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이싸움 장면김용철
팽이 깎기
팽이는 조선 소나무(적송)나 박달나무로 깎아야 좋다. 박달나무처럼 단단한 게 없지만 남부지방 백아산 근처는 10리가 넘는 외갓집 넘어가는 검덕굴 흑석(黑石)에 가야 구할 수 있었으니 팽이 하나 만들려고 그곳까지 가느니 차라리 포기하고 말겠다.
지천에 흔한 것이 소나무인데 소나무는 더디 자란 것이라야 한다. 무 뿌리 만한 크기여도 거북 등처럼 껍질이 두꺼운 원줄기에 변재(邊材)와 심재(心材)가 또렷한 것일수록 단단하다. 겨울이 되면 따로 베러 갈 필요도 없다. 아버지께서 산에 나무를 솎아 베어 집으로 가져온 나무 중 하나를 골라 쓰면 되었다.
팽이 깎는 일은 서너 명이 한 집에서 어울려 한다. 무쇠 낫을 잘 들게 갈고 톱 하나, 못 한 개 준비하면 된다. 마룻바닥이나 토방 위 불쑥 솟은 돌 사이에 나무를 걸쳐놓아 요동치지 않게 한다.
엉덩이를 깔고 앉은 사람, 발로 밟아주는 한 사람이 눌러 고정을 하고 그 중 맏형이 톱질과 낫질을 한다. 나무 껍질을 돌려가며 먼저 붉은 표피를 벗기면 허기질 적 껌으로 씹었던 얇은 막이 나온다. 막을 마저 벗기고 변재가 드러나면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팽이를 깎는다.
"쓱쓱"
"쓱"
"쓱쓱"
"쓱"
깎이는 소리가 소가 여물 먹는 거나 진배없다. 향긋하고 진한 소나무 냄새도 무척 좋다. "또르르" 말리는 대팻밥 모양의 나무 무늬도 보기에 정겹다.
팽이는 주요하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아래 끝 뾰족한 부분은 약간은 둥글게 깎는다. 돌려가며 모양을 잡아간다. 위쪽은 팽이의 균형을 잡아주는 부분은 깎지 않는다.
위아래가 반반씩이지만 아래가 조금 길 때도 위가 더 길어도 상관은 없다. 낫의 날이 약간만 안으로 파고 들어가도 밟고 있는 사람은 넘어지기 일쑤다.
팽이가 깎아지면 톱으로 길이를 조정하여 자르고 단 한번에 직경이 나무 심에서 직각이 되게 잘라낸다. 못을 하나 찾아와 곧고 가지런히 박아 돌 위에서 연거푸 문질러 주면 못 대가리 부분 그물모양의 무늬가 사라지고 둥그렇게 되면 팽이 만들기는 끝난 셈이다. 그늘에서 서서히 말렸다가 송진을 닦아내면 이걸 가지고 즐기면 되는 것이다.
닥나무 껍질 벗겨 만든 팽이채의 위력
팽이를 잘 만드는 일도 중요하지만 팽이채가 팽이의 기술과 힘, 정교함을 좌우하기도 한다. 그러니 나는 평소 꼴 베러 다니거나 나무하러 다닐 때 보아두었던 닥나무와 꾸지뽕나무, 산뽕나무를 찾아 나선다.
닥나무 등 이 세 가지 나무껍질은 질긴 섬유질이 많아 질기고 오래가며 팽이에 찰싹찰싹 달라붙는 맛이 일품이다. 나중에 노끈으로 해보았던 것과는 비교가 되질 않는다. 닥나무 없으면 꾸지뽕나무, 이도 없으면 뽕나무 껍질을 벗겨 하루 이틀 말렸다가 물에 담가 불려서 팽이 치는 재미는 해보지 않고서는 그 맛을 모른다.
일단 한지(韓紙) 원료인 닥나무는 뽕나무과로 밭 언덕이나 산자락에 많았다. 가능하면 노란 뿌리가 더 질기고 오래갔으므로 뿌리 껍질까지 캐와야 하니 낫과 약(藥) 괭이를 들춰 메고 집을 나선다. 힘들여 땅을 파서 뿌리를 쭉쭉 잡아당기면 서너 그루면 길게 뻗은 뿌리를 한 삼태기 이상 캘 수 있었다.
껍질을 잘게 쪼개 북채나 장구채 모양을 한 소나무 가지를 꺾어 긴 줄을 양쪽으로 나눠 매면 팽이채도 완성이다.
흥겹던 팽이치기
채가 만들어지자마자 고샅길로 뛰어나가 친구들을 불러냈다.
"야, 병문아! 나 다 맹글었다."
"어디? 한번 쳐봐도 되냐?"
"야 씹어갈 놈아. 글도 내가 먼저 쳐봐야 되는 거 아녀?"
"알았다 임마."
