 않고 그대로 써도 되는 정도의 좋은 흙은 다 퍼다 써 버려 지금은 이 정도의 거친 흙 밖에 구할 수 없기 때문.오창석
비색(翡色)의 청자가 고급스럽고 귀족적이며, 찬 느낌을 주는 반면 녹갈색이나 암갈색, 황갈색을 띤 녹청자는 서민적이며, 투박하고 따뜻한 느낌이다. 과거에는 녹청자의 조형과 색상이 청자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의 불량품이기 때문이라거나, 아니면 청자기술이 최고조에 달하기 전의 과도기적 상태라는 설이 지배적이었으나, 현재의 연구로는 고려초기에서부터 조선후기에 이르기까지의 광범위한 시기 동안 사용된 독자적인 영역의 자기라는 것이 정설로 굳어져 있다.

통일신라시기 창건된 전남 승주의 송광사에서는 1987년 3만여점의 고려 시기 녹청자 파편들이 발견되었는데 여기에서는 대접, 접시, 완 같은 반상기(飯床器)류의 생활용기 들이 주종을 이루었다.


또한 경기도 용인에서 발견된 관원이나 지방 부유층의 무덤으로 보이는 고려시대 석곽묘에서 발견된 녹청자 등도 청자가 당대 왕실과 귀족의 것만이 아닌 중산층까지 사용하는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생활용기였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에 따라 대량생산이 불가피했던 녹청자는 겹쳐 쌓아 굽기 위해 그릇 안쪽 바닥에 내화토를 발랐던 흔적과 아울러, 모래 등이 섞인 거친 태토를 곱게 거르지 않고 바로 사용함에 따른 거친 표면 등이 특징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또한 녹청자 고유의 독특한 색은 이곳 해남 산이면의 태토만이 가진 철분의 높은 함유량 때문으로, 다른 곳의 흙을 재료로 쓰면, 유약과 가마의 온도를 달리 한다고 해도 동일한 색상을 절대 얻을 수 없다고 한다.

녹청자 등잔. 그 위에 찻물을 담은 그릇을 올려 놓고 식지 않게 하여 먹기도 함.
녹청자 등잔. 그 위에 찻물을 담은 그릇을 올려 놓고 식지 않게 하여 먹기도 함.오창석
“지난 9월 군산 앞바다에서 발견된 해저 유물선에 실린 것도 바로 이 곳 산이면의 가마에서 나온 녹청자인 것으로 학계에서 발표했습니다. 많은 이들은 청자 하면 비색의 고려청자만 생각하는데 당대의 사람들이 사랑한 진정한 청자는 바로 이 녹청자임을 알아야 합니다.”

녹청자 접시. 찻그릇, 물그릇, 술그릇으로 써도
녹청자 접시. 찻그릇, 물그릇, 술그릇으로 써도오창석
이 곳 산이면 일대의 가마는 그 동안의 조사를 통해 공식적으로 지정된 것이 104군데, 미발굴지를 포함하면 도합 250여기 이상이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되어, 당시엔 가히 녹청자 공업단지로 불렸을 법한 규모였다. 이렇다 보니 지금은 간척이 되어 바다가 멀리 물러나 버렸지만 옛날의 해변 길을 따라 걷다가 주의 깊게 보면, 심심치않게 발견되는 청자 파편을 주워 들고 1000년 전으로의 시간여행을 떠나 볼 수 있다.

정기봉씨의 청자 전시장
정기봉씨의 청자 전시장오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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