쳇 베이커의 헤로인 트럼펫을 추억하며

나의승의 음악이야기 38

등록 2003.11.27 10:52수정 2003.12.02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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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지 않아 성탄절이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를 낳고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마태복음1장.


아브리함의 자손 예수의 혈통을 설명하는 족보일 것이다. 성서의 한 부분이다. 이것울 인용하는 것은 종교 또는 보학을 말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수없이 많은 세월 속에서 누가 그렇다 할 것도 없이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딸이며 아들이다. 그것은 유전과 피의 물려받음이며 자연 그 자체일 것이다.

인류가 그동안 만들어온 문화들 역시 그런 구조적 성격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이태리 문화는 그리스 문화와 사촌간이 되고 그들의 조상 중에 헬레니즘 문화가 있으며 로마 문화가 있다. 또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어머니 아프리카는 '아프로-아메리칸'과 '아프로-큐반'의 음악 문화를 낳았으므로 그들은 친형제 또는 사촌간이 될 것이다. 굳이 따진다면, 어떤 사람은 심지어 아프로-큐반 문화가 역사적으로 더 앞서기 때문에 형일 거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1950년대 전라도 깡촌 출신의 사람, 10대 후반 혹은 20대의 나이에 새벽에 일어나 아궁이에 불을 지펴 밥을 지어 먹고, 짚신을 신고 이십리를 나주까지 걸어간 다음 열차 타고 광주에 있는 학교를 다닌 사람. 그런 사람이 있다면 2003년인 지금 70∼80세의 나이일 것이다.

KFC와 스타벅스, 버거킹을 모르면 간첩이랄 수 있는 요즘의 세대들은 앞의 그 세대의 손자뻘 정도 되겠지만 아직은 같은 시대를 살고 있다. 386세대들은 그들의 앞 세대들이 압제와 폭력의 시대에 문화적으로 빈곤했고 불행한 시기를 살았으므로 알게 모르게 무시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 다음 세대들은 그들에게 잘난 척 하더니 해 놓은 일이 뭐 있냐고 말한다.

해방 이후 한국 사회처럼 불과 50년 사이에 여러 분야에서 급격한 변화를 보여 주는 세대들로 구성된 사회의 존재는 세계적으로 희귀할 것이다. 이것은 해방 이후 약 50년 역사의 작은 단면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필자 개인의 소견에 불과하다. 다만 독자에게 작은 참고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미국의 재즈 세계에서 찰리 파커 주니어는 마일즈 데이비스를 낳고, 마일즈 데이비스는 쳇 베이커(Chet Baker)를 낳았다고 볼 수 있다. 쳇 베이커가 데뷔하고 재즈 세계에서 인정받기 시작했던 그 때가 1950년대다.

모든 예술 분야가 그렇겠지만 지성과 감성의 조화가 중요하다. 고작 2년이 못되는 기간이었지만 쳇은 대학에서 음악 이론과 화성을 공부했다. 그렇지만 그의 연주를 듣게 되면 알 수 있듯이, 그의 음악은 그 무엇보다도 놀라운 감성에 있다.


자폐증 환자처럼 혼자서 웅얼거리는 듯한 연주와 노래는 특별한 것이 없어 보이지만, 그의 천재적 감성의 행위에 사람들은 마음을 빼앗긴다. 게다가 어딘지 모르게 '제임스 딘'을 닮은 것 같은 젊은 시절의 외모 역시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매력 있는 부분이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유행 음악의 인기 순위를 매기는 '빌보드 차트'에서 2위와 5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말년이었던 80년대, 50대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얼굴은 야윈 볼과 주름진 얼굴로 변해 있었다. 오로지 맑게 남은 것은 그의 눈밖에 없었다.

그는 어쩌면 오랜 세월 파도를 넘나든 끝에 항구에 겨우 들어 왔지만, 결코 버리지 않은 '작은새'였을지도 모른다. 그는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그의 흔적은 헤로인, 코케인, 트럼펫, < My Funny Valentine >등으로 간략하게 요약될 것이다. 이제 세월은 지나서 인간이 만든 달력은 21세기의 시작을 가리키고 있고 '쳇'이 낳은 손자뻘의 연주자들은 하나 둘 등장한다.

크리스 보티
크리스 보티
크리스 보티(chris botti), 카를 올란데르손(karl olandersson), 일본의 '토쿠' 등은 지금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제2의 혹은 제3의 쳇 베이커일 것이다. 다만 '쳇'의 경우처럼 그의 세대에게뿐만 아니라 지금까지의 모든 세대들에게 사랑 받는 음악을 그들이 연주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제2의 쳇 베이커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묻는 필자에게 "구관이 명관이여"라고 스치듯 말하고 돌아서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결국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그때를 살며 세상을 이끌어 가는 세대들이 산다. 그리고 그들은 다음 사람들에게 그들의 세상을 물려주고 떠나가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스스로 징검다리가 되기도 하고, 건너는 사람이 되기도 할 것이다. 그것은 사람이 사는 사회 속의 자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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