팽이채에 큼지막한 팽이를 둘둘 말아 감고 휙 잡아당겨 돌 없는 흙 위에 뿌리치면 동그르르 원을 그리며 돈다. 형형색색 크레용으로 색칠을 했으니 빨강, 파랑, 검정, 노랑, 초록 선이 또렷하다.
"어어…. 죽는다. 얼렁 때려야."
"철썩"
"철썩"
"착"
"척"
몸을 낮춰 비질하는 자세로 사정없이 팽이채로 몸통을 휘둘러 패니 바닥의 쓰레기와 모레, 작은 돌멩이는 저 만치 도망가고 말끔하다. 더 속도를 더해 후려 쳐주자 무지개 빛을 띤 팽이가 무척 보기 좋다.
"야야 인자(이제) 가만 내비둬봐."
"자리 잡는가 보까?"
팽이를 수십 번 쳐주고 가만히 놔두니 한 곳에 자리를 잡아 거의 움직임이 없는 듯 정지한 듯 한 자리만 맴돈다.
"야! 섰다."
2분여 돌고 있는 사이 팽이채 매무새를 고쳐 잡았다. 그 때 마침 해섭이와 병섭이, 병주, 성호도 각자 팽이를 들고 함께 나왔다.
"가만 있어봐. 어디 물 없냐? 병문아 얼렁 가서 물 한 바가지 퍼와라. 팽이채가 말라 간다야."
"야 그냥 쳐라. 암시랑토(아무렇지도) 않구만 그네."
"글면 해섭아 니가 좀 갔다와~"
성호가 거들었다.
"야 해섭아 얼렁 갔다와라."
"꼭 니기들은 나한테만 그러더라."
"아까 갔으면 폴새(이미, 벌써) 왔겠다 색꺄."
"지미~"
간신히 설득하여 바가지 물을 입에 한 모금 가득 마시고는 팽이채 자루만 빼고 "푸우-" 불어 뿌려 주니 야들야들 보드랍고 치기 좋은 상태가 되었다.
팽이싸움 한번 해볼까나?
이제부터 각자 가지고 나온 팽이로 팽이싸움을 할 차례다. 다섯 명이 팽이치기를 한다. 심판은 따로 없다. 다만 동네 아이들은 자신의 팽이를 최대한 세게 두들겨 힘에 탄력을 불어넣고 그 힘으로 상대 팽이에 가까이 붙여 서로 부딪히는 순간 맥없이 고꾸라져 자빠뜨리면 이기는 한가지 방법과 동시에 팽이를 치지 않고 누가 오래 한자리에 머물러 자리를 잡는가를 내기하는 것이다.
"착착!"
"척척!"
"칙칙!"
계속 두들기는 소리는 소가 콧방귀를 뀌는 듯 하다. 여럿이서 하는 놀이라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 실격처리 된다. 간혹 모난 돌을 만나도 넘어지지 않는 경우 힘이 떨어져 쓰러질라치면 얼른 달려가 살려 내는데 급급하다. 온 정신이 팔려 쳐대는 그 광경은 정말이지 닭이 지네를 보고 쪼려는 상황에 비견할 만 하다.
때론 한번에 나가떨어지는 경우도 있었지만 실력이 비슷하면 예닐곱 번 열댓 번까지 겨루는데 팽이가 날아 위를 찍기도 하고 제풀에 스스로 넘어지는 수도 있다. 물고 물리는 결투 끝에 최후까지 살아 남은 한 사람은 덩치 큰 병주, 병섭, 성호 중 한 명이었다.
"야들아. 인자 다른 놀이로 하자"는 병주의 제안에 다들 팽이를 잡고 잠시 숨을 돌린 후 다시 팽이를 친다. 다들 땅이 고르고 돌멩이가 없는 잘 다져진 흙을 차지하려고 주위를 보고 있다.
"자, 쓰돕(스톱)!"
일제히 멈추고 자신과 서로의 팽이를 간절한 맘으로 쳐다보고 있다. 모든 팽이는 누에가 제 집을 짓느라 골몰한 것처럼 작은 홈을 간질이듯 까맣게 파서 눌러 앉았다. 약해지면서 해섭이는 머리를 수그리고 제 팽이를 손으로 빙글빙글 돌리는 시늉을 한다. 병문이는 입으로 훅 불어 더 오래 돌라는 짓을 한다.
"야, 돌아 돌아. 더 돌란 말야."
"니기들 반칙하기 없어!"
기나긴 시간 같았다. 하나씩 빙그르르 돌며 멈춰서고 병섭이와 내 것이 막판을 겨루고 있다. 몰려들어 다 같이 쳐다본다.
"뽀옹~"
"아따 씨벌 놈이 이 때 방구를 뀌면 어떡해?"
"싱건지 방구구만. 으~ 고약해."
결국 병섭이의 승리로 끝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냇가에 살얼음이 얼자 썰매 타는 날에도 주머니에 팽이를 넣어가서 몇 번이나 팽이치기를 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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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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